한국 사회에서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하나 있다. 아동학대가 대부분의 정신질환을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이라는 것은 이미 세계적 연구에서도 확립된 사실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의 아동학대 예방 인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도, 교육도, 기술도 선진국인데 왜 가장 중요한 기반인 “아동의 안전”은 이렇게 허술할까? 이 질문을 따라가 보면 한국 사회가 가진 보이지 않는 구조와 무의식이 드러난다.
한국 복지는 ‘겉만 선진국, 속은 후진적’이라는 아이러니
한국은 경제는 압도적으로 빠르게 선진국이 되었지만 복지는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서구 복지국가는 아동권 강화 → 예방 인력 확충 → 사회복지 전문직 확립이라는 단계를 밟아 올라갔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 → 뒤늦은 복지 도입 → 인력은 거의 없음이라는 순서로 흘러왔다. 그래서 겉으로는 선진국의 법과 정책을 갖추었는데 막상 현장에는 사람이 없다. 한국 복지는 ‘제도는 선진국, 인력은 저개발국’인 상태다. 아동학대 예방이 무너지는 것도 그 구조 속에 있다.
한국 정치문화는 ‘예방’을 싫어한다
아동학대는 조기 개입이 핵심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문화는 예방을 거의 선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방은:
비용이 많이 들고
결과가 눈에 띄지 않고
정치적 보상이 없고
언론이 다뤄주지 않는다
반면, 사후 처벌 강화는 빠르고 눈에 띄고 지지율이 오른다. 그래서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처벌 강화!”는 즉각 추진되지만 정작 그 처벌을 막을 전문 인력 확충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예방은 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치에서 언제나 소외된다.
한국의 ‘가정 신성주의’는 아이에게 유독 잔인하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가정은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는 깊은 문화가 있다. 그래서 아이가 학대를 당해도 늘 이렇게 말한다.
“다음엔 안 그러겠다고 했다”
“부모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지”
“분리는 너무 극단적이다”
문제는, 아동학대의 85~90%가 부모·양부모·동거인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시스템은 부모의 권리가 아이의 안전보다 앞선다. 당연히, 아동학대 예방 인력을 늘리고 가정을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강화하자는 주장에는 문화적 저항이 생긴다. “가정에 행정이 개입한다니…” 이 불편함이 정책을 멈춰 세운다.
한국은 돌봄노동을 ‘중요하지만 저평가되는 일’로 취급한다
아동보호전문요원, 사회복지사, 상담사, 트라우마 전문인력… 이 분야는 모두 공통된 특징이 있다.
임금이 낮고
업무강도는 높고
위험노동이 포함되고
감정적 소진이 심하고
이직률이 높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 결과는 뻔하다. 현장은 사람이 없다.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경험 있는 인력은 쌓이지 않는다. 아동학대 예방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서구는 ‘아동학대 = 국가 실패’라고 보지만
한국은 ‘가정 문제’라고 본다. 미국, 독일, 영국, 북유럽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실패했다”고 여긴다. 그래서 시스템을 고치고, 교육을 늘리고, 인력을 확충한다. 반면 한국은 “부모가 문제다”, “가정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국가 책임이 가정 책임으로 이동한다.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데 인력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
아동학대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문제다
사람들은 아동학대가 나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견이 갈린다. “국가가 가정 안에 깊게 개입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이 불편함, 이 모호한 거리두기, 이 가정 신성주의가 아동학대 예방 체계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막아왔다.
#생각번호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