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아동학대 앞에서 이렇게 무력한가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아동기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by 민진성 mola mola

아동학대는 대부분의 정신질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중독, CPTSD, 양극성 장애, 충동 조절 문제까지. 연구들은 일관되게 말한다. 아동기 트라우마는 성인 정신건강의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는 여전히 “가정의 문제”, “부모와 아이 사이의 일”, “지나친 개입은 위험하다”는 식으로 다뤄진다.



‘가정은 신성하다’는 오래된 믿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가정 신성주의’를 유지해왔다. 가정은 국가도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곳, 부모의 훈육은 존중해야 하는 영역, 집안 문제를 밖으로 꺼내는 것은 수치라는 분위기. 이 믿음은 여전히 법과 제도에 묘하게 스며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야구방망이에 맞아도 “훈육 수준”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있고,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도 대부분은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공권력은 가정 앞에서 유난히 작아진다. 문제는 그 가정이 바로 아동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라는 점이다.



아동은 여전히 ‘권리의 주체’가 아니다

서구는 아동을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본다. 한국은 여전히 아동을 ‘부모의 책임물’이나 ‘보호 대상’ 정도로 취급한다. 이 인식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만든다.

아동의 의사를 묻지 않고

부모의 변화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며

분리를 최후의 수단으로만 처리하고

가정 복귀를 기본값으로 삼는다

아동을 온전히 한 명의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아동학대는 ‘가정 문제’로만 남는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만 봤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환경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의지·기질의 문제로 오해했다.

우울은 마음이 약해서

중독은 의지가 없어서

충동성은 성격 문제

조현병은 타고난 병

자해는 관심 부족

분노는 기질

그러니 “아동기 트라우마 → 성인 정신질환”이라는 연결은 최근까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ACE(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연구가 누적되며 강력한 결론이 나왔다. 성인 정신질환의 절반 이상은 아동기 경험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이 패러다임을 너무 늦게 받아들였다. 그 사이 수많은 아이들이 침묵 속에서 성인이 되었고, 그 성인들은 치료받지 못한 채 또 다음 세대를 키웠다.



예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처벌은 ‘정치적 성과’가 된다

아동학대를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사후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다. 하지만 예방 정책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당장 효과가 보이지 않고

비용이 들고

언론 홍보가 어렵고

결과가 느리게 나타난다

반면 사후 처벌은?

강력 처벌 발표만으로도 ‘정의 구현’ 이미지

대중의 감정을 달래기 쉬움

단기적 지지율 상승 가능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실제로 필요한 정책”보다 “시민이 박수치는 정책”을 우선순위에 둔다. 아동학대는 그 피해자가 침묵하는 문제라서 정치의 언어로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아동보호 인력은 지나치게 적고, 권한도 약하다

한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위기 대응조차 어려울 정도로 과부하 상태다.

인력 부족

예산 부족

담당자 1명이 맡는 사례 수 과도

야간 대응 거의 불가능

아동 분리 권한이 약함

경찰과의 연계가 불완전

이런 조건에서 아동학대를 조기에 개입하고,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가해 부모를 치료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에 가깝다.



부모-자녀 결합을 ‘무조건’ 유지하려는 문화

아동학대 사건의 85~90%는 부모, 양부모, 동거인에 의해 발생한다. 사망 사건도 대부분 가정 복귀 직후에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끊임없이 이렇게 말한다.

“부모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죠”

“아이도 부모를 원할 수 있어요”

“가정 해체는 너무 극단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 단순하다. 아동에게 안전한 가정과 부모에게 안전한 가정은 다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가정 복귀’는 아이를 위험 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한국의 정책은 여전히 부모의 권리를 아이의 안전보다 우선시한다.



‘회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한국은 아동을 “학대에서 구해내는 것”까지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진짜 시작이다. 트라우마 치료, 정서적 재건, 안정 애착 형성, 신경계 회복, 장기적 상담과 모니터링… 이런 것들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CPTSD라는 진단도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치료 체계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해 아동은 회복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야 정신질환, 관계 문제, 고립, 자살충동으로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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