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이라는 단어가 두렵지 않은 이유

양극성 2형을 가진 내가 부모가 된다면

by 민진성 mola mola

나는 양극성 2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도 이런 취약성이 유전될까?” 이 질문은 어쩌면 모든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쯤 마주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질문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회피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연구와 현실, 그리고 나의 삶을 함께 놓고 정직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유전되는 것은 ‘병’이 아니라 ‘취약성’이다

양극성 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 하지만 유전 연구가 말하는 것은 병이 복제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전은 ‘재료’를 줄 뿐, 그 재료로 무엇이 만들어질지는 환경과 경험이 결정한다. 다시 말해 아이에게 그대로 병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섬세하다”, “신경계가 민감할 수 있다” 같은 기질적 감수성만 전달될 수 있다. 그 감수성이 병으로 발현될지, 예술성과 직관으로 꽃필지는 부모가 만드는 환경에 달려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

위험은 유전으로 시작되지 않고, 환경에서 완성된다 많은 연구들이 말한다.

안정된 애착

예측 가능한 환경

정서적 안전감

감정 조절 모델링

돌봄자로부터의 공감

과도한 스트레스가 없는 가정

이 요소들을 갖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유전적 취약성이 있어도 발병하지 않거나 평생 기질 수준에서만 존재한다. 즉, 유전적 취약성보다 부모의 삶의 방식이 아이의 미래를 훨씬 더 많이 결정한다. 이 단순한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아이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부모가 자신을 보지 않을 때이다. 나는 CPTSD를 겪고, 양극성 2형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안다. 트라우마는 ‘사고’가 아니라 ‘환경’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정신질환의 위험은 ‘유전자’보다 ‘관계’에서 커진다는 것을. 아이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부모의 진단명”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상태를 모를 때”라는 것을. 나는 내가 어떤 패턴에서 흔들리는지 알고, 어떤 환경에서 무너지는지 알고, 내 감정이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내 신경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안다. 이런 부모가 위험할 리가 없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취약성보다 ‘회복력’을 더 많이 물려준다. 나는 도망치지 않고 내 마음과 내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은 내가 아이를 키울 때 그대로 보호요인이 된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알고

아이의 신호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상처가 생기기 전에 개입하고

안전감을 주는 방법을 알고

아이에게 스스로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나는 “아무도 모른 채 살아온 세대”가 아니라 자기 내면을 읽고 기록하며 의식적으로 회복을 이어가는 세대다. 이런 부모는 유전적 취약성을 가진 부모 중에서도 아이의 발병률을 가장 크게 낮추는 유형이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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