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권 체계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병목

전문가는 많은데, 왜 아동학대 현장은 이렇게 비어 있을까

by 민진성 mola mola

한국에는 아동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 인력이 많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고려대 등 수십 년 동안 아동학·가족학·아동심리·사회복지 분야에서 탁월한 석학들이 축적되어 왔다. 대학원에서도 아동보호, 아동권, 발달심리, 가족치료를 연구하는 인력이 꾸준히 배출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대학 교수도, 상담전문가도, 석·박사 연구자도 아니다. 현장에는 과중한 업무를 떠안은 사회복지사, 야간 출동을 감당하는 아동보호전문요원, 모든 책임을 짊어진 지자체 공무원만 남는다. 왜 한국에서는 전문가가 실제 아동학대 개입에 참여하지 않는가? 전문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전문가를 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문지식의 축적’은 강한데

‘전문지식의 활용’은 거의 없다. 한국의 학자들은 연구 역량이 높고, 국제 학술적 성과도 많다. 하지만 한국의 정책 구조는 학문 → 현장이라는 통로가 거의 없다.

학계는 논문·강의 중심

현장은 인력·예산·시스템 부족

정부의 연구-정책연결 구조는 미약

전문가가 현장 개입을 제도적으로 배치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음

다시 말해, 한국은 전문가를 길러내지만 그 전문가가 설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성이 현장에 흘러갈 길목이 막혀 있다.



아동보호 현장은 전문가가 버티기엔 너무 열악하다

한국에서 아동학대 1차 대응을 맡는 직군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요원들과 지자체 사회복지사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이렇다:

월급 240~280만 원

야간·주말 출동

위험가정 방문

법적 책임은 큼

정서적 소진 극심

1인당 맡는 사례 수 과다

이직률 상시 30~40%

이 조건에서 석·박사급 아동 심리 전문가나 상담 전문가가 이 현장에 들어가길 기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직업 구조가 전문가를 거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아동학대 개입 전문가’라는 직군 자체가 없다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은 아동학대 대응을 위해 공공직군을 따로 만든다.

아동보호 서비스(CPS) 요원

임상 트라우마 심리사

가정 개입 전문직군

소아 트라우마 치료팀

아동권 옹호자(Child Advocate)

가정방문 사회복지사(Home Visitor)

이들은 모두 국가가 양성하고, 국가가 고용하고, 국가가 시스템 안에 배치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아동학대 개입 전문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기존의 사회복지사가 ‘추가 업무’로 떠안고 있을 뿐이다. 전문직군이 없으니 전문가가 들어갈 문도 없다.



한국은 아동을 ‘권리 주체’가 아닌

‘부모의 책임물’로 본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한국은 아직도 아동을 ‘독립된 시민’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개입은 부담스럽고

강제 분리는 꺼려지고

부모의 양육권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며

국가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밀려난다

전문가가 개입하려면 가정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데 한국은 그 문턱이 너무 높다. 부모의 권리는 강하고 아동의 권리는 약하기 때문. 그래서 전문가 개입 구조는 태생부터 설계되지 않았다.



한국은 “연구 → 정책 → 현장” 연결이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해외에서는

대학 연구 →

정부 파일럿 →

공공 서비스 도입 →

전문직군 배치 →

현장 적용

이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 연구 →

논문 →

학회 →

(여기서 끝)

연결 고리가 없다. 그래서 전문성은 쌓이지만 현장에는 내려오지 않는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건 ‘전문가의 역할’이 아니라

전문가가 설 수 있는 ‘전체 구조’다. 전문가가 현장에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전문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다. 한국 사회가 진짜로 변화하려면 전문가를 탓할 게 아니라 전문가가 개입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직군·권한·예산·철학이 모든 것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국의 아동학 전문성은 종이 위의 지식에서 현장의 안전망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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