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

아동학대가 반복되는 근본 이유는 아동에게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by 민진성 mola mola

한국 사회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은 뜨겁고 분노는 거세다. 정치권도 “처벌 강화”를 외치고, 언론은 참혹한 사건을 집중 조명한다. 그런데도 학대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더 은밀해지고, 더 장기화되고 있다. 왜일까? 왜 한국에서는 아이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온 사회가 ‘이럴 수가’라고 외치는 일이 반복될까? 그 이유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그리고 잔인할 정도로 구조적이다. 한국에서 아동은 법적·제도적 권리의 주체가 아니고 국가기관은 부모의 동의 없이는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동보호 체계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 설계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은 아동을 ‘권리 주체’로 보지 않는다

선진국의 아동권 개념은 명확하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위험 상황에서는 국가 개입이 최우선이다

아동의 생명·안전·의사는 기본권이다

반면 한국의 인식은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다.

“아동은 부모 책임 아래 있는 존재”

“부모의 동의 없이 개입하면 가정 파괴다”

“가정 분리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 한국 아동보호 시스템의 근본적 한계를 만든다. 아동은 보호 대상이지만 스스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권리를 주지 않으면서 보호하겠다는 구조는 성립할 수 없다.



한국의 국가기관은 권한이 없다—정말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름만 기관이지 권한은 놀라울 만큼 약하다.

강제 조사 불가

강제 진입 불가

부모가 거부하면 방문도 불가

아동 분리 권한 없음

치료 개입도 부모 동의 필요

부모가 “훈육이었다”고 하면 사건 종결 가능

즉,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국가 개입을 ‘허락’해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은 제도라기보다 구조적 모순, 혹은 구조적 방기다. 이런 시스템에서 조기발견, 사후치료, 재학대 예방이 가능한가? 가능할 리가 없다.



‘가정 보존’이라는 명분은

현실에서 부모 권력만 강화한다. 이론적으로 가정 보존은 훌륭한 원칙이다. 가정 해체는 분명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원칙이 이상한 방식으로 절대화되었다.

부모가 폭력적이어도

장기간 학대가 있어도

재학대 위험이 명백해도

가정 분리는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 구조가 부모의 권리를 무한히 확대하고 아동의 권리를 무한히 축소한다는 것이다. 폭력적인 가정도 ‘보존해야 할 가정’이 되어버린다. 아이의 안전보다 부모의 권리가 앞서는 사회, 그곳에서 아동학대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조기발견? 사후처리? 전부 불가능해진다

한국의 아동학대 대응은 언뜻 보면 다양한 시스템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신고 의무자 제도

아동보호전문기관

아동학대 조사 공무원

위기 가정 지원 프로그램

하지만 이 모든 시스템이 실제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한 가지를 통과해야 한다. 부모의 동의. 부모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조사 불가. 부모가 상담을 거부하면 개입 종료. 부모가 보호시설 이송을 반대하면 분리 불가.

가해 부모가 아이 보호의 관문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에서는 어떤 선진 시스템을 갖다 붙여도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의 아동은 말 그대로 “보호받지 못한 시민”이다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부모의 도덕성 문제도 아니고 개별 기관의 역량 부족도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아동이 권리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아이를 대신해 싸울 수 없다. 국가가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할 힘이 없다. 아동 보호 체계는 가정의 문 앞에서 무력해지고, 아동의 목소리는 부모의 시선 앞에서 사라진다. 그 사이에서 학대는 반복된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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