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왜 더 쉽게 다치는가

불안, 자기치료, 그리고 취약이 만들어지는 과정

by 민진성 mola mola

물질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왜 더 쉽게 다치는가

“물질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더 자주 피해자가 된다.” 이 문장은 사실처럼 소비되지만, 늘 불편하다. 마치 피해의 원인이 개인의 선택에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만 바꿔보면 풍경이 달라진다. 그들은 왜 물질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더 취약한 상태에 오래 머물게 했을까?



불안은 언제나 먼저 존재했을까

많은 경우, 물질 사용은 쾌락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불안, 과각성, 공허, 수치심, 잠들 수 없음.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무언가를 찾는다. 술은 긴장을 낮추고, 약물은 감정을 흐리며, 자극은 무기력을 밀어낸다. 이때 물질은 문제라기보다 도구에 가깝다. 스스로를 치료하려는 시도, 실패한 자기조절의 흔적이다. 그래서 임상에서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중독은 실패한 자기치료다.”



그런데 왜 사용은 곧 취약으로 이어질까

문제는 시간이 흐른 뒤에 발생한다. 물질 사용은 점점 판단을 흐리고, 경계를 무디게 만든다. 위험을 인지하는 능력,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감각,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힘이 서서히 약해진다. 그 결과 사람은 더 위험한 상황에 오래 머문다. 폭력, 착취, 학대, 사고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가해자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보호 능력이 일시적으로 무너진 상태가 반복되기 때문이라는 점.



원인과 결과는 한 방향이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불안 때문에 물질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물질 사용이 불안을 만드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둘은 동시에 일어난다.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한 물질은 장기적으로 뇌의 스트레스 시스템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판단을 담당하는 기능은 약해지고, 보상은 점점 무뎌진다. 결국 사람은 이전보다 더 불안해지고, 더 적은 선택지 속에서 다시 물질을 찾게 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환 구조다.



취약은 만들어진다

물질 사용이 반복되면서 또 하나의 변화가 생긴다. 자기 인식의 변화다. “나는 이거 없이는 버틸 수 없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이 믿음은 수치심과 무력감을 남긴다. 관계는 좁아지고, 지지는 줄어든다. 취약은 성격이 아니라 과정이 된다. 그래서 물질 남용과 트라우마는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얽힌다.



‘남용’은 단일한 상태가 아니다

중요한 점 하나를 더 짚고 싶다. 물질 사용은 흑백이 아니다. 누군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과사용한다. 누군가는 반복적으로 문제를 겪는다. 누군가는 기능 손상과 강박적 사용까지 간다. 이 모든 것은 연속선 위에 있다. 사용 빈도나 물질의 종류가 핵심이 아니다. 통제력, 기능 손상, 그리고 대안적 조절 능력이 핵심이다. 그래서 단순한 낙인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 “이 사람은 왜 이 방법 말고는 고통을 다루는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비난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약해서 다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불안했고, 너무 오랫동안 혼자 버텼을 뿐이다.


물질 남용과 피해, 트라우마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조절의 실패가 만들어낸 구조다. 그리고 구조는 개인만의 힘으로 끊기 어렵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 낙인 대신 맥락을, 판단 대신 질문을. 그리고 그 질문이 누군가를 덜 다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번호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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