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구가 두려워서 끊어왔다

CPTSD, 거절의 공포가 아니라 ‘그 이후를 혼자 감당해야 했던 기억’

by 민진성 mola mola

이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관계에서 요구해야 할 장면이 오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거부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아예 가까워지지 않거나, 아주 이르게 끊어왔다. 이건 추측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인식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많은 설명들이 다시 정렬된다.



두려웠던 건 ‘거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요구가 두려운 건 거절당할까 봐서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두려움의 핵심은 거절 그 자체가 아니라, 거절 이후의 상태였다. 요구했을 때 상대가 불편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분위기가 바뀌고, 관계의 온도가 달라지고, 그 어색함과 긴장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것 같다는 예감. 그 예감이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을 먼저 멈추게 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선행 차단’이다

나는 불편한 장면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다. 불편해질 가능성이 보이면 아예 그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차단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위험은 두 번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니까. CPTSD의 맥락에서 보면 이건 미숙함이 아니라 위험 예측 능력이 과도하게 발달한 상태에 가깝다. 요구는 안전하지 않았고, 경계 설정은 관계 붕괴로 이어졌으며, 거절은 종종 처벌이나 고립으로 돌아왔다. 몸은 그 기억을 정확하게 저장하고 있었다.



나는 요구를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요구를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구가 필요해질 관계를 아주 잘 골라서 피한 사람이었다. 요구를 해야만 유지되는 관계, 조율이 필수인 관계, 불편함을 통과해야 깊어지는 관계. 그 모든 가능성을 관계 초입에서 제거해왔다. 그건 무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문제는 전략이 아니라 ‘범위’였다

이 전략은 분명히 나를 지켜줬다. 하지만 너무 잘 작동한 나머지 한 가지를 함께 제거해버렸다. 요구해도 괜찮다는 경험, 요구 이후에도 관계가 유지되는 장면, 불편함을 말했는데도 존중받는 순간들. 나는 관계를 끊은 것이 아니라 그런 장면들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지워왔다.



CPTSD의 관계 문제는 여기에 있다

CPTSD에서 말하는 관계의 어려움은 ‘요구를 못한다’는 단순한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요구 → 관계 변화 → 정동 폭주. 이 연쇄가 너무 선명하게 기억되어 있어서, 그 첫 단추를 아예 꿰지 않는 상태. 그래서 선택지는 늘 둘뿐이었다. 요구하지 않고 관계에 남기, 혹은 요구가 필요해질 것 같으면 떠나기. 그 사이의 중간 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질문은 바뀐다

그래서 지금의 질문은 “나는 왜 이랬을까”가 아니다. 나는 어떤 관계에서라면 요구 이후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될까. 모든 관계에서 요구를 연습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건 위험하다. 정동의 파도가 크지 않고, 권력의 비대칭이 없고, 관계가 한 번의 불편으로 무너지지 않는 구조. 그런 관계에서 아주 작은 요구부터 시작하는 것. 이건 용기가 아니라 안전 설계의 문제다.


나는 요구가 두려워서 끊어왔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요구 이후를 항상 혼자 감당해야 했던 사람에게 그건 너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중요한 건 그 전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른 선택지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구를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요구해도 혼자가 되지 않는 관계. 그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이미 예전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생각번호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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