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엄격한 질서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요구가 봉쇄된 구조들
나는 권위나 엄격한 질서를 잘 견디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유분방함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조직 부적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감각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그건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구조에 대한 신경계의 반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규칙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위계가 분명하고
규칙이 협상 불가능하며
개인의 사정이나 맥락이 고려되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먼저 오는 구조다.
이 구조의 공통점은 하나다. 요구·거절·조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이런 구조 안에 들어가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숨이 막히는 느낌, 말을 꺼내기 전에 계산부터 하게 되는 상태, 불편함을 느껴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이건 반항이 아니다. 위험 예측이다. CPTSD의 맥락에서 권위적 구조는 단순한 질서가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호출하는 장치가 되기 쉽다. 요구는 위험했고, 경계 설정은 관계 붕괴로 이어졌으며, 질서는 보호가 아니라 통제였던 기억. 몸은 그 패턴을 잊지 않는다.
이 감각은 인간관계에서 보였던 패턴과 닮아 있다. 요구해야 할 장면이 올 것 같으면 아예 관계에 들어가지 않거나, 거부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르게 끊어버리는 선택. 권위적 구조에 대한 회피도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여기서 나는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그 답이 ‘아니오’로 느껴지는 순간, 몸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한다.
나는 불편해진 뒤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편해질 가능성이 보이면 그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미리 차단해왔다. 관계에서든 조직에서든 요구가 봉쇄된 구조에는 아예 진입하지 않는 방식. 이건 미숙함이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서 학습된 고급 생존 전략이다.
이 전략은 분명히 나를 지켜줬다. 하지만 너무 잘 작동한 나머지 한 가지를 함께 걸러냈다. 요구해도 괜찮은 위계, 불편함을 말해도 관계가 유지되는 구조, 조율이 가능한 질서. 모든 권위와 모든 규칙을 같은 위험으로 분류해버렸을 가능성.
그래서 이 문제를 “사회생활을 위해 참아야 한다”로 풀면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권위를 더 잘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요구·거절·조율이 가능한 권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모든 위계 ❌
모든 질서 ❌
모든 조직 ❌
핵심은 요구가 허용되는 구조인가다.
내가 권위와 엄격한 질서를 못 견디는 건 자유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요구가 봉쇄된 구조를 너무 정확하게 알아보는 몸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건 결함이 아니다. 정교한 위험 감지 능력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감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적용할지 다시 조정하는 것이다. 권위를 견디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해도 혼자가 되지 않는 구조를 구별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다음 단계다.
#생각번호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