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권위의 역전, 그리고 ‘규칙이 요구를 허용하는가’라는 질문
나는 권위와 엄격한 질서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내가 규칙을 만드는 입장이라면 괜찮아질까? 아니면 규칙이라는 형식 자체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할까? 이 질문은 단순히 리더십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내가 어떤 구조에서 숨을 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분명해진 게 하나 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규칙 그 자체도, 권위 그 자체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규칙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예외와 조정이 허용되지 않으며
요구나 거절이 봉쇄된 구조였다.
그 안에서는 불편함을 말하는 순간 관계나 소속이 흔들릴 것 같았고, 요구는 곧 위험이 됐다.
내가 규칙을 만드는 입장에 서면 구조는 확실히 달라진다. 규칙의 목적과 맥락을 알고 있고, 필요하면 바꿀 수 있으며, 적어도 요구가 금지된 상태는 아니다. 이 차이는 크다. 신경계는 이것을 통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내가 규칙을 만드는 위치에 있으면 대체로 훨씬 덜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가 있다. 내가 짰다고 해서 모든 규칙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내가 만들어도 힘들어질 수 있는 규칙은 분명히 있다.
수정 불가능한 원칙
예외를 위반으로 취급하는 규칙
감정과 상태를 배제한 효율 중심의 질서
나 자신을 가장 엄격하게 통제 대상으로 삼는 구조
이 경우 권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했을 뿐이다. CPTSD의 맥락에서는 이 내부화된 권위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내가 규칙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 규칙 안에서 요구와 조율이 가능한가.
이 규칙은 왜 존재하는가
이 규칙은 누구를 돕기 위한 것인가
이 규칙은 수정될 수 있는가
이 규칙 안에서 나 자신도 요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막히는 순간, 규칙은 다시 통제가 된다.
CPTSD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내가 위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 선택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가져도, 규칙을 만들어도 요구가 위험했던 기억은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의 위치가 아니라 구조의 성격이다.
정리해보면, 나는 무질서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경직된 질서를 견딜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가장 안정되는 지점은 요구가 허용되고, 조율이 전제된 구조다. 그래서 나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보다 규칙을 ‘설계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정확히는, 규칙이 사람을 통제하지 않도록 요구의 통로를 남겨두는 사람.
내가 규칙을 만드는 입장이면 확실히 더 괜찮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규칙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규칙 안에 숨 쉴 틈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 중요한 것은 권위를 피하는 것도, 권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요구가 봉쇄되지 않는 구조를 알아보고, 만들고, 선택할 수 있는지. 그게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생각번호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