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 권위의 위치가 아니라 합의가 닫히는 순간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권위적인 구조를 못 견디는 이유는 내가 그 안에서 약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 중 하나여도 그 조직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작동한다면 나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규칙을 설계하는 입장에 있어도 다수의 구성원이 하나의 신념을 만들어버리는 순간 그 구조는 다시 숨 막히는 곳이 된다. 결국 문제는 위치가 아니라 조직의 성격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위에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면 덜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직이 하나의 신념으로 굳어지는 순간, 권위의 위치는 의미를 잃는다. 그때부터 규칙은 조정 가능한 약속이 아니라 도덕이 되고, 합의는 임시적인 선택이 아니라 영구적인 진리가 된다. 이 구조에서는 규칙을 만든 사람조차 다시 요구할 자리를 잃는다.
조직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소수가 권력을 쥘 때가 아니라, 다수가 하나의 생각에 완전히 합의했다고 믿을 때다. 그 순간부터 의견 차이는 건설적인 토론이 아니라 질서를 흔드는 행위가 되고, 불편함의 표현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왜 너만 그래?” 이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조직은 이미 닫히고 있다.
조직은 겉으로 민주적일 수 있다. 회의도 하고, 투표도 하고, 모두의 의견을 듣는 형식도 갖춘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의견이 실제로 바뀔 수 있는가
불편함을 말해도 문제 인물로 낙인찍히지 않는가
다수의 합의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으로 남아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조직은 민주적인 얼굴을 한 닫힌 구조에 가깝다.
돌아보면, 내가 힘들었던 것은 위계나 규칙 자체가 아니었다. 진짜 힘들었던 것은 이견이 허용되지 않는 합의 구조, 그리고 조직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 안에서는 요구를 말할 수 없고, 거절은 곧 배제가 되며, 조율은 질서 교란으로 읽힌다. 이건 개인의 예민함이나 적응력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닫혔다는 신호다.
이제 나는 조직을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내가 소속원이어도 요구할 통로가 열려 있는가. 내가 설계자여도
다수의 신념이 언제든 수정 가능한가, 합의가 질문을 금지하지는 않는가.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위치와 상관없이 나에게 위험하다.
#생각번호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