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보되 마음까지 보기는 어려운 이유

신체 질환 진료에서 정신질환을 염두에 두라는 말의 한계와 실제

by 민진성 mola mola

“신체 질환을 볼 때 외상과 정신질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

트라우마와 정신질환 관련 서적이나 가이드라인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신체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아동기 학대나 성인기의 대인 간 외상, 정신질환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권고다. 이 문장은 윤리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병원에서 이 권고가 일상적으로 실행되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문장은 ‘현실 설명’이 아니라 ‘이상적 기준’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이 권고는 현재 의료 현실을 묘사하는 문장이 아니라, 의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문장에 가깝다. WHO, ACEs 연구, 트라우마 인폼드 케어 가이드라인 등은 모두 공통적으로 말한다. 정신적 외상은 신경계, 면역계, 내분비계를 통해 신체 질환의 발생과 경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몸만이 아니라 그 몸이 통과해 온 환경을 함께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이 인식이 곧바로 진료실의 질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 신체과 진료에서 실제로 묻지 않는 이유

현실의 외래 진료는 매우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짧은 진료 시간 안에 증상을 분류하고, 검사를 선택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 정신질환이나 외상력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예·아니오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안전 확보, 설명, 감정 반응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고, 그 순간 진료는 다른 차원의 책임을 동반하게 된다. 대부분의 신체과 진료 구조에서는 이를 감당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감기, 급성 통증, 단순 외래에서는 외상력이나 정신질환을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의사 교육의 한계도 분명하다

대부분의 신체과 의사는 충치, 염증, 종양, 수치 이상처럼 눈에 보이거나 검사로 확인되는 병리를 중심으로 훈련받는다. 스트레스가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PTSD나 CPTSD가 통증 증폭이나 증상 지속에 어떻게 관여하는지까지 체계적으로 배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정신적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알고는 있어도, 그것을 실제 진단 과정에 어떻게 포함시켜야 하는지는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법적·윤리적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장벽

외상력, 특히 아동 학대나 대인 간 폭력은 의료 기록, 신고 의무, 법적 책임과 연결될 수 있다. 의사가 그 질문을 꺼내는 순간, 단순한 진료를 넘어서는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부담은 의사 개인의 회피 성향 때문이 아니라, 제도가 요구하는 책임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의료 현장에서는 “차라리 묻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럼 실제로 언제 고려되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권고가 완전히 공허한 말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는 실제로 정신질환이나 외상력이 고려되는 경우가 있다. 원인 불명의 만성 통증, 기능성 위장 장애, 반복되는 증상 악화,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증상이 심한 경우처럼 기존 의학적 설명이 잘 맞지 않을 때다. 이때 일부 진료과나 숙련된 의료진은 스트레스, 외상, 정신과 병력에 대한 간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역시 예외에 가깝고, 일상적인 표준 진료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의 위험

여기서 중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신체 질환 진료에서 정신질환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 신체 증상을 정신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명확한 원인이 보이지 않을 때, 충분한 설명 없이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 환자에게 던져진다. 이 말은 통합적 접근이 아니라 책임의 이동으로 들릴 수 있다. 정신질환을 고려한다는 것은 신체적 원인을 배제한 뒤 책임을 환자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신경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려는 시도여야 한다.



이 간극은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의사가 마음을 더 써서 해결될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의료 시스템이 허용하는 범위의 문제에 가깝다. 짧은 진료 시간, 분절된 전문과 체계, 정신건강과 신체의 분리된 보험 구조는 이 간극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신체 질환을 볼 때 정신질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맞지만, 동시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 선언에 가깝다.


이 권고를 현실과 다르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당신의 경험이 틀려서가 아니다. 의료는 아직 그 말이 요구하는 만큼 통합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몸을 보되 마음까지 보라는 말은 옳다. 다만 지금의 의료는 아직, 그 말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 이 간극을 이해하는 것은 의료를 불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료가 어디까지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기 위해서다.




#생각번호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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