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진단 언어가 특정 문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

by 민진성 mola mola

트라우마 진단은 보편적인가

우리는 흔히 PTSD나 CPTSD 진단 기준을 인간 보편의 고통을 설명하는 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현재 통용되는 트라우마 진단 기준은 특정 문화권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기준은 중립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진단 체계는 잉글로색슨 문화권에서 형성되었다

현재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진단 체계는 DSM과 ICD다. 이 중 DSM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만들었고, ICD 역시 초기 설계와 연구 축적 과정에서 서구, 특히 미국과 서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PTSD 개념 자체도 베트남전,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의 전쟁 외상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정립되었다. 즉, 진단의 출발점에는 서구 군사 경험과 개인 중심 사회의 트라우마 서사가 놓여 있다.



진단 기준에 깔린 문화적 전제

현재의 트라우마 진단 기준에는 몇 가지 암묵적인 전제가 있다. 첫째, 개인 중심성이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내 감정과 기억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고통을 설명한다. 둘째, 사건 중심성이다. 트라우마는 시작과 끝이 비교적 분명한 ‘충격적 사건’으로 가정된다. 셋째, 감정의 언어화 가능성이다. 공포, 분노, 죄책감 같은 감정이 명확히 인식되고 말로 표현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전제들은 잉글로색슨 문화권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럽지만, 모든 문화에서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왜 CPTSD에서 이 한계가 더 선명해지는가

CPTSD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만성적인 환경에서 형성된다. 가정폭력, 위계적인 가족 구조, 지속적인 통제와 방임, 탈출이 불가능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은 하나의 사건으로 분리되기 어렵고, 기억보다 기능 변화와 신체 반응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감정은 둔마되고, 말보다 태도와 생활 양식이 바뀐다. 그러나 기존 PTSD 기준은 이러한 형태의 고통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비서구 문화권의 고통은 어떻게 놓쳐지는가

동아시아를 포함한 집단 중심 문화권에서는 고통이 개인의 감정보다 역할 수행, 기능 저하,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참거나 견디는 것이 미덕으로 학습된 환경에서는 감정 표현 자체가 억제되기도 한다. 이 경우 트라우마는 분명 존재하지만, 기준에 맞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아 과소평가되거나 다른 문제로 오인되기 쉽다.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곧 “고통이 덜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의학계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며 등장한 흐름이 문화정신의학이다. 문화마다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개념, 즉 ‘고통의 관용어(idioms of distress)’가 연구되기 시작했다. 또한 ICD-11에서 CPTSD가 별도로 명시된 것 역시, 기존 PTSD 틀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기존 진단 체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수정과 확장의 과정이다.



진단 기준은 진실이 아니라 도구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진단 기준은 인간의 고통을 규정하는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치료와 제도를 위한 도구다. 도구는 유용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이 덜한 것도, 설명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트라우마 진단 기준은 잉글로색슨 문화권의 개인주의적, 사건 중심 서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틀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왔다. 이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진단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통을 더 정교하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줄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기준이 경험을 따라 확장되어야 한다. 트라우마는 문화와 분리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고통을 바라보는 시야는 훨씬 넓어진다.




#생각번호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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