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잠재력을 유한한 현실로 치환할 때 생기는 슬픔에 대하여
나는 이성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선택 전의 망설임은 '기회비용'을 따지는 합리적인 과정이고, 선택 후의 후회는 이미 지불된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비합리적인 태도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매번 이 논리적인 도식 앞에서 무너진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이유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만 가지의 ‘나’를 모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내가 모델링했던 다른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들은 공집합(∅)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그 상실이 두려워 선택의 문 앞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왜 우리는 이미 끝난 선택(매몰비용)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할까? 나는 그 이유를 인간이 가진 '시뮬레이션 본능'에서 찾는다.
인간의 뇌는 고도로 발달한 예측 모델링 장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현실을 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수천 개의 '만약(If-then)' 시나리오를 동시에 돌린다. 합리적 계산기는 "이미 선택했으니 끝났다"라고 말하지만, 나의 시뮬레이션 모델은 "만약 저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가중치가 더 높은 행복을 얻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출력한다.
결국 우리의 비합리성은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상상력이 모델링을 압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평행 우주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정작 내가 딛고 있는 한 평의 땅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정교한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최적의 선택'을 내린다 해도, 그 선택에는 반드시 '상실'이라는 변수가 포함된다. 아무리 멋진 선택이라도 그 선택이 '나머지 모든 가능성의 배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그곳이 바로 '모든 것이 집합의 원소가 될 수 있었던 잠재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결정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그 카오스의 상태 말이다.
나는 이제 나의 비합리성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매몰비용에 아파하고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내 삶의 가능성들을 소중히 여겼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모델링은 오직 '닫힌 계'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열려 있고, 우리가 다 살 수 없는 생애들은 '미련'이라는 형태로 우리 곁에 남는다. 어쩌면 그 미련이야말로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특징값(Feature)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선택하고, 상실하며, 그 아쉬움의 무게만큼 더 인간다워진다.
#생각번호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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