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모든 선택은 상실이다

무한한 잠재력을 유한한 현실로 치환할 때 생기는 슬픔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기회비용이라는 유령, 매몰비용이라는 족쇄

나는 이성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 경제학적으로 본다면, 선택 전의 망설임은 '기회비용'을 따지는 합리적인 과정이고, 선택 후의 후회는 이미 지불된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비합리적인 태도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매번 이 논리적인 도식 앞에서 무너진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이유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수만 가지의 ‘나’를 모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내가 모델링했던 다른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들은 공집합(∅)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그 상실이 두려워 선택의 문 앞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인간은 왜 이토록 비합리적인가

왜 우리는 이미 끝난 선택(매몰비용)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할까? 나는 그 이유를 인간이 가진 '시뮬레이션 본능'에서 찾는다.

인간의 뇌는 고도로 발달한 예측 모델링 장치다. 우리는 단 하나의 현실을 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수천 개의 '만약(If-then)' 시나리오를 동시에 돌린다. 합리적 계산기는 "이미 선택했으니 끝났다"라고 말하지만, 나의 시뮬레이션 모델은 "만약 저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가중치가 더 높은 행복을 얻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끊임없이 출력한다.

결국 우리의 비합리성은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상상력이 모델링을 압도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평행 우주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정작 내가 딛고 있는 한 평의 땅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모든 선택이 멋있을지라도 따르는 불가피한 상실

내가 아무리 정교한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최적의 선택'을 내린다 해도, 그 선택에는 반드시 '상실'이라는 변수가 포함된다. 아무리 멋진 선택이라도 그 선택이 '나머지 모든 가능성의 배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그곳이 바로 '모든 것이 집합의 원소가 될 수 있었던 잠재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결정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그 카오스의 상태 말이다.



비합리성을 끌어안는 법

나는 이제 나의 비합리성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매몰비용에 아파하고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내 삶의 가능성들을 소중히 여겼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모델링은 오직 '닫힌 계'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열려 있고, 우리가 다 살 수 없는 생애들은 '미련'이라는 형태로 우리 곁에 남는다. 어쩌면 그 미련이야말로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특징값(Feature)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선택하고, 상실하며, 그 아쉬움의 무게만큼 더 인간다워진다.




#생각번호20260113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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