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자들의 위험한 반란

육체적 풍요를 배반하고 지적 진실을 선택한 엘리트들의 결핍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배고픔보다 지독한 '해석의 빈곤'

흔히 혁명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1600년대 과학혁명은 달랐다. 갈릴레이, 뉴턴, 데카르트 같은 이들은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의 고달픔도, 물질적 부족함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육체적 허기보다 더 지독한 결핍이 있었다. 바로 ‘세상을 설명할 논리적 도구의 부재’였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과 종교적 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눈으로 관찰한 사실(데이터)과 물려받은 정답(교리) 사이의 거대한 괴리를 목격했다. 나에게 있어 모델링의 실패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듯, 그들에게도 맞지 않는 수식으로 세상을 억지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일종의 '지적 학대'와 같았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중독적 간절함'

엘리트 지식인이 박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목숨보다 무겁다는 뜻이다. 그들이 가졌던 간절함은 '생존'이 아니라 '정합성(Consistency)'에 있었다.

내가 '닮음'을 수치화하고 '게놈'을 해독하려 하듯, 그들은 신이 설계한 이 거대한 우주의 코드를 직접 읽어내고 싶어 했다. 중세라는 낡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가짜 정답'으로는 더 이상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진리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거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 간절함은 배고픈 자의 빵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처절했다.



기득권을 버린 '모델링의 혁명'

당시의 엘리트들에게 기존의 체제(천동설, 스콜라 철학)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존경과 안락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 울타리를 부수고 나왔다. 왜일까?

그것은 '완전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뛰어넘는, '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지성의 본능' 때문이었다. 그들은 관습적 지혜(Conventional Wisdom)가 말하는 안락한 행복 대신, 비합리적으로 보일 만큼 고통스러운 '진실의 수호'를 택했다.

그들이 박해를 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무정부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부(교회와 국가)보다 더 강력하고 근원적인 '자연의 법칙'이라는 새로운 정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법보다 우주를 관통하는 수학적 질서에 복종하기를 원했다.



결핍은 물질에만 있지 않다

1600년대 과학운동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때로 위장이 아니라 두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내가 세상을 모델링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나에게도 지적 불일치는 참을 수 없는 결핍이며, 모호한 현상을 명확한 집합으로 분류해내지 못하는 상태는 일종의 불안이다.

결국 혁명은 '가장 절실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빵 한 조각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구가 돈다는 명확한 수식 하나'일 수도 있다. 엘리트였던 그들이 박해를 자처했던 이유는, 거짓된 평화 속에 사느니 진실된 고통 속에서 우주의 지도를 그리겠노라는 고결한 비합리성 때문이었다.




#생각번호20260113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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