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물질을 만드는가, 물질이 정신을 만드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유물론은 말한다. 물질이 먼저고, 정신은 그 부산물이라고. 관념론은 반대로 말한다. 정신이 먼저이고, 물질은 그 결과라고. 하지만 이 두 입장은 이미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실체라는 전제. 그리고 바로 그 전제가, 화이트헤드에게는 잘못된 출발점이다.
세계는 ‘물질’이 아니라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이트헤드에게 세계의 최소 단위는 물질도, 정신도 아니다. 그의 세계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는 셀 수 없이 많은 ‘일어남’들의 연쇄다. 그리고 이 하나의 사건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다. 이전 세계를 받아들이는 물리적 측면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정신적 측면. 정신은 물질 위에 덧붙여진 장식이 아니다. 물질 역시 정신의 결과물로 따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둘은 처음부터 함께 태어난다.
‘정신이 선행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
화이트헤드가 “정신적 측면이 선행한다”고 말할 때, 그는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한 정신은, “이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 능력이다. 모든 사건은 먼저 자신이 어떤 형태로 굳어질지를 결정하고, 그 결정이 물질적 사실로 현실화된다. 결정이 먼저이고, 물질은 그 결정이 굳어진 흔적이다.
유물론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유물론은 세계를 비의미적인 물질로 설명한다. 의미와 가치, 정신은 나중에 생겨난 부산물로 취급된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이미 결정과 의미 구조를 내장한 채 작동하고 있다. 세계의 가장 작은 단위부터 이미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구조가 들어 있다면, 정신은 부가물이 아니라 세계의 기본 작동 장치다.
이것은 관념론도, 유물론도 아니다
화이트헤드의 세계는 정신이 물질을 만들지도 않고, 물질이 정신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의 세계는 ‘결정이 세계를 만든다’는 구조로 움직인다. 모든 존재는 미세한 결정 주체이며, 동시에 그 결정이 굳어진 결과물이다. 이것은 관념론도, 유물론도 아닌, 결정이 세계의 기본 단위가 되는 우주론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이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
정신을 부산물로 밀어낸 세계에서는 의미, 책임, 가치가 언제든 지워질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최소 단위부터 이미 결정과 의미가 내장된 구조라면, 우리가 사는 현실은 단순한 물질의 우연이 아니다. 정신이 먼저인가, 물질이 먼저인가. 이 질문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대답은 이것이다. 결정이 먼저다. 그리고 그 결정이, 이 세계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