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혁명은 왜 멈추는가

"튀지 마라"는 조언이 가로막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사소한 혁명을 가로막는 '친절한' 방해자들

우리는 혁명이라고 하면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거창한 풍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혁명은 일상의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왜 이 길로만 가야 하지?", "이 관습적인 선택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나?", "이 현상을 다르게 분류할 수는 없을까?"

내가 '티모시 살라메를 닮은 사람'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 했을 때, 누군가는 "그냥 대충 보면 알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느냐"라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튀지 마라"는 권유는 사실 '생각의 비용을 줄이라'는 유혹이자, 동시에 '기존의 집합 체계를 흔들지 마라'는 경고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의 실험가들이 던지는 혁명의 불씨를 끄고 있는 셈이다.



통계적 안전이라는 감옥

사람들이 관습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이유는 그것이 통계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가 논했듯,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기에 검증된 경로(관습) 안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17세기의 엘리트들이 안락한 기득권을 버리고 박해를 택했던 이유는, 통계적 안전보다 '개별적 진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대판 "튀지 마라"는 압력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특이점(Singularity)을 제거하고 평범한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로 남으라고 종용한다. 내가 가진 고유한 가중치(w)를 무시하고 사회의 평균값에 자신을 맞추는 순간, 나만의 모델링은 멈추고 일상의 혁명은 사멸한다.



비합리적인 개척자가 필요한 이유

우리는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선택(비용 편익 분석)을 하라는 압박을 끊임없이 받는다. "남들처럼 살아야 나중에 고생 안 한다"는 말은 지극히 경제학적이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는 언제나 그 '합리성'의 울타리를 넘어선 비합리적인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소한 일상에서 관습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은,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에러(Error)'나 '노이즈(Noise)'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 과학에서 때로 결정적인 인사이트는 바로 그 노이즈에서 발견된다. "튀지 말라"는 말에 순응하는 것은, 우리 삶의 모델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수들을 스스로 삭제하는 행위와 같다.



나만의 '박해'를 즐기기로 했다

나는 이제 "튀지 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 내가 지금 누군가의 견고한 세계관에 균열을 내고 있구나.' 사소한 일상의 혁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관습이 정해준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는 불친절함에서 시작된다.

설령 그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상관없다. 17세기의 과학자들이 그랬듯, 나 역시 나만의 수식으로 세상을 다시 그리고 싶을 뿐이다. 집합의 경계를 다시 긋고, 나만의 행복 모델을 세우는 이 피곤한 작업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남들 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면, 나는 속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 남들이 보지 못한 공집합 너머의 원소를 나는 이미 발견했다"고 말이다.




#생각번호20260113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molamola.live/product-category/korean-essays/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4화배부른 자들의 위험한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