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오만

흄이 깨뜨린 인과율의 환상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세상을 '원인'과 '결과'라는 튼튼한 밧줄로 묶어 이해하려 한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불을 가까이하면 뜨거워지며, 공을 던지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연결은 너무나 공고해서, 우리는 원인만 보고도 결과를 예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18세기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우리의 이 거만한 확신에 차가운 질문을 던진다.

"정말 원인 속에 결과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구공은 어디로 굴러갈지 모른다

흄의 통찰은 당구대 위에서 선명해진다. 굴러온 당구공(원인)이 멈춰 있는 공을 때리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0.1초 뒤에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멈춰 있던 공이 튕겨 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흄은 고개를 젓는다. 우리가 공이 부딪히는 찰나의 순간(원인)을 아무리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들, 거기서 '튕겨 나간다'는 결과가 툭 튀어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멈춰 있던 공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거나, 제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당연히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오직 하나, 지금껏 수없이 그런 장면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즉, 인과관계는 사물에 깃든 법칙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든 '습관'일 뿐이다.



선천적이라는 이름의 독단

흄은 결과란 언제나 원인과 별개의 사건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성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흄은 이를 '독단'이라 부른다.

우리가 "A를 하면 반드시 B가 된다"고 단정 짓는 것은, 사실 이성의 승리가 아니라 '과거의 반복'에 중독된 결과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믿음조차 엄격히 말하면 논리적인 증거는 없다. 그저 어제까지 매일 떴기 때문에 내일도 뜰 것이라고 '기대'하는 습관적인 심리 상태일 뿐이다. 흄은 인간이 세상의 근원적인 법칙을 이성으로 선제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을 무참히 깨부순다.



익숙함이 가린 우연의 신비

흄의 철학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연결고리들이 느슨해진다. 인과관계라는 밧줄이 풀린 자리에는 '우연'과 '경험'이라는 텅 빈 공간이 나타난다.

우리가 "이게 원인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뒤에 숨겨진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거세해버린다. 결과는 원인 속에 미리 숨어 있지 않다. 매번 새롭게 탄생하는 사건일 뿐이다. 이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조차 '당연한 것'이 아닌 '경험적 기적'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다.



당연한 미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삶의 많은 좌절은 "이만큼 노력했으니(원인), 당연히 성공해야지(결과)"와 같은 독단적인 기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흄의 말대로 원인과 결과가 별개의 사건이라면, 우리의 노력 속에 성공이라는 결과가 반드시 내포되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성공은 노력이 만드는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세상과의 수많은 경험 속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이다. 인과율의 독단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일어나는 경험'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이건 당연해"라는 말 대신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다음은 알 수 없어"라는 겸손함을 가질 때, 비로소 세상은 우리에게 더 넓은 가능성을 허락할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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