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논리적인 선택

왜 악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악하고 이기적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나면, 곧바로 더 거대한 의문이 고개를 든다. 창조주라는 절대자가 보기에 인간이 그토록 결함투성이고 구제 불능이라면, 왜 굳이 그들을 사랑하는가? 왜 막대한 비용(희생)을 치러가며 그 비뚤어진 본성을 교정하려 애쓰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량품은 폐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은 그 불량품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비논리적인 선택을 한다.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가, 사랑해서 가치가 생기는가

보통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쁘거나, 착하거나, 나에게 이득이 되거나 하는 가치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의 사랑인 '아가페(Agape)'는 그 순서가 정반대다. 인간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사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치가 부여된다는 논리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기가 아무런 생산성이 없고 밤새 울며 자신을 괴롭혀도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예쁜 짓을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라는 ‘관계’가 그 모든 결함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깨진 거울 속에 담긴 원래의 얼굴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악한 존재’라고 말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신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신이 악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은 비록 죄와 이기심으로 얼룩져 일그러진 괴물처럼 보일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신이 처음에 설계했던 ‘아름다운 원형’이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진흙탕에 빠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황금 덩어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신에게 있어 인간을 교정하는 작업은 파괴가 아니라, 오염된 겉면을 닦아내어 원래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는 복원 작업이다.



결핍을 채우는 사랑의 목적

인간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그 이기심은 ‘결핍’에서 온다. 무언가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공허함을 스스로 채우려다 보니 끝없이 남의 것을 탐하고 자기만을 챙기는 악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결핍을 자신의 사랑으로 직접 채워줌으로써, 인간이 더 이상 이기적일 필요가 없는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다. 즉, 악한 인간을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그 악함을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전’인 셈이다.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 신

결국 "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최종적인 대답은 다소 허무하기까지 하다. "신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비추는 데 이유가 없듯, 사랑이라는 본질을 가진 존재는 그 대상이 아무리 자격이 없더라도 사랑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인간의 악함이 신의 사랑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이 선언은, 인간 측면에서 보면 지독하게 계산적인 ‘교정’처럼 보일지 몰라도, 신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본성을 증명하는 가장 치열한 행위다. 신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사랑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생각번호20260121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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