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닌 부채(負債)

창조의 책임과 부당한 강요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그리스도교는 신의 사랑이 아무런 대가 없는 순수한 은혜라고 말하지만, 피조물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 삶 속에 고통과 악한 본성이라는 결함이 내재되어 있다면, 신이 인간을 돌보는 행위는 '자비로운 사랑'이라기보다 '당연한 책임'에 가깝다. 그것은 신의 위대한 본성이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를 세상에 내놓은 자가 마땅히 져야 할 부채(負債)를 갚는 과정인 셈이다.



창조주의 책임과 피조물의 권리

기계에 결함이 있다면 제조사가 리콜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 시혜적인 사랑이 아니다. 인간이 이기적이고 악하게 설계되었다면, 혹은 그런 환경에 던져졌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신에게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돕는다"는 신의 고백은, 자칫 자신의 설계 오류나 방임을 덮으려는 미사여구처럼 들릴 수 있다. 피조물은 사랑을 구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올바른 삶의 조건을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의 의무라는 부당한 전가

여기서 더 큰 모순은, 신이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선의 의무'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혹은 책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너를 책임질 테니, 너는 비뚤어진 본성을 깎아내며 선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쳐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다시 인간에게 떠넘기는 일이다.

본성을 거스르는 교정의 고통을 인간이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면, 그것은 '구원'이라기보다 '강제 집행'에 가깝다. 고장 난 상태로 태어나게 해놓고, 스스로 수리비(선의 노력)를 부담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방적인 계약과 자유의지의 허구

흔히 그리스도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니 선택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태어남 자체를 선택하지 못한 이에게 "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본성대로 살다 멸망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를 주는 것은 진정한 자유라 보기 어렵다. 그것은 이미 답이 정해진 강요된 선택이다.

만약 신이 인간을 진정으로 존중했다면, 그가 짊어져야 할 '선의 의무' 또한 인간의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동의 없는 사랑은 폭력이고, 합의 없는 의무는 굴레일 뿐이다.



뒤바뀐 주객전대 : 누구의 의무인가

결국 질문은 본질로 돌아간다. 누가 누구에게 의무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선의 실천이 인간의 마땅한 도리라면, 그 이전에 신이 인간에게 준 '결함 있는 삶'에 대한 사과와 완벽한 보상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신의 명령이 무서워서나 그의 일방적인 사랑에 감복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서로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신이 우리에게 '선행의 의무'를 강요하는 한, 그 사랑은 결코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것은 창조주가 져야 할 책임을 피조물의 고통으로 메우려는 부당한 설계일 뿐이다.





#생각번호20260121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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