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채무 불이행

신의 책임과 나의 거부

by 민진성 mola mola

설령 신이 존재하고,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가정해 보자. 대개 종교는 이 지점에서 모든 논의를 끝내려 한다. "신이 너를 사랑하는데 무엇이 더 문제냐"고. 하지만 나는 바로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를 제기한다. 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그 사랑은 자애로운 베풂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당연히 져야 할 '무거운 책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는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어떤 존재를 무(無)에서 유(有)로 끄집어내는 행위는 우주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피조물은 자신의 존재 여부를 선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그의 훌륭한 성품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라, 자격 미달의 세상을 만들어낸 이가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사후 서비스여야 한다. 신의 사랑은 그의 본성이기 이전에, 우리라는 존재를 시작한 자가 짊어져야 할 '당연한 의무'다.



결함 있는 설계와 부당한 요구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신은 우리를 불완전하게, 때로는 악한 본성에 휘둘리게 설계하여 이 험난한 세상에 던져놓았다. 그리고는 그 결함을 교정하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할 의무'를 우리에게 강요한다. 이것은 부당하다.

고장 날 가능성이 다분한 기계를 만들어놓고, 그 기계가 스스로를 수리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제작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정의롭다 할 수 있을까? 신이 우리를 진정으로 책임지려 한다면, 선행의 의무를 우리에게 지울 것이 아니라 그 결함조차 감싸 안으며 아무런 조건 없이 고통을 멈추게 했어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이 낳은 폭력성

사랑은 쌍방의 합의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관계는 철저히 일방적이다. 신은 자신의 의지로 우리를 만들고, 자신의 의지로 사랑하며,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우리의 '응답'과 '변화'를 요구한다.

설령 그 사랑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나의 본성을 깎아내야 하고 원치 않는 시련을 견뎌야 한다면 그것은 피조물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방적인 몰입'일 뿐이다.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의 교리에 맞춰 나를 교정해야 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존재하게 한 책임은 신에게 있고, 그 존재를 살아내는 고통은 내가 감당하고 있다면, 이미 나는 내가 지불해야 할 몫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응답하지 않을 권리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가정 앞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사랑은 당신의 의무일 뿐, 나의 의무가 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신이 준 사랑이 감사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이 그만큼 존엄하고 평온했어야 한다.

하지만 본성적 악함과 세상의 시련이라는 가시밭길을 걷게 하면서, 그 끝에 '선의 의무'라는 또 다른 짐을 지우는 신의 설계는 공정하지 않다. 진정한 신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다할 뿐, 피조물에게 보답이나 교정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신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이 아니라, 부당한 계약 조건에 대한 정당한 거부다.





#생각번호20260121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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