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비정한 정의론
현대 우리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공기 속에 산다. 국경을 넘는 여행자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낯선 이국땅의 상인이 보호받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여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긴 시간을 지배했던 논리는 이와 정반대였다. 헨리 휘튼의 저서 『국제법의 원리』는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고대 국가들의 서늘한 풍경을 복원해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 타자란 곧 잠재적인 적이었다. 라틴어 'Hostis'가 이방인과 적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보편적인 선물이 아니라, 오직 시민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배양되는 특권이었다.
울타리 밖을 나서는 순간, 인간은 법의 보호를 받는 '인격체'에서 탈출한 '사물'로 전락했다. 휘튼이 묘사하듯, 어떤 국가와 명시적인 '약정'을 맺지 않은 이방인은 그 땅에 발을 들이는 순간 노예가 되었고 그 소지품은 몰수당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법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과도 같았다.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은 평화로운 상인을 약탈하는 행위가 문명국가에서 자행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고대 특유의 '실존적 공포'가 깔려 있다.
그들에게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죽이지 않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런 약속(계약)이 없는 타인은 언제든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을 선제적으로 약탈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리스크를 관리하는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었다. 정의란 '우리 편'의 안녕을 지키는 내부의 결속력이지, 경계 밖의 야만인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국가들이 해적질을 서슴지 않았던 사실은 정의의 개념이 '실력주의'와 결합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의 영웅 서사시 속에서 낯선 마을을 약탈하고 전리품을 챙기는 행위는 용맹함의 증거였지,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의 정의는 '관계'에서 나왔다. "우리는 같은 신을 믿는가? 우리는 같은 법률 아래 있는가? 우리는 서로 거래하기로 합의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타자는 인간이라는 종적 유대감보다는, 포획해야 할 야생동물이나 채취해야 할 자원에 더 가까웠다. 환대는 오직 '약속된 자'들만이 누리는 사치였던 셈이다.
우리는 고대의 이런 야만성을 보며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과연 인류의 본성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우리 편'이라고 규정하는 정의의 반경이 조금 넓어진 것뿐일까?
고전 국가들이 가졌던 불완전한 국제적 정의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법적 약속과 보편적 가치라는 가느다란 끈을 놓치는 순간, 인간은 언제든 서로를 사냥하던 그 비정한 해변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정의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타자를 '인간'으로 정의하기로 약속할 때만 유지되는 위태로운 문명의 성취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