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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Feb 13. 2020

쪽팔려서 한국에 어떻게 가지?

런던과 이별하는 일 D-23


 영국에서 취업 준비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정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쪽팔려서 한국에 어떻게 돌아가지?'였다. 해외 취업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일도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왔는데 9개월 만에 돌아가게 되다니. 고백하건대, 취업 시나리오의 실패가 영국에서 터질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오히려 유학생활로 인해 국내 취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국내 취업을 못했으면 못했지, 해외 취업이 힘들 거라곤 상상도 안 했다. 그랬던 내가 빈털터리로 돌아가게 될 줄이야. 런던이 나한테 이럴 줄이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실패 대비책을 준비한 후에 일을 도모하는 사람과,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 나는 100% 아니, 1000% 정도는 후자 쪽에 속했다. 어쩌면 어렸을 땐 모두가 후자였다가, 실패를 겪고 전자의 케이스로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영국에 돌아오기 전의 나는 마치 취업이 이미 보장돼있는 사람 마냥 실패의 가능성 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직 영국에 돌아가서 하나씩 부딪히다 보면 취업길이 열릴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주변 어른들 중에는 염려 섞인 목소리로 '가면 취업되긴 하는 거니?'라고 물어보신 분들도 계셨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 걱정들을 응수했다. 그러면 어른들은 영화 기생충의 대사, '역시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와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이미  해외 대학 진학에 성공했던 사례가 있었으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마음과, 내 황소고집을 꺾기 어려워 내비친 눈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 계획이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는 부류의 계획이 제일 못 미더운 계획이다. 이미지 출처: Google Image


 그런데 어느 날 내 인생극에 전혀 달갑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반전이 굴러 들어왔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반전은 극을 더 흥미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라고 알고 있는데, 이제부터 인생이 흥미로워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면 되는 걸까.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덕담과 함께 오만 원짜리가 든 흰 봉투를 내 주머니에 찔러주던  쭈글쭈글한 손, 출국 전날 얼굴 보자고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운전해서 나를 보러 와준 친한 언니의 얼굴, 공항에서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아빠의 슬픈 눈이 스쳐 지나갔다. 내 성공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있었나? 나만 바라 온 성공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하며 운을 띄어야 할지 생각해봤는데, '잘 안됐어요'라고 하고 머쓱하거나 냉랭한 얼굴을 띄우면 되는 건가 싶었다. 딱 이 한마디면 사람들은 내게 더 이상 내 실패 경험에 대해서 묻지 않을 터였다. 


'잘 안됐어요'



 '잘 안됐어요' 한마디면 모든 게 정리가 된다니. 마치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되고, 안되고'의 문제인 것처럼. 나의 실패가 물어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며,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 되는 건가. 그게 실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건가. 그런데 실패할 수도 있지 않나? 마치 잘 안된 게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쪽팔림에 얼굴도 못 들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진 않은데. 실패의 요인은 나한테 있지만, 그걸 깨달은 이상 앞으로는 개선해서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면 될 일인데. '거봐, 안될 거라고 했잖아. 어려울 거라고 했잖아'라고 하는 지인이 생긴다 한들, 생각을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시도한 내가 자랑스럽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내가 실패를 경험해보니, 새삼 실패에 대한 얘기는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취업을 생각했을 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조언을 구했고, 성공담만 찾아봤다. 실패담은 찾아본 적도 없지만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다. 그래서 내가 써봤다. 모든 성공담의 시작은 늘 미약했지만 창대한 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내 이야기도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야기. 성공하기 전 '우여곡절'이 있었고, '노력'을 했다는데, 도대체 그 노력이 어떤 것이고, 얼마만큼인지는 알 길이 없어서 막막했던 그 이야기.


모든 시험에 N수생이 있는 것처럼, 이루려던 일이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을 때는 살아있는 이상 끝없이 재시도를 할 수 있다. 나도 아직 비자 기간이 한참 남았기에 여기서 더 뻐겨 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근데, 나는 이만큼이면 충분히 시도를 해봤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서 더 남아서 한다면 그건 날 위해서가 아니라 체면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실패했으니, 종료도 내가 하는 게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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