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기

[런던 월간 안부]

by 어금니

새해라고 유난 떨지 않고 덤덤히 하루를 채워가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뭔가 다 잘 될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지난 1월에 ‘객기’라는 단어랑 심적으로 부쩍 가까워졌답니다.

객쩍게 부리는 무모한 혈기(血氣)나 용기. 보통 말도 안 되는 일이나 실패할 게 뻔한 경우에 도전할 때 쓴다고 하더라고요.


안되고 어려울 걸 알면서도 하는 게 객기라면 지금 저 자체가 객기겠죠. ‘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그런 생각 하는 분들 많으실 거예요, 알아요.

사실 저도 그중 하나랍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알까요. 명확하게 사는 분들이 너무나도 부럽지만, 알게 모르게 저와 같은 분들도 있다는걸, 아니 사실 생각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걸 동료 삼으며 지냅니다.


하지만 저는, 쓸모없는 것들은 없다고 믿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나에게 다 돌아올 거라 생각해요.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


1월. 인생 처음으로 축구 경기를 직관하는 경험을 하니 선수랑 밥도 먹어보게 되고, 울렁이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지원하니 1차 2차를 지나 최종 워크숍까지 가보게 됐어요. 이력서를 뽑아 직접 제출하고 매일같이 온라인 공고도 보며 열심히 구직하다 보니 난생처음 카페에서 일도 하게 되었구요. 무페이로 자선단체 광고사진 촬영을 하니까 다음에 일이 생기면 기회를 주겠다는 솜사탕 같은 말도 들어보고, 오래된 영화관에서 지직거리는 필름 영화의 매력을 느꼈고, 런던에서 설날맞이 떡국도 끓여 먹었답니다.


객기 부리니까 재밌던데요!

올해는 재밌기로 했는데, 일단 그거 하나는 했으니 남은 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뭐든 다 잘 될 것 같다는 마음은 단 한나의 문장과 찰나의 표정만으로도 명절 전 부치듯 뒤집어지긴 합니다. 그건 분명 우리의 의지는 아닐 거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다시 뒤집어보죠 뭐!


각자의 우주에서 무모한 용기를 내고 있는 우리를 응원합니다. 내디딜수록 한 뼘 더 넓어지는 세계에 푹 감응하는 시간을 갖길 바라요. 언제 또 뒤집어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부디 너무 타들어가지는 않길.


떠오르는 생각도 하고 싶은 얘기도 많지만 이번 안부는 이 정도로 전할게요. 고르고 고르다 끝내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음에 꺼내보기로 하고,


이만 총총!


#런던월간안부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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