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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Aug 06. 2020

반 고흐의 850억짜리 그림의 의미

미술과 문학이 만나다.

 자신을 말하는 도구로서의 그림


 사실 난 그림이나 미술에 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었다. 오히려 내가 아니 아내가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많은 화가들 중에 유독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다. 처음으로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았을 때,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미술책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선이 굵고 밝은 노랑이 유독 눈에 띄는 이 단순한 그림이 왜 그리도 유명하고 중요한 그림이 되었을까?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의 곳곳의 미술관을 여행하며 역사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면서 나는 점차 고흐의 삶과 그의 그림에 대한 가치를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we can't speak other than by our paintings.  with a handshake your loving Vincent"  

(그림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말할 수 없습니다. 너의 사랑하는 빈센트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늦은 나이에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화랑의 수습사원으로 일하며 옛 대가들의 작품들을 접하며 그림에 대한 눈을 떴다. 그 후 영국에서의 짧은 교사 생활을 끝내고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그도 네덜란드로 달아와 신학교를 거쳐 목사가 되어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의 길이 아니었다. 목사가 되지 못하니 선교사로 나가보려고도 했었지만 그것마저도 길게 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다들 전문 미술 교육을 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대부분 독학으로 8년 동안 자신만의 색채와 화풍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고흐는 알고 있었다. 붓을 통해 색채와 형태를 통해 자신 안에 가득했던 그 무엇인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즉 고흐가 그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 캔버스와 붓과 물감을 통해 '진정한 고흐'라는 존재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한 발견에 28살의 고흐의 영혼에 폭발을 일으켰다. 데생과 크로키부터 시작해 점점 유화로 발전하는 그의 정신세계는 내면에서 폭발하는 영혼의 힘에 이끌려 남은 8년의 삶 동안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하나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조금 독특한 면이 없지는 않아 보였어도 분명 그에게는 규칙적인 시간과 잣대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자연 속에 생명이 깃들어 있는 고흐의 세상


 빈센트 반 고흐. 그에게 있어서 지구 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생명력을 발산하는 꽃이며, 들판이며, 나무며,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본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를 그려 넣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맨발로 땅 위에 서서 눈을 감고 들판의 바람과 햇살을 느끼기도 했고, 땅의 흙을 손과 얼굴로 만지면서 살아있는 자연을 체험해 보려고 했다. 나는 그것은 무슨 감정인지 잘 알고 있다. 바다와 봄의 향기가 흙냄새를 품은 대지의 싱그러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생명력 있고, 나의 내면에 경이를 일으키는지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1년여간의 정신병원 생활을 끝내고 다시 남프랑스 아를에 들어와 마지막 삶을 완전히 새로운 색채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 많은 작품들을 남긴 채 그의 짧은 37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조금 달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를에서 그린 그의 그림들은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와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세상을 색채로 완벽하게 그려낼 때까지 그는 매일매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비록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 동생 테오에게 후원을 받으며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만은 하늘의 새처럼 자유로웠다. 그리고 들판과 산으로 나가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력과 경이를 마음껏 그렸다.


 그러다 밤하늘의 뜬 별과 달을 보며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화가의 인생에서 어쩌면 죽음이란 그렇게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나야 그것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하늘의 별을 볼 때면 언제나 꿈꾸게 돼. 난 스스로 말하지 왜 우린 창공의 불꽃에 접근할 수 없을까? 혹시 죽음이 우리를 별로 데려가는 것일까? 늙어서 편안하게 죽으면 저기까지 걸어서 가게 될까? 늦었으니 자러 가야겠어. 잘 자고 행운을 빌께.'  

 with a handshake your loving Vincent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그 편지를 남긴 채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지 않은 )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전에 단 1점의 그림이 팔렸지만(생전에 879점을 남겼다), 그가 죽은 후 그의 그림 중 현재 최고가는 850억 원(의사 가셰의 초상)이다.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 간 화가였던 고흐, 그는 자신의 생활비를 동생에게 의탁하는 풍족하지 못한 삶을 평생 살다 갔지만 그의 정신과 작품 속에 그의 진정한 가치를 숨겨 두었다. 그것이 그의 탁월함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러한 고흐의 영혼에 반해버린 것이다.


"인생의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여행은 곧 자신을 자신답게 발견해 가는 모험 속에 있다...."



 내가 그려가고 있는 제주에서의 그림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새하얀 바람이 불어오는 세화의 바닷가에 위치한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한 카페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내 젊은 날의 깊은 성찰과 내면의 고요함을 함께 했던 법정 스님의 글이 내게 말한다.


 ‘어느 날 아침 내 둘레를 돌아보고 새삼스레 느낀 일인데, 내 둘레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았다. 차와 책과 음악이 떠올랐다. 마실 차가 있고, 읽을 책이 있고, 듣고 즐기는 음악이 있음에 저절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오두막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구나 싶었다. 차와 책과 음악이 곁에 있어 내 삶에 생기를 북돋아 주고 나를 녹슬지 않게 거들어 주고 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 내게는 글을 쓰는 작은 노트(나는 아직도 줄도 없는 두꺼운 일기장에 글을 쓴다)와 시원한 차 한 잔, 그리고 아름답고 편안한 노래가 조금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넘실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 속에 푹 빠져 있는 내가 이 정도면 행복한 여행자가 아닌가 싶다.


 책 속에 푹 빠져 있는 상태는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일이며 세상의 모든 구석구석을 정신이 헤집고 다니는 느낌과 같은 일이다. 눈은 손이 되고 상상력과 생각은 발이 되어서 책 속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그 검은 활자와 흰 여백 사이의 공간 속에 다양한 인생과 색깔과 자연과 감정들이 숨겨져 있다. 책을 읽는 것은 그것들을 발견하는 기쁨이자 환희이며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으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것과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해서 걷는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 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그것은 오직 순간의 떨림 속에만 있는 내면의 광맥에 닿음으로써 잠정적으로 자신의 전 재산을 포기하는 행위다. 걷기는 어떤 정신 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 기술과 이동 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즐기는 센스를 새롭게 해 준다.’  

 오늘은 더운 바람이 잔잔히 불어오는 길을 조금 걸어본다.


  최근에 읽고 있는 나의 책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넬슨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두 권의 책이다.


 <마의 산>의 상권 한 권만으로도 653페이지이고, 자유를 향한 머나 먼 길은 무려 950페이지나 된다. 어느 순간엔가 책을 읽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 내용인지에 대한 생각은 상실되어 버렸다. 단지 이 사람이 내 앞에서 끊임없이 조용히 자신의 생각과 보았던 세상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 들뿐이다. 예전에는 어떤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무지막지한 분량과 나의 지식수준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만한 어렵고도 복잡한 내용에 지레 겁을 먹고는 시도조차 포기했던 적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그가 살아낸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거나 단순히 길고 복잡한 내용의 책들보다는 좀 더 쉽고 간단하면서도 재미를 전달하는 책을 선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한 권 두 권씩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인간이 전달할 수 있는 재미의 기쁨과 길이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삶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에 불현듯이 떠오르거나 느끼게 되는 삶에 관한 성찰과 질문에 대한 주제를 놓고 써 내려간 책들이 남긴 의미는 점점 길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이 가르쳐주는 가장 큰 교훈은 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서 책을 써내려 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단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활자로 옮겨놓은 것을 사람들은 책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제껏 살아왔고, 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책'이라고 부를지 또 누가 알겠는가?

  

 "내 인생의 성공 비결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끝없는 독서이고, 나머지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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