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팡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즈 Aug 24. 2020

나의 팡세

찰나의 깨우침들


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가 벽돌과 시멘트로 된 교실에서가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숲 속에서 움텄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정




 1. 우주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나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가지들은 동시에 존재하는 수만, 수억 개의 평행 우주의 열매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열매는 크지만 어떤 열매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다. 그런데 크기가 다른 이 열매들은 어떠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끈은 바로 기도와 명상,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에너지인 생명이다.


 우리가 무한히 넓다고만 생각하는 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또 하나의 우주를 창조해나가는 작업을 수행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음악이든 물리학이든 문학이든 철학 이론이든, 방법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일차적인 문제는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여 세상의 가장 작은 소립자로부터 광대한 우주까지 재창조해 보는 작업이다. 그 복잡성과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경탄할 것이고, 그 장엄한 일련의 복합적인 진화과정 속에서 우주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 생물학적 유기체이자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영혼의 장막 속에 있는 존재, 의식은 형태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물질을 넘어선 정신계에 속한다고 분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존재가 속한 지구,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그것을 포함한 성운과 성단, 그것을 포함한 은하, 은하를 포함한 무한히 확장 중인 우주.


 반대로 ‘나’라는 존재가 포함하고 있는 세포,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DNA와 분자, 그 속 의원자, 원자는 원소로, 원소는 그 가운데 원자핵과 그 주위를 맹렬한 속도로 돌고 있는 중성자(광자)와 쿼크,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나를 포함한 우주였다는 사실이다. 


 즉, 내 안에 우주가 있었고, 그 우주 속에 나라는 창조하는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창조하는 행위를 통해 창조자의 한 부분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실로 용기 있고 위대하다. 시간과 돈과 마음과 사랑과 정신과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면 말이다. 



3. 언어. 소리 말과 글자,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농아들의 수화, 이 모든 것이 언어이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었다면 과연 인간의 인간다움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



4. 성서의 모든 말씀은 항상 동일하다. 그러나 인간이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의 구절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깨달음을 준다. 레위기의 기본법이나 신명기 8장의 말씀이 그러하다. 



5.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신앙이다.



6. 인간은 살아가면서 저마다 깨달은 것들이 있다, 존재의 소중함은 상실로부터 기인한다.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아내의 깨달음은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다.



7.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생의 중요한 몫이므로 인간은 안으로 충만해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 잡념 없이 기도를 올릴 때

자연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때는 삶의 고민 같은 것이 끼어들지 않는다.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 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을 잃어버렸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에 있다.

인간은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푸르름을 머금고 밀려온 파도 한 자락 앞에서도

시원한 바람 한 줄기 안에서도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도 

인간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이지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청빈의 아들이요.

또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 이리라.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라 가득참, 

곧 행복이라는 것이라.



8. 그들은 붉은 와인 잔을 나누며 서로의 사회적인 위치와 우월성을 강조하는 듯했으나 나는 그 속에서 내가 절대로 속하고 싶지 않은 이질감을 강하게 느꼈다. 처음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이 사회에 뭔가 대단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돈과 권력과 지위가 만들어 낸 이 사회의 테두리가 그들의 세상을 가두어 두었을 뿐이다. 그들은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잃어버리게 될 그 무엇인가 때문에 말이다. 가진 것이 많고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 사람은 두려워한다. 또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운 이도 극히 드물다. 그렇담 오히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소유로부터 자유롭고 상실로부터 탈피한 자는 진정 마음의 부자가 아니겠는가.

 이 화려함의 이면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의 불완전과 상실감을 발견하고 있다. 결국 이 화려함과 재미는 한순간의 만족이 될 것이다. 가슴과 영혼에 영원히 담아둘 수 없는 공허함 말이다.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세상은 잿빛의 소리 없는 유리성이다.



9. 스카를라티.

 이탈리아의 유명한 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이자, 뛰어난 히프시코드 주자로서 1685년~1757년까지 활동.

 '그는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반시간 동안에 이 신기한 사람의 밝은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침착성이 어떤 근원에서 솟아나는가를 희미하게 느끼기 시작하였다. ' -유리알 유희 


 그 근본적인 빛과 따뜻함,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침착성을 가진 인간은 타인으로 하여금 신뢰와 사랑과 호감을 전한다. 이를 위해 그는 삶이 단순하면서도 단정하며, 규칙적이고도 옳아야 한다. 옳고 확실한 진리를 가슴에 품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삶의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할 때, 그가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의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인격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힘은 밝음과 선善과 사랑과 원대한 희구 desire에서부터 발현된다. 


 이제는 내게 세상을 두루 다니며 여행을 시작해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역사와 과학과 인문학, 음식과 음악, 경제학, 언어와 문화와 인류 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계의 모든 대륙과 나라를 오랜 시간을 두고 두루 다녀볼 기회가 온 것이다. 세상은 넓어 배움의 장이 무궁무진하기에 내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듣고 보며 진리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와 삶 속에서 정말로 그러했는가를 확인해 볼 수가 있다.



10. "영혼의 무게라는 것이 있을까?"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깊은 바다 색깔처럼 변해버린 사막의 오아시스 호숫가의 초저녁 하늘을 지긋이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별이 밝고 영롱하게 총총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끼고 잠이 몰려온 나에게 그가 그 어떤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그저 말을 건넬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했다. 그는 분명 그 질문을 던지고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에 익숙한 행복감을 느낀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의 오랜 친구이기에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내게 묻고 자신이 대답할 뿐이었다. 늘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야. 영혼에도 분명 무게가 있을 거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육체 외에 모든 비물질적인 것들은 형태도 질량도 색깔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영혼은 육체라는 물질적인 것의 상위에 속하는 존재이기에 물질계와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이 아니라, 그 이전의 차원을 포함한 더 구체적이고 활발하며 energetic 한 것이 틀림없어. 그래서 영혼은 육체를 초월超越한 개념인 것이지. 하위는 상위를 품을 수 없지만 상위는 하위를 품을 수 있는 법이지. 영혼의 무게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실하며 빛을 뿜어내는 무거움일 거야."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그와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대화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벌써 수연도 더 전에 느꼈던 이 사실을 이제야 다시 깨닫는다. 

그 사람의 말의 내용보다 그 사람이 더 그립다.



11.  삶이란...

잔잔한 마음의 바다에 가끔

파도가 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어

낭만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서로의 눈빛을 통하며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흐르는 계절에 따라

사랑의 거리를 함께 정답게 걸으며

하고픈 이야기를 정답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 살아 

신발을 나란히 놓을 수 있으며

마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고

잠자리를 함께하며

편안히 눕고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소유할 수 있으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나누며

함께 꿈을 이루어가며

기쁨과 웃음과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삶의 울타리 안에

평안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삶이란 

들판에 거세지 않게

가슴을 잔잔히 흔들어 놓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12. 비는 대지에 생명을 빛나게 하는 하늘의 축복이라.

깊은 밤, 굳은 땅을 때리는 이 영롱하고 신선한 소리가 꼭 내 마음의 창을 두드리는 것만 같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빗방울 소리인가.



13. 한 사람이 물었다.

"스승이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함께 태어났으니 그대들은 영원히 함께 있으되 죽음의 하얀 날개가 생을 흩뜨리는 시간까지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빈 공간을 두어서 하늘의 바람이 자유롭게 춤추도록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사랑으로 속박하지는 말라.

오히려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저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 개의 잔으로 마시지는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같은 덩어리의 빵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그대들이 각자 홀로 존재함을 잊지 말라.

현학기의 줄들이 같은 음악을 연주할지라도 서로 떨어져 홀로 있듯이.

마음을 주되 상대방 고유의 세계 속으로는 침범하지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서로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어 서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14.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어떤 정념이나 인상을 그려 보일 때, 사람은 자기가 듣고 있는 바의 진리를 자신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런 진리가 자기 속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그가 우리에게 자신의 좋은 점이 아니라 우리의 좋은 점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호의는 우리와 그 사람 사이의 이해의 일치가 그를 좋아하도록 마음이 쏠리게 하는 이상으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필연적으로 만들어 준다.



15. 책이 가르쳐주는 가장 큰 교훈은 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에서 책을 써내려 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단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활자로 옮겨놓은 것을 사람들은 책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제껏 살아왔고, 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책'이라고 부를지 또 누가 알겠는가? 



16. '강인한 생명력이란, 따뜻한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보다 사막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꽃이나 혹한의 설원을 뚫고 하늘로 뻗은 침엽수, 그리고 혹한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지 따뜻한 온실에서 자란 아름다운 화초나 잘 가꾸어진 농장에서 자란 크고 붉은 과실에서, 또 모든 것이 갖추어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리라.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 불평불만만 하거나 자신의 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산을 피해 가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높은 산과 힘듦이 자신의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한다면 나의 삶은 항상 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라고.



17. 잠들어 있는 의인의 영혼은 신비로운 하늘까지 보는 법이다.



18. 종교로의 귀의 [歸依]가 아닌

하나님으로의 귀의 [歸意]가 삶인 것.


'Traumeri' Op.15, No.7 

composed by schumann을 들으며.



19. 삶은 강보다는 나무에 가깝다. 한 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또 다른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 끝에는 또 다른 갈림길이 있기 때문에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삶은 통합을 향해 흘러가는 대신 서로 갈라져 뻗어 나가며 피조물들은 원숙해질수록 서로 달라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 고흐의 850억짜리 그림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