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와, 바다와, 여인과, 별이 가득한 하늘과 내가 가졌던 첫 접촉은 그러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그의 고백이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지 나는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크레타.
그 섬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제주도의 세 배나 되는 큰 섬이며, 뜨거운 지중해와 에게해의 바닷바람을 품고 있는 곳이다. 눈부신 태양빛과 사시사철 출렁이는 파도소리, 그리고 밤이면 언제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나는 그곳에 가보지 않아도 이런 것들을 감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 환상의 점 제주 역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이기 때문이며, 나의 상상력과 유럽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이미지들 때문이다.
큰 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해가 질 즈음에 동네 앞 바닷가를 산책하는 일이 언제부터인지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여름에는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은 너무 더워서 집 안에만 있다가 해가지는 어스름에 집을 나서 산책을 했다. 그러다 매일 같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일몰의 매력에 빠져 일부러 해가지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다녔다.
해가 뜨고 지는 단 몇 분은 세상이 신비에 빠지는 시간이다. 나는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신비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신비는 나이가 들어도 가슴 속 깊이 남는 법이라 나의 아이에들에게 자연이 주는 신비와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남겨주고 싶다.
예전에 인천에 살던 도시 생활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여유로움과 신비였다. 아파트 생활을 하던 탓에 매일 저녁 해가 지는 모습은 하늘 높이 솟은 아파트 건물 위 하늘이 물들어 가는 것만 보다가 매일 이렇게 아름다운 붉은 빛이 바다와 함께 물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삶이 좋다.
이번주는 태풍 찬투가 몰려오는 바람에 집 안에 발이 꽁꽁 묶여 산책을 계속 못나가고 있어서 얼른 맑게 개인 아름다운 일몰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