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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Sep 10. 2021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바꾸고 싶은 선택이 있다면

선택에 좌우되는 행복과 불행의 크기

 지나온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나는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까?

 모든 운명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쌍둥이들이 낮잠을 자는 오후 한두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근새근 호흡하는 쌍둥이의 숨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함뿐이다. 나는 이 시간이 오롯이 나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제주에 발을 들인 지 벌써 3년째가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둘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첫 딸이 태어나고, 제주에 와서 쌍둥이들이 태어나 순식간에 다섯 식구가 되었다. 단순히 가족 구성원의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우주가 탄생한 것이다. 나는 하나의 생명은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그 세계관이 태동하고 있는 단계일 뿐이지 시간이 자양분이 되어 점점 커지고 나면 스스로 사고하고 사유하는 또 하나의 세계관을 담은 우주적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온 뒤 맑게 개인 구름이 가을 하늘을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부부의 소곤거리는 대화는 시작됐다.


 "만약 당신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가끔은 이런 진중한 이야기와 질문이 뜬금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고요한 시간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에 더없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내가 누리는 삶에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고 있지만 과거의 어느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만약 당신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 누리는 행복과 불행의 크기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어서 물어보는 거야."


 한동안 아내는 말이 없었다. 내가 한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차가운 커피 한 모금을 홀짝 마시고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주..... 많지. 20대를 너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아. 20살 때부터 대학을 다니지 않고 일을 해서 그런지 주변에 인생의 큰 선택과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해준 멘토가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돈만 벌다가 남들 다 다닌 대학을 못 나온 한이 있어서 늦은 나이에 (29살이었다) 전문대라도 다녀보자는 생각에 학교를 졸업했지만 왜 그때 좀 더 일찍 좋은 대학을 다니질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어."


 그리고는 또 다른 후회되는 선택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20대의 삶에 대한 반추와 만약 20대 초중반에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배울 수 있는 좀 더 좋은 대학을 졸업했더라면 일어났을 법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그녀이자 아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내심 내게는 그런 순간이 과연 있었던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현재는 지나온 과거의 숱은 선택의 결과로 얻은 삶인데, 과연 내게는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하는 생각들... 분명 크게 따지고 보면 인생의 방향이 크게 바뀔 수 있었던 사건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들은 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건 말이야. 지나간 과거의 선택이 비록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미래에 완성될 나의 삶에 꼭 필요한 성장의 아픔이나 자양분 같은 것으로 여기고 삶에 녹여 버리고 잊어버렸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게 된 걸 거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잘못된 선택을 계속 떠올리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왜 그랬을까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며 후회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거든."

 그녀가 내게 말했다.


 "결국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과거의 과오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마음의 태도에 따라 현재의 행복과 불행의 크기가 정해지는 건 아닐까?"

   

 그 말을 듣는데 나도 과거의 여러 선택의 순간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과거의 가난과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자양분이자 성장통이 되었다는 생각에 담담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살다 보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그때 그런 걸 알고 다른 삶을 선택해 살았다면 현재의 삶에서 누리고 있는 숱한 행복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후회되는 선택도 있지만 반대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선택도 있다. 나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던  해가 지는 초여름날 늦은 오후에 삼거리길에서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을 통틀어 그때의 선택이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 그때 내가 내린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인적 드문 성산포의 평범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여인을 만났고,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아이의 엄마이자 나의 아내가 되었기에.  

 

 인간은 오늘도 인생일대의 결과를 가르는 평범한 선택의 기로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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