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거지가 되어 천안에서부터 걸어갑니다

천안- 조치원- 대전까지

by 권즈

전철에서 내리면 이제 나는 거지가 된다.


K의 신혼집을 나와 아침 6시 반에 역곡역을 출발해 길을 나서는 길에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방에 가득 찬 과일과 음식을 보니 내심 안심이 되었지만 배낭 하나에 카드 하나만 달랑 챙겨 길을 나서다니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난 참 무모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모를 용기가 생기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마 이 지하철을 함께 타고 있는 저 사람들은 내가 무일푼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지. 어차피 남일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사람이니까. 그래도 내 마음만은 K와의 전날 밤 대화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풍요롭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안으로 향하는 1호선 지하철 안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나는 이전에는 몰랐는데 천안에 꽤나 많은 학교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수많은 학생들이 1호선을 이용해 천안으로 등하교를 하고 있었다. 나의 목적지는 천안, 지하철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목적지 역시도 천안이었다. 덕분에 나는 천안까지 줄곧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구로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이른 아침이기도 하고 천안으로 향하는 외선이니 곧 사람들이 많이 내리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천안에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모습이 얄밉게 보였다.

CAM00366.jpg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야 @ 쏠파파

대략 50분 정도가 걸려 천안역에 도착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내려버렸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텁텁한 실내 공기와는 상반된 시원한 공기가 나를 덮쳤다. 맑은 날의 천안역사는 본격적인 나의 여행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아 보였다.

인생 처음으로 전철을 타고 내린 천안역에서 나는 다음 목적지를 설정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는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정한 후 목적지를 찾았던 것이다) 방향은 정해졌다. 남쪽이기도 하고 최종적으로는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가득한 제주도이다. 그렇다면 천안에서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으면 된다. 그 도시는 바로 조치원이었다. 그래서 천안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었다. 당연히 시외버스노선만 나올 뿐이었다. (시외버스 노선은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끊어야 했으니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일단은 물을 좀 마셔야겠다 싶어서 가지고 온 물병을 보니 벌써 거의 다 마시고 1/4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받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수돗물 조금 마셨다고 건강한 20대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물 한 병 살만한 돈도 없으니 당연한 선택 이리라.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할지 몇 번을 타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한 채 일단은 역사를 나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는 역사 입구에 있는 커다란 천안역 지도를 바라보고 사진을 하나 찍어두었다. 그리고 옆에 보니 관광안내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가 길을 모를 때는 바보처럼 찾으려 하지 말고 반드시 그 지역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게 어쩌면 인터넷보다도 훨씬 안전하고 정확할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것이 여행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바로 들어가 개장을 준비하고 있던 한 아가씨에게 조치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디에서 버스를 타면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나를 외국인 쳐다보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당연하게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바로 조치원으로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혹시 외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기에 어떻게 정확한 한국어로 길을 물어보는데 저런 대답이 나올 수가 있지? -.-)


그래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왔고 지금은 여행 중인데 기차를 탈 수가 없다 오직 버스만 타고 여행을 한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진짜냐고 묻더니 그럼 잠시 기다려보라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컴퓨터로 다가가 나를 위해 천안시 버스 노선을 상세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음... 그럼 일단 조치원과 제일 가까운 곳이 전의면이네요. 저기 앞으로 쭉 가서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파리바게트에서 먼저 전의면으로 가는 버스를 먼저 타세요. 거시서 다시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여기 천안 지도가 포함된 안내 책자도 하나 드릴게요."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관광안내소를 나가려는데 옆에 있는 정수기를 힐끔 바라보며 혹시 물도 좀 받아갈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물을 떠주겠다고 물통을 달라고 했다. 그녀가 내 물통에 물을 담는 동안 나는 사실 돈이 없어 화장실 물을 떴는데 이왕이면 정수기 물로 갈아서 가고 싶다고 했더니 (돈이 없으면 면상도 두꺼워지더라) 그녀는 또 한 번 크게 웃으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 여행이 그녀의 바람처럼 정말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빌었다.


왜였을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방금 만났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랐다. 아담하면서도 활기찬 얼굴과 친절한 말투.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사람이 더 멋있고, 이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부터 관광안내센터를 청소하고 개장 준비를 하면서 오늘 하루 자신에게 길을 물을 사람들을 기다리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도움을 받고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 소소한 삶의 행복을 느꼈으리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쨌든 나는 한산한 버스 정류장에서 전의면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촌으로 가는 버스라 그런지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버스 도착 예정시간 조차도 안 나와 있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정말 촌구석으로만 다닐 것 같은 700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얼른 700번 버스에 올라탔다.


한 30~40분을 가다가 버스는 조그마한 읍내에 나를 내려주었다. 길 하나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작은 건물들이 있는 곳이 전의면이었다.

CAM00367.jpg 아담하고 멋진 벽화가 그려진 전의역사 @쏠파파

그리고 그 길을 꺾어 돌면 아담한 역사 하나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전의역이었다.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바로 전의면에서 다시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보았다. 한산한 시골이라 그런지 버스정류장에는 버스 번호가 잘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분명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지만 언제까지 계속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나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두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그냥 내발로 걸어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또다시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에게 조치원 방향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남쪽을 가리키면서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전의면을 벗어나 조치원으로 가는 1번 국도와 627번 지방 국도를 걷기 시작했다.


CAM00375.jpg 남쪽 방향으로 난 1번 국도 @쏠파파


CAM00379.jpg 완연한 봄의 상징 4월의 벚꽃 @쏠파파



*행복은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향기로운 꽃과 함께 봄 길을 걷는 것.


햇살이 눈부시게 꽃피는 날이었다. 땅이 따사롭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꽃은 대지에 만발하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땅을 밟으며 음악을 들었다.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였다.

멀리 보이는 산과 들에는 하얀 벚꽃과 노란 개나리, 그리고 이제 막 푸른빛을 내기 시작한 작은 관목들과 각양각색의 초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들에는 푸른 풀들이 대지의 생명을 받아 그 빛을 더욱 힘 있게 비추고 있었다.


천안과 조치원은 충청도에 속해 있다.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충청도 땅을 직접 밟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잘 느끼지 못했던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오전에는 거의 두 시간가량을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갈증을 달래기 위해 500ml 물병에 있는 물을 다 마셔버렸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시장기가 느껴져 가방에 있는 과일과 김밥을 꺼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거의 다 되어갔다. 얼마를 더 걸어가다 보니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등에 배낭을 메고 올라가 가려니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내 눈 앞에 나타난 언덕이 바로 '개미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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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6.25 때 격전지 중에 하나로 연합군과 국군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주변에 앉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기념비 옆으로 몇 개의 벤치가 보였다. 그리고 다행히 그늘도 져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김밥과 과일, 그리고 아몬드와 사탕 같은 것들을 먹었다. 그러자 갈증이 몰려왔다. 물통은 이미 빈 상태이고, 더 이상 물을 구할 곳은 없었다.


기념비 뒤쪽을 보니 작은 식당이 하나 보였다. 나는 주저함 없이 바로 그 식당으로 갔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무조건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면상이 두꺼워진다) 밖에서 언뜻 보니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개미고개에 도착한 지 이미 십 분이나 지났지만 단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곳이 얼마나 인적이 드문 곳인가를 잘 말해주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 물을 좀 얻으려고 인기척을 했지만,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결국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마당에 있는 수돗물을 떠다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결국 수돗물이라니)


식사를 마치고 물을 한껏 들이켜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바로 배낭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잤다. 어차피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땅바닥에 그냥 아무렇게나 누워서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자세를 잡았다.

(길을 나서기 전부터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러자 바로 고요함이 밀려오더니 따스한 봄바람에 잠이 들고 말았다. 저 멀리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낯선 할아버지 건강하시길


한 시간 정도를 잤을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2시였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에는 어느 시골마을에나 반드시 있을 법한 작은 버스 정류장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곳으로 다가가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확인해 보았다.(이렇게 걸어가다가 해가져도 조치원에 못 가겠다) 다행히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을 내려놓고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자전거를 타고 밥과 반찬을 뒤에 싣고 가는 한 노인이 나타났다. 저 멀리 보이는 할머니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길 건너의 집으로 들어가더니 곧바로 내가 서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뜬금없이 노인은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 어디로 가는겨?"

"네?"

나는 얼떨결에 그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사실 충청도 말씨에 노인의 작은 소리를 내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학생인겨?"

나는 그제야 노인이 내게 무언가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 듯 보아도 예순 살은 훨씬 더 되어 보였지만 농촌에서 부지런히 일을 해온 탓이었는지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며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지금은 조치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학생인지, 또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집은 어딘지를 조근조근 물어보았다. 나 역시도 노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인지, 자녀는 몇이나 두셨는지, 몸은 건강하신지.. 등등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시골의 모든 노인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낯을 잘 가리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관대함을 가진 것 같다. 그러한 나의 편견이 이 노인의 관심과 온화한 미소로 인해 더 짙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몇십 분간 나는 이 노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노인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이 환갑을 넘어 곧 일흔이 된다고 했다. 곧바로 나는 노인에게 나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조치원을 가는 801번 버스가 왔다. 나는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올랐지만 노인은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두 장을 겨우 꺼내어 어색하게 버스 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 모습이 내게는 마치 이러한 버스를 탈 일이 자신에게는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노인의 무언의 언어 같아 보였다. 노인은 운전기사의 바로 뒷자리에 앉았고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그 뒷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길을 갔다. 더 이상 그 어떤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자에게 있어서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또 다른 여행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가도록 가만히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노인이 어디에서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잠시 잠깐이었지만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가운데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며 또한 서로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서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가끔 낯선 사람을 서로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 여행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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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역에서 내려 반쯤 남은 물병에 수돗물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또 수돗물..... 그래도 지금껏 별 탈없이 건강하다) 그리고 다시 대전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역전으로 나왔다. 역전에 파는 맛있는 음식을 보고 나는 배낭에 든 맛없는 아몬드와 물만 마셨다. 특히 역사 바로 옆에 파는 튀긴 소보로가 너무나 먹음직하게 보였다. 그야말로 내게는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빵이었다. 진짜 거지들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순간, '아... 내가 지금 거지나 다름없지.'라는 현실에 배가 더 고파졌다.


네이버를 통해 버스 노선을 조회해보니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 지도와 역전앞에 그려진 시내버스 노선지도를 대조해가며 대전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가는 버스를 찾아냈다. 그것은 세종시를 지나 대평리까지 가는 버스였다. 대평리로 가는 버스가 몇 대 있었지만 그리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대평리로 가는 버스 중에 가장 먼저 오는 것을 타기로 했다. 몇 분을 더 기다리자 601번이 역전으로 들어왔다. 나는 601번 역시 대평리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새로운 행정 수도로 개발되고 있는 세종시 종합 정부청사를 보았다. 그것은 마치 미래 도시의 커다란 계획형 건물 같아 보였다. 모든 건물이 커다란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각 건물마다 환경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문화관광부와 같은 각 부처의 이름의 걸려 있었다.(당시의 세종시는 아무것도 없는 정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의 모습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보다 건물과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그러나 이러한 큰 규모에 비해 길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치 깔끔한 유령도시 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아파트 건물에 입주자가 아직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또 한 40분을 지나 도착한 곳이 남세종시의 대평리였다. 대평리의 중심 시가지는 길 옆으로 자리 잡은 건물이 마을 건물의 전부일만큼 시골이었다.


이곳에서부터 대전까지는 버스 노선이 없으니 이제부터는 다시 걸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얼른 가방을 고쳐 메고 나는 다시 도로를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전을 목전에 두고 나는 대전에 몇 해 전에 자리를 잡은 친구 하나를 생각해내고 연락을 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인 녀석은 지금 당장 오라는 말과 함께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는 토를 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인가가 사라지고 곧바로 논밭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논 옆으로 곧게 난 좁은 국도를 따라 걷다가 대전으로 가는 가장 단거리 길을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1번 국도를 따라 난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타났다. 나는 그 국도의 지하로 나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입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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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입구를 지나 밖으로 나가 보니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가운데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타났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 치일 걱정 없이 마음껏 걸을 수 있는 길이었기에 나는 쉬다 걷기를 반복하면서 세 시간 정도를 더 걸어갔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지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전거 도로는 아주 한산했다. 나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해가 점점 지려 할 때 즈음에 드디어 도로 곁에 대전광역시라는 표지가 나타났다.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하루 만에 천안에서 대전까지 온 것이다. 일단 대전까지만 들어가면 지하철 1호선 반석 역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리고 반석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나의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친구가 아닌, 맛있는 먹을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거지가 되면 이렇게 친구보다 음식이 더 소중해지는 가가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는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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