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인걸 왜 이렇게 힘든지...)
서울에서부터 시작해 천안을 거쳐 나는 대전으로 걸어들어갔다.
오후 5시 반이 되었을 때 나는 대전의 반석 역에서 도착 할 수 있었다. 나는 대전 지하철 1호선 반석 역에서 곧바로 약속 장소인 오룡 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의 오랜 벗이자 언제 보아도 유쾌한 H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1년 전 대전에서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친구라 그런지 그 만남이 내심 기다려 진 것이다.
친구란 언제 보아도 친하고 편하고 허물이 없는 사이라고 했다.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인생은 그리 불행하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대전 지하철을 타고 20~30분을 가니 오룡 역이 나왔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쳐 매었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는데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좀 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구와의 만남은 가끔 설레게 만드는가 보다.
6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나는 오룡 역 1번 출구 앞에 있었다. 그곳에서 일 년 만에 친구인 H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눈에 익숙한 승용차 한 대가 나에게 스르르 다가왔다. 퇴근을 하자마자 나에게 달려온 H였다.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의 차에 올라탔다. 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H는 그 동안의 나의 안부를 묻고, 서울에서의 삶은 어땠는지를 묻고, 대전으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한꺼번에 물었다. 원래부터 내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바로 묻는 것이 그의 대화 방식이었다. H는 나에게 밥을 먹었느냐고 묻길래 나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친구는 가만히 나의 행색을 보더니 일단은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H는 나를 데리고 주변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아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었다. 기름진 음식들은 사실 내가 평소에 전혀 손도 대지 않았던 것들이었지만 나는 이미 하루 종일 걸어왔기 때문에 너무나 지쳐있었고 배가 너무나 고픈 상태였다.
밥을 먹은 후 친구는 바로 후식거리를 사서 그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만큼 친구는 서로의 삶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존재인 가보다.
H는 대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서 병원의 의료기계를 관리하고 수리하는 일을 한다. 처음 H를 만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그는 언제나 활발하고 말을 잘 했기에 사람들에게 항상 인기가 많았다. H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사람들은 보통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보다 활기차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친구를 더욱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곁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남게 된 것이 비단 그의 활발한 성격과 유머 감각뿐 아니라 그의 친절하고 베푸는 마음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의 친절과 베푸는 마음, 그리고 친구를 편하게 하는 마법 같은 호탕한 웃음 때문에 친구를 생각하고 가끔 찾아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그를 꼭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자신의 결혼 준비와 현재의 삶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에 또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는 더 활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신비이며 자신은 곧 이 신비 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와 얼굴에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이제 곧 경험하게 되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행복감이 어리어 있었다. 나는 곧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의 행복도 나의 행복인 것.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그가 여전히 예전처럼 밝고 활기찼으며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편안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H는 결혼 예정일을 그해 10월 즈음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지나왔던 다양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나에겐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친구는 나에게 왜 여행을 떠났느냐고 물었다. 나는 친구에게 왜 여행을 떠났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어떻게 여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말해 주었다. 서울에서부터 대전까지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그리고 오늘 하루가 나에게 얼마나 길었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못 놀라는 눈치였지만 너니깐 그렇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에게 왜 내가 이번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 이렇게 대전까지 걸어온 나를 만나러 온 이유가 뭔지 한 번 들어볼까?”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그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내가 그에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가 나의 말을 진지하게 이해해 주리라는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말했다.
“음, 뭐랄까? 선택의 문제라고 해야겠지. 언제부터인가 도시에서의 삶은 뭔가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질문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중요한 질문을 가지고 길을 나선거야.”
“어떤 질문?”
“바로 이런 거.”
나는 곧바로 H에게 나의 수첩을 보여 주었다.
*네 가지 질문
1.행복한 여행은 무엇인가?
2.과거의 잘못된 실수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
3.삶의 행복(가치)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4.사람은 어떻게 참 사랑을 배우는가?
곧 그는 나의 수첩을 꼼꼼히 읽어 보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너의 용기와 자유가 부럽군. 만약 나였다면 혼자 생각만하고 다음 날도 여전히 난 내 침대에서 눈을 떴을꺼야.”
나는 다시 말했다.
“나도 바로 며칠 전까지 그랬었지.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 뭘? 글쎄,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적어도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알 것 같은데. 물론 나에 관한 일이지만.”
“그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내 결혼이지, 더 정확히 말하면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내 곁에 있고 곧 내가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그 기대감이지. 이게 현재 내 삶의 행복의 진실인 것 같은데.” (지금은 나도, 이 친구도 쌍둥이 아빠가 되어있다.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생각이 어찌도 이렇게 달랐던 것인지....ㅎㅎ)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왜 그런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에 나는 더 정확하게 다시 물어보았던 것이다.
“그건 내가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니깐. 때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태인 것 같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하나의 과정을 나도 비로소 넘어가고 있다는 과정의 느낌이랄까? 그리고 결혼은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갈 것을 약속하는 일이니까. 앞으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라는 것이 나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네 말인즉슨,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거지? 특별히 결혼이라는 것에서 말이야.”
나는 친구의 말을 정리하며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지. 그것도 평생 말이야.”
나는 친구의 말을 끝까지 잘 경청하고 나자 가슴에 무언가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행복.
대화를 마무리하고 밤이 깊었다. 친구는 자신은 덩치가 꽤 크다면서 방 안에 하나 뿐에 자신의 침대를 나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바닥에 이불 하나만 달랑 깔아 둔 채 잠을 잤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내게 농익게 전해오는 따스함,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정’이라고 부르는 행복감이었다. 나는 친구가 전해준 행복에 젖어 잠이 들었다. 나는 내가 느낌 행복감을 토대로 수첩에 다음 문장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잠이 들었다.
*행복은 우정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껏 세상 여러곳을 여행을 다니며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가끔 나로 하여금 때로 이곳이 어디쯤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나와 친구를 따라 아침을 먹으러 단골 국밥집으로 향했다. 나는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먹어두었다. 또 언제 다시 이런 따뜻한 국에 밥을 먹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내게는 오히려 해학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그렇게 국밥 집을 나와 내가 다시 길을 나서려고 할 때, 친구는 나에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음식들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결혼식 때 꼭 보자는 말과 함께.
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대전 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계룡시로 향하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을 하니 먼저 201번을 타고 도마사거리에서 내린 후 다시 202번을 타면 계룡 시청까지 갈 수 있었다.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방향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남쪽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갔다.
마치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