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행복의 모든 것

충남 계룡에서 전북 여산까지

by 권즈

또다시 마을버스를 타고서


이른 아침 대전을 떠나 계룡 시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두 시였다.

내가 계룡 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계룡산과 육군본부.

내가 가진 수첩에 딸린 작은 한반도 지도를 보니 계룡을 지나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는 바로 논산이었다. 그래서 다시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보니 계룡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버스 한 대가 있었다. (나의 유일한 지도는 네이버 지도뿐)

낯선 도시에서만 유심히 들여다보는 버스 노선표 @쏠파파


202번 버스는 계룡시청 앞에서 멈추었다. 계룡시청 건너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게시되어 있는 버스 노선도를 통해 확인해 보니 계룡시는 계룡시청을 비롯한 행정관청 및 종합 운동장이 속해 있는 금암동과 여러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주택지구인 엄사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먼저 계룡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논산으로 가는 303번 버스와 계룡 시청에서 출발해 303번 버스 노선이 만나는 정류장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계룡시내버스 노선이 모두 나와 있는 표지판을 살펴보니 논산 버스인 303번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룡 버스가 가장 많이 정차하는 정류장을 몇 개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내린 계룡시청 주변은 비단 평일 오후란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주택 단지가 그렇게 많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기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반면, 엄사동은 거의 모든 버스가 지나가는 노선이었고 많은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었기에 그곳에 유동인구가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마 그곳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을 것이라 보고 나는 엄사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엄사동으로 향할수록 거리에 사람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고 두산 아파트 정류장에 다다르자 작은 거리 시장까지 열려있는 모습을 보고 직감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곳에서 버스 정류장에 표시되어 있는 303번 버스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인심 좋아 보이는 한 할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303번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할머니뿐만 아니라 싱싱하고 다양한 야채 봉지를 손에 들고 있던 주변 할머니도 바로 여기에서 타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이런 현실은 지도에 잘 표시도 안되어 있기에 물어보는 수밖에)

또 논산 버스는 계룡 버스 안내 표지판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말도 해주었다. 참으로 구수하면서도 친절한 사람들이다.

작은 시장은 반 도시적인 느낌과 지긋이 늙은 노인들이 멋진 풍경으로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농촌의 활기와 싱싱함이, 그리고 도시의 깨끗함과 간소함이 모두 있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익숙한 표준말이 동시에 들렸다.


303번 버스는 계룡을 지나 논산의 여러 작은 마을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차하면서 서서히 논산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배가 고파왔기 때문에 나는 가방에 든 과일과 음식들을 먹었다. 그것이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예로부터 논산은 넓은 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는 땅이었다. 그래서인지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높은 산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넓게 펼쳐진 평야에 푸른 보리가 심겨 있거나 파나 양파와 같은 야채들이 심겨 있었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높이 떠서 풍요로운 대지를 비추어 주었다. 그것이 또 나의 마음과 영혼을 비옥하게 가꾸어 주었다.

그렇게 논산에 도착하고 나니 거의 오후 네 시가 거의 다 되었다. 논산 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하차를 하자 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가 되었고 당장 오늘 저녁을 보낼 곳을 정하지 않은 데다가 다음 도시로 가려니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논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아보니 전북 익산시가 검색되었다. 익산까지는 적어도 40km나 떨어져 있었다. 40km는 적지 않은 거리이다. 그래서 일단은 익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보았다.


계룡시와는 다르게 논산시의 버스 노선도에는 지도가 아니라 지명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 지도와 논산시에 나와 있는 지명을 비교하면서 익산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타지에서 온 여행자는 낯선 지명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던 것.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한참을 그렇게 버스 표지판과 씨름하고 있을 때, 한눈에 보아도 타지에서 온 낯선 여행자의 모습이 답답해 보였던지 한 할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학생, 어디로 가유?”

“저기 익산까지 가려는데, 할머니 여기에서 익산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마을버스가 몇 번이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익산? 그리로 가려면 여그서 시외버스를 타면 갈텐디? 금방 도착 혀.”

충청도의 구수한 사투리는 나를 언제나 미소 짓게 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할머니, 사실 전 현금이 없어서 마을버스만 탈 수 있어서 시외버스는 안돼요.”

(사람이 돈이 없어지면 부끄러움도 없어지더라 그리고 현실만 말하게 되더라)


그러자 그 할머니는 나를 빼꼼히 다시 쳐다보면서 의아해하며 물었다.

“뭣하러 그리 다니는겨?”

나는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는 웃으면서 할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여기에서 여산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해요?”

“여산은 잘 모르겠는디...”


옆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도 자신이 사는 동네가 달라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들은 역시나 자신이 매일 다니는 버스 노선만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으시다.



그때 나와 할머니들이 서툴게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동남아 아주머니(국제결혼의 현실은 서울이 아니라 이런 시골에서 더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가 정말 유창한 한국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산으로 가시려면, 저기 보이시는 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한 500m쯤 가면 국민은행이랑 신협이 나와요.(정말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이다) 거기가 논산 시낸데 거기 가면 여산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을 테지만 연무대로 가는 버스는 많이 있을 거예요. 그쪽으로 한 번 가보세요.”


정말 놀라웠다.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30년이나 더 살아온 고국 땅에서 낯선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은 것은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아주머니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여행을 하는 동안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벌써 꽤 많은 외국인들을 보았다.



그들 역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 곳 한국으로 흘러 들어왔을 것이다. 일을 위해, 여행을 위해, 또는 결혼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지금껏 세상의 다양한 곳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사람들도 인해 여행은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어쨌든 나는 그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논산 시내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고 연무대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또다시 어떤 외국인 두 사람이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편안한 청바지 차림의 흑인 계열의 여자였고 다른 한 남자는 깔끔한 면바지에 작은 여행 가방을 울러 멘 영국계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이런 촌구석에 웬 외국인이 이렇게나 많은지 참나... 난 무슨 해외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했다. (내가 외국인인 줄...)


나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나처럼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 중이었는데 두 사람도 길에서 만난 것 같았다. 여자는 남아공 출신이고 남자는 영국 출신이었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나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보다 더 시골로 들어가는 외국인들을 만나자 갑자기 나름대로의 자신감과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외국 놈들이 내 나라에 와서 나보다 더 많은 곳을 다니려는 것을 이기고 싶은 그런 마음?) 앞으로 어디로 가느냐고 내가 넌지시 물어보니 부산까지 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들이 타는 버스가 왔고 그들은 내게 좋은 여행되라고 하면서 떠나버렸다.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


그때 어느 중년 경찰이 버스 정류장 반대편에 길을 헤매고 있는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을 데리고 내가 앉아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길을 잃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 드리는 것 같았다. 내가 연무대까지 간다고 하니 그 경찰이 할머니도 같은 방향이니 같이 동행을 해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그 할머니는 언 듯 보아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 할머니는 내게로 와 옆자리에 앉았다. 할머니가 내게 끊임없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시내에 사는 무당 며느리 집을 방문하러 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고내리라고 했다. 나는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고내리라는 곳은 이름도 생소한 논산 신병 입소 부대인 연무대를 조금 더 지나 위치한 자그마한 농촌 마을이었다. 나는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했지만 일단은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에게 있어 시간이란 흘러가는 것이지 나를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얗게 쇠고, 허리가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는 올해 88세셨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는 무당 며느리 집을 찾으러 왔는데 집을 못 찾겠다고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혹시 며느리 집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런 것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늙으니 번호나 주소 같은 것은 외우지 못한다고 하시고는 또다시 자신의 며느리 무당을 찾으러 왔다가 집을 찾지 못하겠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나 역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집으로 모셔드리겠다고 말했더니 할머니는 내게 ‘아 그려?’라고 말하고는 나 보고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도 연무대로 간다고 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할머니는 또다시 자신은 무당 며느리를 찾으러 왔는데 집을 못 찾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곧 이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 방금 한 대화도 잊을 정도로 치매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똑같은 대화가 수 십 번이나 오가게 되었다.(거기다 귀도 별로 안 좋으셔서 나는 본의 아니게 화난 것처럼 큰소리를 치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구십에 가까운 인생을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으셨겠는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결혼을 하고, 또 전쟁을 겪고 집을 잃고 나처럼 여행도 다니고 친구와 부모가 하나 둘 죽어 가고 그렇게 홀로 되어...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행복했던 기억과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서로 뒤엉켜 있을 것이다. 결국 세월은 행복과 고통의 경계를 허물어 기억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내가 무엇이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얼른 수첩을 꺼내 다음 문장을 적어 두었다.


-행복은 무엇이든 기억하는 것.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나도 나이가 들고 저런 노인이 되면 길 하나 찾지 못하고 버스도 혼자 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날이 내게 찾아오기 전에 무엇이든 더 잘 기억해두어야만 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갑자기 ‘무엇이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 ‘무엇’ 안에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모두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소중함을 알려준 할머니 지금은 살아계실까 @쏠파파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한참 잠겨 있는 동안 연무대로 향하는 버스가 왔다. 나는 할머니를 집 앞까지 모셔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는 이미 버스를 타고 연무대를 지나 의도치 않게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고내리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다시 방향을 돌려 연무대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골 버스는 몇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데다가 시간은 이미 6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익산시 여산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늦은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여산면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길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해가 어둑어둑 저물어 가는 이름도 생소한 시골길을 걸으면서 다시 기억과 행복에 관한 생각을 다시 이어갔다.


과연 무엇이든 기억하는 것이 행복한 일일까? 할머니를 보면서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함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만약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이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과오를 잊고 살 수만 있다면 마음은 얼마나 편안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기억에 관해선 무엇이 행복일까? 나는 수첩을 꺼내 네 가지 질문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았다.


네 가지 질문

1. 행복이란 무엇인가?

2. 자신의 잘못된 과오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

3.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행복에 관한 진실은?

4. 사람은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 있는가?


나는 문득 두 번째 질문인 ‘자신의 잘못된 과오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가 기억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방금 생각한 것처럼 자신의 과오를 잊고 살아간다면 행복하기보다는 적어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에 대한 기억을 묻고 살아간다면 평생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잊어버리려 할수록 다시 기억나는 것이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자신의 과오나 실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치매에 걸려 방금 한 말도 잊어버리고 다시 질문하는 할머니의 태도와는 반대로 항상 기억하면서도 단 한 마디도 되묻지 않는 완고한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했다. 항상 모든 것을 잊어버리며 사는 할머니가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감춘 채 살아가는 젊은 내가 행복한 것일까? 쉽게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처음 썼던 문장을 지우고 이렇게 고쳐 썼다.


-행복은 행복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것,

그러나 더 큰 불행은 자신의 과오와 실수가 떠오르는 것이다.


기억과 행복은 분명 긴밀한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잘못된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어떠한 과오와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된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




해가 진 조용한 시골마을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듯이 해가 지는 논과 밭의 정취는 정말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오늘 밤 당장 잘 곳도 없는 놈이 평화는 무슨.....)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묵묵히 나 자신의 과오와 실수에 대해 기억해 내기 시작했다. 곧 나의 과오와 실수 속에 묻혀있던 몇몇 얼굴들이 떠오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누구를 만나야 할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아직 나의 과오를 완전히 바로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또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 이상하게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7시가 반이 넘자 충남 논산과 전북 여산의 경계선이 나타났다. 평화로운 농촌의 양 옆으로 펼쳐진 논과 밭에는 봄에 새로운 파종을 위해 깔아 엎어진 땅을 뚫고 푸르고 싱싱한 각종 야채들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었다. 주변 산은 점점 낮아지고 땅은 점점 풍요로워져 갔다.


나는 드디어 한반도의 곡창지대인 남도에 생애 처음으로 당도한 것이었다.

(나는 갱상도 남자다)



대문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JWdu3L59B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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