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여행

by 권즈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선 사이.

한 걸음 사이로 두 지역의 경계가 있다.


그 두 지역을 칼 같이 갈라주는 것이 국도 위 초록색 표지판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들어선 전라도 남도의 땅이었다.


대전에서부터 하루 종일 걸어 여산면에 이르자 전 날 친구가 가는 길에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쥐어준 유일한 현금으로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미 해는 지고 땅거미가 짙게 깔린 길을 걷다 보니 길 가에 호남의 첫 번째 마을이라는 큰 비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비석에는 월곡 마을이라고 쓰여 있었다.

왠지 마을 이름이 으스스하니 조금은 한기가 느껴졌다.


마을을 지나 한참을 다시 걷다 보니 길가에 텅 빈 식당 하나가 있길래 거기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빼꼼히 넣어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았다. 식당 안에는 아주머니 몇 분이 커다란 TV 앞에 둘러앉아 저녁 드라마를 한창 보고 계셨다.

"혹시 지금 저녁 식사돼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뭔가 죄를 지은 듯이 물어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식당 안에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휑하기도 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세 명의 아주머니는 나를 각기 자신의 본업을 TV 화면 속에서 바삐 꺼내더니 나를 한 번 빤히 쳐다보고는 들어오라고 하더니만 급작스럽게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메뉴판을 한 번 쓱 훑어보고는 가게에서 제일 저렴한 음식을 주문했다. 6000원짜리 콩나물 백반이었다.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무엇을 먹든 특등급 호텔 스테이크가 안 부럽게 맛이 있는 법이다.


주문한 지 10분 만에 음식이 나오고 나는 단숨에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내가 워낙 단숨에 밥 한 공기를 뚝딱 먹다 보니 내 모습을 보신 아주머니 한 분이 얼른 밥 한 공기를 더 내어오셨다.

"밥은 많으니까 천천히 드쇼~"

친절한 톤과 애처로운 얼굴을 띄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음식에도 진하게 베여 있었다. 하루 종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배가 정말이나 고팠다. 나는 단숨에 두 번째 밥공기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나는 결국 밥 세 공기와 밑반찬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휴대폰 배터리 충전도 부탁해 두었고, 인생 첫 전라도 현지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행다녀유?"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우음..음..아, 네네." 나는 음식을 입에 한 움큼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내가 밥을 우악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

"근디 이런 외진 곳까진 웬일로?"

"제가 걸어서 여행 다니거든요."

그러자 세 사람이 전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다시 바라보며 "워메! 어디서?"라고 다들 놀라 내게 반문했다.

"서울에서요."

나는 밥그릇 안에 남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싹싹 긁어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따, 시상에나. 서울에서 여기꺼정 걸어온겨?"

"계속 걸어온 건 아니구요.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버스 없는 곳은 이렇게 걸어 다녀요."

"그럼 어디꺼정 가려고?"

“일단, 오늘은 전주까지 가보려고요."

"옴마나. 세상에나 안 힘든겨?"

"네, 아직은 젊어서 괜찮아요. 더 늙기 전에 지금 해보는 거죠."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래 나는 아직 젊은 거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밥을 다 먹은 후에도 식당 아주머니들과 이런저런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의 허기까지 달랠 수 있었다. 어찌 이렇게 친절하시고 정겨우신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행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 것.


나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전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바로 전주로 가는 버스는 없고 여산에서 금마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시 어둠 속 길을 30여 분 정도 헤매다가 보니 어느새 여산면에 당도했다.


여산면에 있는 유일한 C&U 편의점에서 금마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알아보니 금마를 지나 바로 익산으로 가는 버스가 9시 5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였다.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무도 타지 않는 버스에 올라 익산으로 향했다. 마치 내가 버스를 전세 낸 듯 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일단은 익산에 내려 거기서 다시 전주로 가는 버스를 확인해보고 만약에 버스가 없다면 전주까지 걸을 수 있을 만큼 계속 걸을 생각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나는 금마를 지나 익산 시청 앞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가 있는지 확인해 보니 역시나 전주까지 바로 가는 버스 노선은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전주와 익산 사이에 위치한 삼례라는 곳까지 먼저 가야 했다. 거기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야지만 전주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익산 시청 앞에서 이제 막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111번을 타고 삼례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쩌다 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걷고 늦은 밤까지 버스를 탄 것 같다.

삼례 버스 터미널에 내렸을 때, 과연 이 늦은 시각까지 버스가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적었고 전주로 향하는 버스조차 없어 보였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마지막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시내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기로 했다. 삼례에서 전주로 가는 버스를 검색해보니 315번이 있었다. 그때 마침 검은 길을 밝히며 한 대의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315번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버스에 올랐다.


대략 20여 분을 달리자 복잡한 시가지와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나는 곧바로 이곳이 전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와 본 전주의 밤.

아주 조용하고 적막했지만 여느 도시와는 또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자 오늘 밤은 어디에서 보낼까를 생각하다가 일단은 전주에 있는 전북대학교 근처로 갔다. 나는 모든 도시의 대학은 언제나 밤도 없이 깨어있으며, 그 주변으로 편의 시설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낯선 여행자인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일단은 지친 몸을 달래고 생각을 정리할 24시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의 예상처럼 전북대학교 주변은 환하게 밝았고, 많은 학생들로 한산하지는 않았다.

검색해 보니 전북대학교 정문에 24시 카페가 두 군데나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따뜻한 차를 한 잔 시키고는 노트북을 펼쳐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혼의 상실감은 흔히 낯선 땅에서 새벽 두 시경에 여행자를 방문하곤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과연 알고 있는가?


나는 대답한다.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어. 돈도 그대로고 노트북도, 배낭에 든 물건들도 모두 그대로인데?

그러자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넌 그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을 잃어버렸어. 그것 찾기 위해 바로 여행을 떠난 것이지...


나는 이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단지 내 안에 존재하던 나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러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고는 다음 문장을 적기 위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시험 기간이었던지 꽤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시험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어떤 이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테이블에 엎어져 졸고 있고, 어떤 이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지나간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지금까지 왔던 여정들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지나왔던 곳,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들까지.

그렇게 한참을 정리하다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새벽 2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결국 전주까지 온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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