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안에 숨겨진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진짜 여행

처음으로 간 전주에서 홀로 생각하기

by 권즈

'오늘 이 하루가 내 생애 최대의 행복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던지 영혼이 자유로운 여행자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여행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부스스한 얼굴을 24시 카페의 테이블에서 들어 일으켰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책상에 엎드려 잔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는데, 온몸이 쑤시지 않은 곳이 없다. 일단은 화장실에 들어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나의 일기장에 이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이동과 공간의 변화가 여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막상 무전으로 도보 여행을 떠나보니 여행자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의 상태에 따라, 다시 말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삶의 태도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더욱이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길 위에 있던 집 안에 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하루의 삶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과 같은 설렘의 연속이 될 것이다. 나 역시도 꾀 제제한 용모에 배낭여행자 신세지만 오늘 하루도 그러한 마음을 가져보기로 다짐하고 전주에서의 새로운 아침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내 생애 한 번에 와 본 적이 없는 전북 최대의 도시,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시, 한옥마을이 유명한 전주.

아침을 먹기 위해 나는 전북대학교 정문에 있는 밥으로 만든 햄버거 전문점에 들어가 제일 싼 2000원짜리 밥 버거 하나를 시켜 먹었다. 돈은 최대한 아끼기로 한다. 대전에서 만난 친구 녀석이 쥐어준 현금이 그리 넉넉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것이었지만 의외로 밥 양이 많기도 하고 맛있었다. 그러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눈으로 한 구절씩 함께 씹어먹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이유는 진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직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명문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소로우는 자신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한 시절을 뚝 떼어내어서 콩코드의 인적 드문 산으로 들어가 5평 남짓 작은 오두막을 손수 지어 홀로 지내며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시간을 먹으며 이렇게 썼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밖을 바라보며 그의 삶과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함께 햇살 눈부신 봄의 향연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려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페 안에는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락모락 연기 나는 커피에 리포트와 A4 용지를 뒤적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시험 기간인가 보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은 미래의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현재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의 불편함과 피곤함을 이겨낸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의 그 무엇을 하기 위해 지금을 준비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꿈이라는 것이겠지. 꿈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생명력 가득한 것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래서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산다.'


이런 생각이 들자 길거리를 지나치는 풋풋한 대학생들이 모두 멋있고 당당해 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나도 대학생인 것처럼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아마도 내게는 점점 사그라드는 그런 생명력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5월의 봄 햇살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묘한 힘이 있다. 나는 그 생명력을 내게서 찾아보고자 여행 중에 찍은 나의 사진을 뒤적여 보았다. 나는 5월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으로나마 내게 조금 남아 있는 생명력을 확인해 보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배낭을 다시 울러 멘 채로 카페를 나와 곧장 대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무릇 어느 도시든 그 도시를 알려면 시청이 아닌 대학교를 가보라. 대학은 그 도시의 미래이며, 사상이자 철학이며 경제이며 문화이며 예술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본 전북대학교의 첫 느낌은 봄이 넘치는 젊음과 여유로움이었다.


따뜻한 오전 햇살을 쬐며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 수업을 들으러 가는 신입생의 무리들, 그리고 조금 더 걷다 보니 도서관이 보였다. 도서관은 다른 건물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새로 지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학창 시절에 도서관의 구석진 책장 사이 복도에 아무렇게나 틀어박혀 눈부신 봄 햇살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책들 속에 파묻혀 있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의 봄도 지금의 봄과 같지만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가고, 보잘것 없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만 이렇게 덩그러니 남아 있던가.

나는 불현듯 십 년의 시간이 한순간처럼 느껴졌다. 십 년 전의 나는 봄과 같이 싱그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청춘이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현실 속에서 새로운 이상과 꿈을 꾸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5월의 화창한 봄날에 위로를 받아보기로 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바라본 5월의 캠퍼스는 한없이 여유롭고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이었다. 붉은색, 흰색, 보라색, 노란색 튤립과 분홍색, 자주색 철쭉, 노란색 산수유나무, 붉은 버가목 열매, 싱싱한 새 잎을 연 단풍나무와 벚나무, 그리고 아직은 이름을 잘 모르는 18살 소녀의 싱그러움 같은 이런 꽃들의 향연을 바라보다가 나는 예전에 읽었던 이어령 교수의 책 내용을 떠올렸다.


“이보게 젊은이, 모든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통을 양분 삼아 꽃을 피우고, 고독을 연료 삼아 빛을 발하는 법일세." 이어령은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멍청하게도 그들의 아름다운 꽃과 눈부신 빛만을 보고 감탄할 뿐이지. 베토벤이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거야. 분명히!

'내 음들의 현란한 춤사위와 빛을 발하는 듯한 웅장한 교향곡들을 듣고 감탄 한 사람들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내 작품들이 단절된 소리의 세계와 정신적 고독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이야."


나는 책의 내용을 생각하며 '정말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교정의 가로수 길을 걸어 다녔다. 봄의 눈부신 황혼 빛이 충만하고 강렬한 에너지 덩어리로 산란되어 내 앞을 비추었고 따뜻한 바람이 '쏴아'하고 긴 호흡으로 밀려왔다.


전주라는 도시의 여유로움과 싱그러움과 맑음은 낯선 여행자를 잡아끄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 무엇이 정확히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전북대를 나와 풍문 속 전주 한옥 마을로 가서 그 답을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전주 한옥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전주 영화 거리를 지나가야 했다. 나는 먼저 전주 영화 거리를 걸어 보기로 했다. 나는 걸으면서 항상 배웠기에 이번에도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걷다 보니 영화의 거리 입구가 나왔다. 벽화에 그려진 청바지를 입은 비보이가 나를 바라보며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거리는 더욱 한산해 보이고 인적이 드물었다. 나는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와 정방형으로 곧게 뻗은 골목들을 조용히 걸었다. 어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 곳곳에는 옛 전주 국제 영화제의 화려한 시절을 보여주는 듯한 홍보 포스터와 현수막이 즐비하게 걸려있었지만 이제는 썰물처럼 인파가 빠져나간 유령 골목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전주에 있는 한옥 마을이 너무 유명해서인지 전주 한옥 마을 바로 옆에 있는 다양한 재미와 테마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멋스러운 골목의 풍경을 제대로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막상 전주에 와서 한옥 마을로 접어드는 골목을 걷다 보니 이러한 생각의 전환점 내지 사고의 확장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전주의 영화 거리의 뒤쪽으로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정말 멋진 스타일을 내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충분한 스타일리시한 옷 가게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서울의 신사동이나 홍대의 쇼 윈도에 걸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만 같은 멋진 디자인의 옷들이 많았다. 옷 가게뿐만 아니라 가방과 신발, 그리고 여러 액세서리를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많이 있었다. 또 어떤 카페의 정원에는 생명력이 푸르른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나무 그늘을 제공하기도 했다. 사람이 많이 않아서였던지 바람이 부는 조용한 카페의 정원이 더욱 여유롭고 분위기 있어 보였다.


그렇게 영화의 길이 끝나면 바로 전주의 차이나타운 거리와 웨딩 거리가 연이어 나타났다. 전주의 거리의 풍경은 한 거리마다 각각의 테마가 있어서 그 테마에 맞는 가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를 혼자서 골목을 구경하고 날이 더워지자 나는 주변에 좀 쉴만한 곳이 없나 둘러보니 길 옆에 고즈넉한 옛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운 열기를 식히려고 얼른 열린 기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기와집의 공식적인 이름은 '전주 풍패지관(全州 豊沛之館)'으로 우리나라 보물 제583호로 지정되어 있는 옛 조선 초기에 전주를 방문한 관리들이나 사신이 묵던 숙소였다. 본관에 쓰인 '풍패(豊沛)'라는 단어는 옛 중국 한(漢) 나라 고조가 태어난 지명으로, 조선 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비유한 말이다.


나는 입구에 풍패지관에 쓰여 있는 말을 보고서야 전주에서 풍겨지는 고즈넉함과 여유로움과 풍채의 원류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전주는 바로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의 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성을 보려면 서울이 아니라 일단은 먼저 전주에 들러야 함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배운다는 것은 교만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여전히 세상과 우주는 호기심이 가득한 삶의 놀이터라는 뜻이다. 내가 평소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나는 항상 길을 걸으면서 배웠다. 왜 이런 것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세상의 제도와 대학들이 너무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나.


한참을 풍패지관의 대청마루에 누워 땀을 식히고 나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대청마루에는 나 말고도 거기를 거닐다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나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 더러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한 한낮의 여유를 즐기며 지나온 과거와 자신을 둘러싼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면서 서로 자신들만의 인생과 행복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풍패지관을 지나자 옛 전주성의 흔적이 담긴 커다란 성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문의 이름은 풍남문이었고 전주 한옥 마을의 시작점이 바로 이 풍남문부터이다. 파손된 곳이 하나도 없이 깨끗한 다듬질로 우뚝 솟은 풍남문을 설명해 놓은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풍남문: 보물 제308호.

이 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문이다. 전주에는 원래 동서남북 문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지금은 이 문만 남았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정유왜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1768)에 다시 세우면서 이름을 풍남문이라 지었다. 성문 위에 세운 누각 위층이 기둥이 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설명 아래에는 전주를 세운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순례길에 대한 소개도 적혀 있었다. 전주를 벗어나 전주 시외 곳곳을 밟으며 전주 땅에 스며든 옛 순교자들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순례길이라는 설명이었다. 대부분이 조선 말기에 천주교 박해로 인해 처형된 신부들과 천주교를 믿은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과 실천을 위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먼 이국 땅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드렸다. 어찌 보면 개죽음이고, 믿음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고귀하고 숭고한 죽음이다. 그리고 마지막 처형의 순간까지도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면서 그 누구를 원망함도 없이 단순한 감사와 순리를 받아들이며 죽었을 것이다. 나는 풍남문 앞에서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자 그 오래전에 이 땅에 살았고 죽어 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과 모습이 조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풍남문을 소개해 둔 작은 표지판에서도 이토록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뜻밖에 많이 놀라게 되었다. 이래서 여행길은 인간을 사색하게 만드는가 보다.


나는 길 위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그것은 책에서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고, 단순한 정보나 기술이 아닌 길 위로 불어오는 바람과 햇살에 실린 가르침과 깨우침, 그리고 나와 타인을 바라오는 어떤 정신들이었다. 책은 결코 이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몸으로 삶을 살아내며 직접 부딪히며 느껴야만 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막상 세상의 수많은 길들 위에 서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얼마나 모르는 것들이 많은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따라서 여행은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며 자신 안에 숨겨진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곧 인간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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