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은 멀리서 보는 것

전주 한옥 마을에서

by 권즈


전주의 한옥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잡은 전동성당.

내가 선 풍패문의 왼쪽에서 바라보니 멀리서 고즈넉한 십자가 하나가 보인 곳, 바로 그곳이었다. 하늘도 따뜻한 봄을 환영하듯 봄바람에 흩어진 구름에 아름다운 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나는 얼른 봄바람을 타고 발걸음을 옮겼다.

전동성당은 고즈넉한 한옥 마을에 이상하게도 잘 어울리는 고전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꽤나 오래된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건물이었다.

따뜻한 날씨는 수많은 연인들과 한가로운 사람들을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불러 모으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독 봄에 전주 한옥 마을을 찾아오는 이유가 바로 봄의 따뜻한 날씨와 여유로운 햇살이 아닐까?


전동성당은 조선시대에 천주교도의 순교터 위에 세운 예배당이다. 조선시대 1791년 정조 15년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그리고 순조 원년(1801)에 호남의 첫 사도인 유항검과 윤지헌 등이 풍남문 밖인 이곳 전동성당 앞 터에서 박해를 받고 참수를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908년부터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건립이 시작되어 1914년에 완공이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면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건물은 한국의 전통적인 한옥들과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뽑냈다. 그 실내의 모습은 마치 유럽의 어느 성당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조금은 소란한 야외에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과는 달리 실내 예배당 한 켠에 한 사람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조용한 실내에서 기도하는 저 여인의 뒷모습에서나는 어떤 거룩한 영성과 정숙함을 느꼈다.


전동성당의 최초의 신부의 흉상은 전동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나 지키며 바라보고 있노라.'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같았다.


성당의 옆 건물은 옛날 신부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성가대 연습실과 성당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성당을 나서 조금만 길을 가면 드디어 전주 한옥 마을의 전통적인 기와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건물이 바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경기전'이다. 이곳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셔둔 조경묘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 둔 전주 사고가 함께 있다.


나는 경기전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경내는 아주 조용했다. 넓은 잔디밭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밭 안에 마련된 건물 안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는 조선의 모든 왕들이 그러했듯이 붉은 색 용포를 입은 채 위엄 있게 용상에 앉아 있었다. 아주 온화하면서도 강건한 표정을 한 채로. 그의 용안은 조선의 역사를 말해 주었다. 그가 어떻게 부패한 고려 왕실을 무너뜨리고 약 500여 년간 지속된 조선왕조를 일으켰는지 나는 그의 굳은 의지가 담긴 얼굴과 단정한 자세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 보니 여러 건물들이 보였다. 그 중에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조선왕족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였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일층에 여러 다리를 세워 건물이 땅에 닿지 않도록하여 마치 물위에 지어진 수상가옥처럼 건물을 만들어 놓았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여러 가지 수재나 화재로부터 책들을 보호하고자 함이었다.


전주사고 안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1409년 태종 9년부터 25대 총 472년의 조선 왕실의 역사를 연월일의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으로 그 분량이 무려 1893권이나 된다. 여기에는 그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천문, 풍속, 국제 정세와 예술에까지 그 분야가 다양히 기록되어 있으며 국보 151호이자 국제유네스코에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전쟁이나 국난 혹은 천재지변에 의해 귀중한 책들이 소실되거나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국에 여러 사고를 두었는데 유일하게 지금까지 유실되거나 소실되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전주사고라고 한다.


나는 전주 사고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담긴 글을 읽으면서 ‘역시나 모든 역사와 문화의 정신은 책을 통해 후대에 전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전을 나와 다시 길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 한옥 마을을 찾았지만 그 중에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꽤 많은 외국인도 더러 눈에 띄었다.


나는 말없이 그러한 풍경과 바람의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길을 계속 걸었다. 마치 부유한 조선 시대의 한 골목을 걷는 듯.


전주 한옥 마을의 끝자락에 가니 작은 언덕이 보였다. 나는 언덕을 조금 올라 보기로 했다. 그곳에 오르니 곧 전주 한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맑은 봄 하늘에 해가 지는 운치와 한옥집의 향기로운 조화가 꽤 볼만했다. 길을 걸으며 볼 수 없었던 것, 그것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만 보이는 일치와 조화로움이었다. 모든 집 하나, 모든 길 하나,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적인 조화로움을 이룬 것이다. 나는 물론 어떤 것이든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멀리서 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그것은 여유이며 트임이자,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도, 여행이라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리라. 너무 가까이에서 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여유와 트임을 가지고 멀찍이 떨어져서 전체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인생이지 않겠는가. 나는 이 인생을 느리게 걷고 너무 가까이에서 보기보다 조금 떨어져서 전체를 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그 동안 놓치고 살았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우정과 웃음과 미학과 여유로움과 사람이 있다.


여행과 인생의 여유로움은 곧 멀리서 보는 것.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적어두고 언덕을 내려와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여행자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에 모든 것을 다 보고자 하는 욕심이다. 사람은 조금 여유로울 때 멋스럽다. 그리고 여유로울 때에야 전체를 바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며, 전체를 바로 보아야 작은 것까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잠시 그 언덕에 앉아 석양이 지는 찬란함을 즐기다가 곧 골목으로 나왔다. 골목마다 다양한 주제의 건물들이 많았다. 개인 작품 전시전, 분위기 좋은 카페, 전망 좋은 테라스를 갖춘 전통 카페까지 아기자기 하면서도 새련된 재미가 골목마다 가득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구멍가게'라는 카페였다. 옛날 추억을 되살려주는 예스러운 물건들을 가지런히 인테리어 해 둔 전통 차와 커피를 파는 카페였다. 나는 카페앞과 안에 전시된 물건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노트북을 켠 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자 내 안에 미쳐 발견하지 못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좁게 보고 급하게 보면 부분만 볼 수 있고 다 볼 수 없다. 멋과 부드러움은 여유로움에서 온다. 삶과 정신과 마음의 여유, 그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나의 가치(행복)이었다.



시간의 여유가 가져다 준 행복.


해가 지는 지도 모른 채 나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밤이 늦도록 글을 쓰고 여행과 삶과 나의 과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고 생각나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오래도록 그 곳에서 지난 나의 삶을 반추하며 기억해 보았다.

결국 늦은 저녁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전주를 나서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세운 여행의 원칙 중 하나가 한 도시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이틀을 머물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주 한옥 마을을 떠나 거의 막차를 타고서 전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물론 방향은 남쪽이었다.


지도를 펼치고 전주와 가장 가까운 도시를 찾아보니 바로 옆에 정읍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정읍이라...나는 내 평생 단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도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을 때 왠지 모를 설렘을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은 마치 예전부터 친한 사람으로부터 들어왔던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것과도 같다. 새로운 땅은 나에게 새로운 사람이며,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대화 그 자체이다. 나는 그러한 대화와 만남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더 넓게,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 다녀 온 대부분의 도시들도 그랬지만 말이다.


다행히 정읍으까지 가는 마을 버스가 있어서 정읍의 이름모를 동네에 도달하니 저녁 11시가 넘었다. 어디에서 밤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주변에 있는 모텔과 여인숙을 알아보았는데 내가 가진 돈으로는 하룻밤 몸을 누일 비용으로는 너무나 비쌌다. 그래서 결국 발길을 돌려 길을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유흥업소와 편의점 하나를 지나 택시가 길게 늘어선 모퉁이를 돌자 생각지 않게 조그마한 정읍역이 나타났다.

나는 곧바로 정읍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안은 이미 거의 모든 열차가 끊겼는지 사람들이 없어서 아주 한산했다. 5월의 봄 밤은 해가 진 후에 기온이 급속도로 내려 갔다. 그래서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배낭에서 여벌의 옷을 더 꺼내입고는 사람이 드문 역사의 의자에서 오늘의 이 밤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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