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역에서 노숙하며 만난 노숙자
정읍 역사 안, 밤 11시 30분.
작은 마을의 아담한 역사 안에는 늦은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대합실 정면에는 커다란 TV가 켜져 있었다.
딱히 갈 곳을 정해놓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이 밤을 보낼 긴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특별히 정해진 일이 없으면 어디서나 자리를 잡고 글을 썼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대합실 의자에 앉아 글을 쓰기로 했다. 대합실의 긴 의자를 살펴보니 그 아래로 콘센트 하나가 보였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노트북과 씨름을 하면서 안을 살펴보니 대합실에는 나 외에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늦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조용히 TV를 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의자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한 노인은 바스락거리며 신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조용한 분위기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의자에 조용히 앉아 노트북을 켜고 수첩을 펼쳐 지금까지 적은 문장들을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수첩에 적어 둔 것을 한 번 정리해보니 그 목록이 꽤 길었다. 그만큼 내가 길을 걷는 동안 꽤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시방, 거시기 여기 수첩 떨어졌소. 자네 꺼 아닌겨?"
술이 약간 취한 40대 후반처럼 보이는 노숙자 아저씨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였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언제나 내게 친숙함을 선물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그는 나에게 여행 왔냐고 물었다.
얼핏 보니 그는 흙이 뭍은 더러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얼굴은 며칠간 씻지 않았는지 검튀가 얼굴 곳곳에 묻어 있었으며 농협 마크가 찍힌 촌스러운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뭐 내 모습도 별반 다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는 약간 술에 취해 있었고, 이미 이른 저녁에 술을 마셨던지 조금은 정신이 깨어 있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나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적적함을 달랠 말동무가 필요했던 것인지 아니면 평소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지 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나 역시도 깊은 새벽 조용한 시골 역사에서 언제 이렇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술 냄새를 간간히 풍기며 말하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그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친구가 되는 과정은 이렇듯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웃음을 나누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지. 여행자인 내게는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친구이자 같은 여행자라는 생각 때문에 그와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원래 정읍 사람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공사판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쉰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여기 정읍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뒤편의 커다란 산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어보나 마나 내장산이여."
‘아. 내장산이 정읍에 있었구나.’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역사의 벽에 걸린 지도를 보니 내장산 바로 옆에 정읍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정읍이나 내장산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처럼 반응했었다면 그는 내게 더욱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말이 정말 그러하다는 듯이 “아, 내장산이요. 잘 알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장산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는 내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는 나에게 한참 젊은 시절 내장산에서 즐겁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가 생각이 났다는 듯 대뜸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단은 광주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광주는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하면서 또다시 그의 광주에 대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또 그는 내게 물었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밤은 더욱 깊어져 갔다.
나는 그와의 대화가 지속될수록 그가 진솔하면서도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나에게 거짓 없이 솔직히 말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전라도 명소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끝자락에 와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긍디, 지나간 세월이 이렇코롬 빨리 흘렀는지 지나가지 전에는 몰랐었네...”
그 세월이라는 말을 하고는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과연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치열한 삶이었다. 한 인간이 살아왔던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인간적인 인생이었다. 누구나가 공감하고 누구나가 격었을 만한 그런 일상의 웃음과 울음으로 가득 찬 삶, 그것이었다.
나는 느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낯선 사람에게 자연스레이 진실해진다는 사실을.
나는 그가 좋아졌다. 그리고 그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 수첩을 펴서 보여주고는 혹시 이 질문에 답을 좀 달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술 취해 충혈이 된 붉은 눈으로 나의 수첩을 읽어 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나 보고 혹시 기자 양반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기자는 아니라고 했다. 단지 나는 아저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할 뿐이라고만 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수첩의 질문을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네 가지 질문>
1.여행은 무엇인가? (여행론)
*여행은 어떤 여행의 목적을 비우는 자유로움이다.
*여행은 일상적인 장소와 평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행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다.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여행은 가끔 낯선 사람들을 서로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다.
*여행은 타인의 행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신비로움이다.
*여행은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는 설렘이다.
*여행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때로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이다.
2.잘못된 실수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가? (관계론)
*행복을 기억하는 일은 기쁘지만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는 것은 고통이다.
*실수를 바로 잡으려면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며 용서의 증거는 서로의 화목이다.
3.삶의 행복(가치)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행복론)
*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으로 인해 타인의 삶이 더욱 행복하게 변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행복은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이라도 기꺼이 타인과 나누는 데 있다.
*행복은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향기로운 꽃과 함께 봄 길을 걷는 것이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행복은 전염된다.
*행복은 여유로움이다.
4. 참 사랑은 무엇이며 사람은 어떻게 그 사랑을 배우는가? (사랑론)
*참 사랑의 배움은 먼저 참 사랑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결혼을 통해서도 배운다.
*서로 사랑해 결혼하지만 정작 결혼을 한 후에야 참 사랑을 배운다.
*사람은 자신을 위한 눈물을 보고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이해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존중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사랑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은 주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은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온유한 마음이다.
*사랑은 대상을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히 섬기는 것이다.
*사랑은 막을 수 없는 능력이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내가 적은 목록을 읽다가 수첩에 끼워둔 볼펜을 꺼내더니 커다랗고 투박한 글씨로 두 번째 질문 아래에 이렇게 휘갈겨 썼다.
'지금 잘 살자!'
그리고는 내게 수첩을 돌려주며 헤헤 웃으며 다른 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쓴 문장을 보고서 함께 웃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한 말이 백 번 옳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그저 그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갔다.
“이제는 나도 그만 가봐야겠네.”라고 말하고는 그는 금세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났기에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그도 뭔가 못내 아쉬웠던지 내게 나중에 정읍에 오면 꼭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비록 그의 나이도 그의 이름도 그가 사는 집도 어디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그러겠다고 약속하고는 그를 보내주었다.
잠시 후, 어둠을 뚫고 마지막 무궁화호가 플랫폼으로 쉬쉬 소리를 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맞추어 대합실의 몇몇 사람들이 짐을 싸 들고는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나는 수첩을 다시 꺼내 그가 적은 문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가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수첩을 보고 있는데 속에서 '아하'하는 소리와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까 그가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글을 이렇게 고쳐 적었다.
*잘못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현재를 행복하게(잘) 살아야 한다.
그랬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도, 그 여유도 없는 것이었다. 내가 만났던 정읍의 그 아저씨는 인생을 살다 보니 현재의 삶을 잘 사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어쩌면 진정으로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바로 첫 번째 질문에 이렇게 또 한 문장을 적었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이 명제는 참으로 옳다. 사람은 그 누구에서든 배울 것이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사고와 시각의 틀로 상대방을 미리 규정해 버리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서도 배울 것을 발견하지 못할 뿐. 나는 이미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사람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내가 넥타이를 매고 깔끔한 옷을 입고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가 과연 내게 다가와 수첩이 떨어졌다고 이야기했을까? 아니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허름한 옷에 흙이 묻은 운동화에 온갖 짐이 든 배낭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여행길에 오른 순례자였기에 모든 사람에게 대화의 기회와 만남의 장을 열어 놓은 상태였다.
그는 내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절대 아니었다. 단지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웠던 것이다. 모든 것은 관점의 차이이지 상황과 역할의 차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로부터 배우고자 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현자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대화하고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 현자를 찾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일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루 종일 길을 걸었던 피로와 배고픔과 추위가 한꺼번에 밀려와 나의 육체를 덮쳐 버렸고, 의자에 몸을 가로 누인 채 나는 한적한 정읍 역사 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