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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Sep 15. 2020

육아휴직 6개월 만에 쌍둥이 아빠는 슈퍼맨이 되어갔다

쌍둥이 다둥이 현실 육아 에세이

(이 글은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란성쌍둥이에 관한 기록이다.)

 2020년 1월의 어느 날, 

 정확하게는 한반도에 코로나가 덮친 후 바로 다음날 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들 둘을 얻었다. 아내와 나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그저 둘째만 생각하던 찰나에 쌍둥이가 우리에게 축복처럼 찾아온 것이었다. 첫째는 딸이었기에 누구에게나 모두 기쁜 아들 둘 이란성 쌍둥이었다. 

 처음 12주 정도 되었을 때 임신 사실을 알고 초음파를 받으러 병원에 가던 날, 나는 이상한 기분과 함께 아기집이 첫째 때와는 뭔가가 다른 것을 의사보다 내가 먼저 발견하고 그것이 곧 쌍둥이임을 알고 얼마나 신기하면서도 당황했던지.


 내 평생 살면서 쌍둥이에 대한 생각은 1도 하고 살지 않았으니 그 신기하면서도 기쁜 감격은 쉽사리 마음속에서 가시지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노산인 아내가 아직은 아기집이 안정될 때까지는 알리지 않은 것이 좋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혜로운 아내의 선택이었다. (혹시나 모를 유산 때문에 미리 알릴 수 없는 그 마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시대는 워낙에 노산에, 시험관 아기에, 유산이 많아서 그런지 단 한 번의 자연임신 쌍둥이라 나 자신에게 뭔가 모를 뿌듯함과 자신감?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애는 네가 낳냐?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물을 것 같지만...)

 어찌 됐든 쌍둥이를 돌봐줄 다른 가족이 없는 우리 상황에 나는 육아휴직을 했고, 코로나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일을 쉬면서 전적으로 육아에 종사하고 있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내 생애 다시없을 경험이고, 또 누구나가 겪을 수 없는 그런 특별한 경험이기에 나는 시간이 더 지체되기 전에, 이 경험과 느낌과 깨달음을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육아일기를, 나의 아이들에 관한 시간과 사랑과 철학을 이 공간에 남겨본다. 

 





 육아의 기본은 사랑이 아니라 체력이다. D+160


 어떤 미친놈이 육아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나?

나의 얼굴은 만성피로, 너희들의 얼굴은 항상 맑음. 왜 그런 건데 @쏠파파

 육아는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 셋째도 체력이었던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랑? 그 딴것은 아내 없이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쌍둥이 둘이 동시에 5분만 울어도 내 마음속에서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고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연기 같은 감정인 것을.

 육아에 있어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철학인 것이다.

 감정은 아이가 자랄수록 그 아이와 함께 점차적으로 기억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싹이튼 그 미묘하고도 작은 것으로 육아의 지옥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료이다.  그래서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아기의 행동이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반복적인 울음 공세 속에서도

 '나는 이 아이의 부모이다. 나는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작은 존재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야 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내가 없으면 이 아이는 죽는다.'라는 철학을 잊지 않을 때 지치지 않는 육아는 가능한 것 같다. 

 

 TV 프로그램 중에 예전부터 항상 인기가 있었던 '슈퍼맨이 돌아왔다.' , 즉 슈돌이 그냥 나온 제목이 아닌 것을 나는 동시에 세 아이를 아내와 함께 전적으로 키우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이 셋을 동시에 키우려면 인간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슈퍼맨이 되면 가능해진다.'라고. 

 다른 도움의 손길 없이 쌍둥이와 큰 애를 6개월 동안 키우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에서 슈퍼맨으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힘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세진 것 같고, 잠도 평소보다 덜 자게 되었다. (실상은 자고 싶어도 밤낮 가리지 않고 깨어 울어재끼는 바람에 오래 잘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빠의 한계를 깨닫게 해 줬다 @쏠파파

 5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 아기들은 슬슬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보통은 6개월이 기준이기는 하지만 덩치 큰 후둥이 녀석이 덩치 작은 선둥이 녀석보다 발달이 한 달은 빠른 것 같다. 작은 녀석은 아직도 제 자리에 자석의 N극이 S극을 만난 것처럼 뱃가죽과 매트 바닥이 딱 달라붙어 움직일 생각을 않고, 그저 사지만 세차게 흔들며 큰 소리로 울어만 댄다.

 그에 반해 덩치 큰 둘째 녀석은 이제 쉽게 몸을 뒤집어 틈만 나면 신교대 훈련병처럼 팔꿈치를 왔다 갔다 하면서 낮은 포복 자세로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기가 기어 다닌다는 것은 아기의 시야가 집안의 바닥과 천장에서 벗어나 집안 곳곳으로 확장된다는 뜻이고, 그만큼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성장의 괄목할 만한 한 단계이다.  그와 동시에 부모들은 그 전보다 더 빨리 눈알이 굴러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아기한테 눈을 떼면 곧바로 아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손으로 잡고 입으로 가져간다. 기저귀, 종이, 고무 머리끈, 작은 장난감 등등 모든 사물이 아기의 호기심과 씹는 욕구를 채워준다.  

 그러한 지랄발광을 사전에 차단하고 손발을 쫓아다니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체력도 곧 바닥이 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하루 종일 아기 손과 입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6월 말이 지나고 난 시점에 공기는 좀 더 무거워지고, 날은 점점 저 무더워져 갔다.

 그래서 콧바람이나 쐬려고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집 가까운 이호테우 목마 등대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한 번 나갈 때마다 나는 슈퍼맨으로 변신한다. 


 비단 아이들만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온통 신경이 예민하고 더 체력적으로 약빨이 떨어진 소중한 아내의 심기를 건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려면 허리에 아기띠 하나는 물론이거니와 저만치 혼자 멀어져만 가는 큰 딸을 시선에서 놓쳐서도 안된다. 20m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심히 걸어가야 한다.

 차에서 유모차와 가방과 세 아이들을 들었다 내리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승모근과 이두 삼두근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육아는 평범한 한 인간을 슈퍼맨으로 성장시키는 놀라운 경험이다. 


 하지만 슈퍼맨은 나쁜 놈들 다 때려잡고 나면 다시 조용한 신문사 기자 클라크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이라도 살지 나를 포함한 육아 부모들은 퇴근도 없더라. 아침에 아기 울음소리에 출근하고, 아기띠 메고 아기를 안고서 분유 먹여가며 간신히 잠을 재우고 나면 퇴근, 즉 육퇴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왜 나는 첫 애 때는 이러한 슈퍼맨의 고뇌를 알지 못했을까?

아마도 전적으로 이렇게 지금처럼 육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아의 지극히 작은 단편만 보고 경험했었던 것이리라. 

사진으로 다시 보니 이렇게 아름다웠지는 첨 알았네 @쏠파파

 나는 그렇게 하루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심정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의 일몰을 바라보며 열심히 땀 흘리며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갔다.

(썅.......)




본격적인 나들이를 시작해볼까? D+170


 7월의 초입에 들어서자 우리 가족은 본격적인 제주 탐방에 나섰다. 

 다른 곳도 아닌 제주에 살면서 자연과 가까이하면서 살지 않으면 이곳에 사는 의미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가족이 처음으로 집 아닌 다른 곳에서 외박을 하는 날이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 숙박 예약을 하고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날이었는데,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애 셋 짐의 양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사진에서는 커다란 돗자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아래에는 쌍둥이들 먹을 분유와 젖병 십 수개, 젖병 씻는 도구와 세 아이의 속옷과 여벌의 옷가지, 수건과 장난감, 거기에다가 그날 저녁에 먹을 식사 재료까지(여기에 다 기록하기도 힘든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들, 수유등, 동화책, 슬리퍼, 기저귀, 아기띠 등등)..

 그럼 여기서 문제, 과연 이 많은 짐을 누가다 싸고 차에 옮겨 싣고 또 숙소까지 옮겼을까?

 

정답은.... 슈퍼맨이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슈퍼맨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휠 듯 하지만 이 집에서 내가 아니면 그렇게 할 사람이 없기에 이왕 하는 김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로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휴양림이 아니, 집 밖으로 나가서 다니는 것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자연 속으로 나가 아이들과 즐겁게 뛰어노는 일은 정말이지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 막 6개월도 안 된 신생아 쌍둥이들을 하나씩 들쳐 메고 다니는 일은 곧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을 안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수시로 울고, 똥오줌을 번갈아가며 싸고, 잠도 서로 돌아가면서 깬다. 그러니 어디를 도대체 마음 편히 먹고 나가볼 수 있겠는가?



먼저 뺏는 놈이 임자다 @쏠파파

 아직은 제대로 못 기어 다니기 때문에 쌍둥이들의 시야와 세계관은 고작 1m 안팎이다. 그러니 그 1m 안에 자신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가 없으면 울어대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그 욕구가 채워지기 전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략 이런 식으로 @쏠파파

 결국 아내와 내가 아기 한 명씩 안아주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또다시 나는 슈퍼맨이 되어서 내가 동시에 둘을 안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보기보다 내가 이렇게나 체력이 좋은 줄 몰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가니 점점 잘 때마다 허리가 아파온다는 슬픈 현실이 ㅎㅎ)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과 함께 숲에서 새로운 아침, (아니 그날은 쌍둥이가 밤에 자꾸 깨서 거의 밤을 새웠구나)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그나마 여유 있는 산책을 즐길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쏠파파

 딸아이는 살아있는 곤충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고, 쌍둥이들은 유모차에서 세상 푸른 숲의 환상적인 모습에 눈알이 굴러가기도 전에 잠만 잤다...

 그렇게 아이의 부모들은 욕심이 많아서 아기가 정작 원하지도 않는 것을 주려고 갖은 애를 쓴다. 더 예쁜 것을 보여주고, 더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더 좋은 것만 느꼈으면 좋겠다는 주제넘은 욕심 말이다. 그게 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이 욕심쟁이가 되고, 때로는 바보가 되고, 항상 슈퍼맨이고 싶은가 보다. 


무조건 져주어야 한다 @쏠파파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아기띠와 혼연일체가 되어 큰 딸과 뛰어다니며 열심히 놀아주는 슈퍼맨이 되어야 했고, 시원한 물총 싸움에서 환하게 번지는 딸아이의 미소 속에서 진짜 살아있는 의미를 찾았다.

살아가는 이유는 저 아이의 사심 없고, 순수한 웃음소리에 있었다. 

거기에 나의 현재 육아와 앞으로 몇 년간의 존재의 목적이 있었다. 

 물론 말은 거창하지만 현실은 밥도 한 끼 제대로 앉아서 먹지 못하는 거지 깽깽이 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나와 아내는 한 번쯤은 정말 언젠가는 둘이 같이 한 식탁에 오붓하게 않아서 천천히 대화도 나누고, 반찬과 국과 고기의 맛을 음미하면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하는 날이 오겠지?(라고 바랬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쌍둥이 생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별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내가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으려니, 지나가시던 한 50대 아저씨께서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한 마디 툭 던지고 가셨다.


"쯧쯧쯧... 웬 중노동이여..."


 정말 내 맘이어서 눈물이 나려 했다. 당장 마음 같아서는 그 아저씨를 쫓아가서 감사의 절이라도 하고 싶었건만 그렇게 하면 슈퍼맨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질까 봐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집에 있는 날이면 일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아이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밥을 주고, 거실에서 잠깐 놀아 주었다가 오전 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깨어나면 좀 놀아주다가 오후 잠을 자고, 그 사이에 오전이나 오후에 한 번 아내가 직접 손으로 만든 유기농 이유식을 먹인다.  

 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저녁 식사를 하지 전에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 목욕을 시킨다. 

7월로 접어들면서 부쩍 날이 무덥고 습해졌기 때문에 하루에 꼭 한 번씩 씻기는 일이 중요해졌다. 보통은 저녁 시간이나 늦은 오후에 씻기는데, 그래야 밤에 잠도 오래 자서 좋은 것 같다. 


이 시기에는 되도록이면 좋은 날이면 집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많이 나갔다.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도 가고, 내가 안고서 조금 가파른 금오름 정상까지도 올라갔다 왔다. 

쌍둥이 아빠의 기본기 @쏠파파

 보통 금오름은 여자 혼자서 올라가도 땀이 비 오듯 하는 약간 난이도가 있는 오름인데, 나는 워낙에 자주 가기도 했고, 첫 애를 안고서도 유모차를 끌로 올라간 경험이 있었기에 쌍둥이 하나 안고 가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땀이 비 오듯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생후 6개월 기어 다니는 속도가 붙는 시기 D+180


 쌍둥이들의 속도가 붙으면 나도 더 바빠진다. 

 바야흐로 생후 6개월이 되는 시간이 오는구나. 절대로 올 것만 같지 않았던 6개월의 시간이었다. 

 처음 쌍둥이를 품에 안은 후 100일 동안 거의 좀비로 살다시피 하면서 속으로 '6개월만 견디어보자. 그러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힘든 시기를 이겨왔다. 그런데 막상 6개월이 되니 이게 웬걸? 별반 다른 게 거의 없었다. 한 가지 달라지 것이라고 한다면 밤에 확실히 쌍둥이들이 길게 잔다는 것. 그것 외에 더 힘들면 힘들었지 쉽지는 않았다. 


 덕분에 밤잠을 충분히 잘 수 있게 되어서 좀비에서 인간으로 탈바꿈했고, 처음 태어났을 때 보다 거의 3배에 가깝게 늘어난 몸무게의 쌍둥이를 등에 엎고 팔에 끼면서 나는 점점 인간에서 슈퍼맨이 되어가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난 신생아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기어 다니게 되고, 조금 발달이 빠른 녀석들은 기는 속도가 제법 빨라진다는 것이다. 6개월이 되자 발달이 조금 늦었던 선둥이도 양 팔과 뒷다리를 이용해 개구리처럼 흐느적거리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마치 학습한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또 빨라진다.

 또 6개월이 되면 한 번에 160ml를 거뜬히 먹고, 수유 텀도 3시간에서 3시간 반 간격으로 늘려준다. 그러면 아무래도 신생아 때보다는 한결 수월해져서 개인적인 시간이 약간은 생기게 되었다. 어차피 쌍둥이는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해봐야 며칠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오전 오후 낮잠 시간에 동시에 잠들어 있는 그 찰나가 전부이지만, 그래도 밤 10시를 전후해서 세 아이들이 전부 잠들고 나면 나는 비로소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 

 그러면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아이에게 가지는 감정과 생각들을 되돌아보고, 또 내 안에 쌓인 묵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블로그나 일기에 있는 그래도 쏟아버릴 수 있었다.(이런 행위가 산후우울증 극복? 뭐 그런 건가?) 어쨌든 그런 쏟아버림 혹은 비움이 없이는 미친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육아는 온전한 정신으로 지속해가기는 쉽지 않다. 

 매일을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군인과도 같다. 제대를 꿈꾸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제대를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인간이기를 넘어서 슈퍼맨과 슈퍼걸이 되어야 한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초능력자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 어린 시절에 가장 찬란하게 빛이 나는 슈퍼맨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슈퍼맨의 승리 @쏠파파 

 쌍둥이가 6개월이 지나자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큰 맘을 먹고 동쪽 끝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동쪽 끝이건 서쪽 끝이건 차를 타고 1시간 이상 간다는 것은 육지에서 서울에서 대전이나 대구를 가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제주도의 동쪽 끝, 특히 성산이나 표선 이런 쪽은 일 년에 겨우 한 두 번만 가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지만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다. 

 엄마와 아빠는 쌍둥이를 각자 하나씩 짊어메고 큰 딸아이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장장 3시간 반을 한 번도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막노동을 했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시간이 올까를 생각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따라서 오늘 보는 아이의 모습을 내일은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와 육아는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매 순간 아이가 더 빨리 어른이 되기 전에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놀아주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철학이다. 


 매일매일 아이가 가져다주는 찰나의 행복을 잊지 말고, 

 육체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 부부에게 부여된 양육과 사랑의 권리를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사랑하는 것도 권리이다. 아무도 남의 자식을 사랑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자기 자식을 사랑할 권리는 그 부모에게만 있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가 없거나 하찮은 일이 아니라 모든 1이 모여 백이 되고, 천이 되고, 만이 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쌓아가는 육아의 모든 행위들이 이 아이들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정신이 되어, 세상 속에 둘도 없는 보석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늘도 쌍둥이들의 똥 기저귀를 몇 번이나 치웠다.

(썅....... 냄새는 또 왜 이렇게 구린지) 




슈퍼맨이 되고 싶은 아빠 D+190

날마다 아이들이 자란다. 

그만큼 나도 자랐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함께 있었다. 

쌍둥이는 하루 종일 칭얼대는 날도 있었고, 이유 없이 우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쌍둥이는 처음 세상에 나와 내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기어가는 속도도 더 빨리지고, 종아리와 손가락의 힘도 더 세졌다. 덩치 큰 후둥이는 벌써 아랫 이빨이 두 개나 하얗게 올라와서는 무는 힘도 꽤 세져서 내 손가락이 아픈 날도 있었다.


잘 때만 천사 @ 쏠파파

하지만 불과 한 달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6개월 이전의 쌍둥이들을 보니 벌써 그립다. 

더 아기였을 때의 모습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벌써 아쉽고, 가슴 한편이 시린 것은 왜일까?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쌍둥이는 더 무거워지고, 힘도 더 세지고, 밥도 많이 먹고, 큰 딸처럼 더 활동력이 왕성해질 텐데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아내와 함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두려움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과 이유가 없는 근본적인 사랑이라는 개떡 같은 철학만이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지금껏 이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내가 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보다 훨씬 많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점점 슈퍼맨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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