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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Nov 05. 2020

육아의 휴일은 월요일

전쟁과 평화

 5살 된 큰 애를 부리나케 잠에서 깨워 옷장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옷들을 겹겹이 입힌 후, 어린이집 차에 겨우 태워서 보내고 나면 비로소 주말의 육아 전쟁이 끝이 나고 우리에게 월요일 휴일이 찾아온다. 나는 목사도 아닌데 왜 월요일에 휴일이 되었단 말인가. 

 주말 동안은 큰 딸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니 온전히 집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하루에도 "아빠~~"라는 말을 만 번은 더 들은 것 같다. 어린 쌍둥이 동생들에게 손이 많이 가서인지 자신의 관심이 빼앗겨 가는 것을 느껴서인지 큰 딸은 조그마한 반응에도 득달같이 내게 달려들어 아기처럼 칭얼거리고 우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에서 여러 종류의 동물로, 그리고 아주 자주 공룡으로 변신해야만 했다. 5살 아이와 주말 동안 온전히 놀아주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괜히 딸아이에게 처음부터 잘 놀아줬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주말은 어김없이 매주 찾아왔다.  

 주말은 육아 중 가장 힘든 평일이다. 그래서 주말을 견딘 월요일 아침 큰 딸을 태워간 저 어린이집 버스의 뒤태가 그렇게 가뿐하게 행복해 보일 줄이야. 주말 간 잠을 더 적게 잤지만 마음은 덜 피곤해서인지 집으로 올라오는 발걸음조차 가벼웠다. 

 그렇게 평일 동안은 한동안 큰 애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집안은 쌍둥이의 울음소리와 칭얼대는 소리로, 가끔은 정적 속에 사로잡힌다. 두 아이가 동시에 쌔근쌔근 잠이든 짧은 순간에 나는 세계 평화를 경험한다. 아 이런 것이 평화라는 것이구나 라고 말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결혼도 하지 않았던 나의 청춘시절, 고요하게 잠든 대학 캠퍼스의 늦은 노을을 바라보며 책 속에 파묻혀 프러시아와 나폴레옹의 프랑스 사이의 전쟁 속 젊은 귀족들의 삶을 상상하며 나의 미래는 어떨까 고민하던 그런 여유가 그리워서였다. 문학은 사회에 나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줄 알았는데, 육아의 전쟁 속에 잠깐 동안이었지만 생각의 평화를 가져다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주인공의 이름도, 내용도 정확하게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디에서건 그 책을 놓지 않고 몇 주간 탐독하던 나의 모습만큼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아이를 기르는 모든 순간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보다 지금의 나와 아내에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비밀 같은 진리이다. 

 오늘도 나는 다음 주 월요일이 어서 빨리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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