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즈 Nov 05. 2020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는 삶의 행복

 지난 10월 초순부터 쌍둥이의 밤중 수유를 끊었다. 한 밤 중에 잠에서 깨어나도 분유를 먹이지 않고 안고 달래서 다시 잠을 재웠다. 나 혼자서 둘을 그렇게 달래어 다시 재우는 일이 3일이 넘어가면 힘이 든다. 하지만 아내가 힘이 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힘이 드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큰 맘을 먹고 그렇게 했다.

 작은 녀석은 몇 번 칭얼거리다 곧장 잠이 들었지만 큰 녀석은 한 번 깼다 하면 최소 30분은 안아주어야 했다. 며칠 동안 잠을 거의 잘 못 잤지만 이제는 밤에 한 번 깨더라도 수유를 하지 않고 다시 잠에 들게 되었다. 생후 9개월째의 일이었다. 

 육아는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지 노력과 감정의 싸움이 아닌 것이다. 부모 자신이 아이로 인해 내면이 무너지면 육아의 전쟁에서 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쌍둥이 육아는 시간이 갈수록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큰 딸이 집안이 엉망진창이 만들어놓기 일쑤이다. 내가 아무리 깨끗하게 치우려 해도 딸이 5분만 왔다 갔다 하면 다시 난장판이 된다. 내가 이쪽에서 치우고 있으면, 어느새 녀석은 저쪽에 가서 책이며 장난감이며, 옷가지나 이불 따위를 마구잡이고 꺼내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럴 때는 나는 치우고 정리하는 뻘짓을 집어치우고 그냥 웃으며 함께 논다. 그게 심신에 도움이 많이 된다.


 늦은 주말 오후의 시간, 며칠간 쌍둥이 수유를 끊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후 5시쯤에 큰 딸을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이호테우 해변으로 모래놀이를 하러 갔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참으로 자유롭다. 따뜻한 부모의 시선 안에서 마음껏 뒹구는 어린아이의 정신에 깃든 저 자유가 바로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이국적인 목마 등대를 병풍 삼아 물이 저만치 물러나갔고,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해변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파도를 타며 자유를 찾는 서퍼들의 모습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는 붉은빛을 발하며 점차 저물어 갔고, 딸아이는 모래사장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부쉬고 뒹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 앉아서 향이 좋은 드립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자유롭게 놀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마음속에서 잔잔한 평화가 이호테우 바다의 밀물처럼 천천히 밀려들었다.


 많은 것을 내 인생에 가져다준 제주의 삶, 이 속에서 나는 생명들이 조금씩 자라나는 과정과 활기찬 웃음을 바라보고 있다. 매일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서리치고 있는 평범한 아빠가 되어 가고 있으며, 새로운 길과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제주에 바다가 있고, 오름이 있고, 따뜻한 기운이 있어서 행복한 삶인 것이 아니라 여기 이곳에 사랑하는 동반자와 내 작고 따스한 품에 달려와 안기는 딸과 온종일 엄마 아빠만 쫓아다니는 9개월 쌍둥이가 함께이기에 제주에서의 삶은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함에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의 휴일은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