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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Sep 29. 2021

인생 150일차 쌍둥이 성장 일기

너희들이 크는만큼 우리들은 늙어

 이 글은 나와 우리 가족, 특히나 이란성 남자 쌍둥이 육아에 대한 나의 기록이자 육아 철학이며, 현실적인 육아의 현장이다.


(이번 글은 작년에 태어난 쌍둥이들이 생후 150일이 된 시점을 기준으로 쓴 글입니다.)



 평생을 따라다닐 백일 기념 촬영 현장 D+100

 

 2020년 5월1일은 정확하게 쌍둥이가 세상에 나이를 먹은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날이 좋은 하루를 골라 평생을 따라다닐 백일 사진을 남겼다. 

 아기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지 다시 한 번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결과물이었다.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한없이 연약하고 조그마한 생명이었는데 3달 남짓한 시간동안 팔과 다리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우람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또 얼마나 빨리 자랄 것인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100일 기념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간 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다. 

 그 동안 바깥 출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과하고 젖병이며, 기저귀를 바리바리 챙겨들고, 새로 장착한 카시트에 둥이를 앉히고서야 길을 나섰기 때문이었다.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봄의 기운이 한껏 대지와 대기를 뒤덮어서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녀석의 컨디션은 좋기만 했다. 


 시작과 동시에 옷을 갈아입고?(실은 입은 옷을 벗은 것이지만)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막내가 줄곧 잘 웃곧 했는지 그날따라 큰 애가 더욱 활짝 웃었다. 덕분에 1시간도 안되서 둘의 촬영이 끝나고 결과물도 아주 좋았다. 


 생각해보니 나의 백일 사진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예전 시절에야 이렇게 디지털 사진기가 없어서 전부 필름으로 보관해서 현상하지 않으면 나중에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내 백일 사진을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찌됐든 백일 사진을 받아보니 찍어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집에서도 시간이 날때마다 셀프로 100 사진을 찍었는데,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만 못했다. 그래도 집에서 셀프 촬영의 좋은 점은 내 마음대로 옷을 입힐 수 있고, 충분한 시간에 컨디션이 좋을 때 찍을 수 있어서 얼굴 표정만큼은 아주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을 보다보면서 느낀 건데 큰 아들은 나를 확실히 닮았고, 작은 녀석은 엄마를 꼭 빼닮았다. 점점 자랄수록 이목구비가 더 닮아가는 것 같다. 

 어찌됐든100일 만에 몸무게는 두 배 이상 자랐고, 키도 많이 자랐다.

 



몸에 타이어를 두른 우람함@쏠파파



        바깥 나들이를 시작해 보았어요 D+110


 여전히 밤에는 수시로 일어나 수유를 한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하는게 아니라 아내가 하는 것이지만...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꼭 내가 수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하지만 수유텀이 길어져서 밤에 조금 수월해지기는 했다지만 여전히 잠이 부족하다. 아기 침대를 쓰면서 둘이 따로 재우는데 그래야 서로 움직이면서 부딪히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거나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부부 중 누구 하나라도 밤에 더 많이 자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둘 사이를 띄어놓았다. 


 5월의 제주바다는 여전히 찬 기운이 가득했다. 하지만 바다는 푸르르고 시원해서 사람들은 그 바다의 그르릉거리는 파도소리와 시선을 맑게 해주는 청량감을 보기 위해 간간히 이 바다를 찾아오나보다. 

 아직은 여전히 차가운 바람에 행여나 감기가 걸리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어 두꺼운 내복에 우주복까지 입혀서 처음으로 쌍둥이를 데리고 집 가까운 5월의 바다를 보러 갔다 왔다. 유모차에 바람막이까지 씌우고 우주복을 입고 있으니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있는 듯 곤히 잠이 든 둥이들을 우리 부부는 지긋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또 한 주가 흘러 봄의 수국을 만끽하러 휴애리에 갔다. 아이 셋을, 그것도 신생아 쌍둥이를 데리고 바깥 나들이 하는 일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집에 있을 껄 하는 생각이 한 두번만 들었겠나?  차를 타고 40~50분 가는 사이에도 신생아들은 아기카시트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몸으로 느껴지는 흔들거림 때문인지 울기도하고, 불편해하는 모습에 계속 속으로 집에 있을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휴애리 안에서도 수시로 깨어나 울어대는 녀석들을 어루고 달래고 수유를 하면서 수국 구경은 고사하고,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지만 신나게 뛰어다니는 첫 애를 위해서라도 충분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지금이야 힘이 들지 몰라도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먹고, 자고, 씻기다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또 자라 있었다.

신생아는 자고 깨면 또 자라있다.


 나의 인식의 속도가 아기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5월이 지나면서 날이 따스해지고 바람도 가끔은 훈풍이 불어주어 나들이하기에는 참 좋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밖에 나가는 날보다는 여전히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다. 육아의 정답은 없다. 다만 지침이 있을 뿐이지.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시간은 참으로 잘도 흘러갔다. 


 5월 중순께에 육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찾아오셔서 둥이들을 보고 가셨다. 

자식의 자식을 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것도 두 세대를 지나면서도 자신의 외모를 쏙 빼닮은 유전자의 흔적과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어린 신생아에 대한 아련한 사랑과 귀여움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겠지.


 어찌되었든 아기는 단지 부부만의 행복이 아니라 두 세대, 혹은 살아만 있다면 세 세대의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노인들의 말로의 삶이 조금이나마 다시 빛을 발하고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신비한 불로장생의 명약도 바로 이 아이들이라는 것도.





바다가 일상이 된 삶 D+120~130 뒤집기 시작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너무 반복적이고 무료해지기 시작하면 으레 집 가까운 바다를 찾곤 한다. 

바다에 답이 있으므로. 120일이 넘어가니 먼저 작은 녀석이 뒤집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둘 중에 후둥이가 발달이 훨씬 더 좋아보인다.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가고 신체 발달이나 활동이 더 왕성하기 때문이다. 뒤집기가 어떻게 보면 신생아에게 있어서 첫 걸음마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뒤집기가 되면 그 다음은 기어다닐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곧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이호테우 바닷가가 우리 가족에게는 휴식처와 같은 곳이다. 집에서도 가깝고 사람이 어느 정도 적당히 있으며, 또 올해 초에 모래사장 끝자락에 깔끔한 나무 데크를 만들어 놓아서 이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잔잔히 물결치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친 마음과 육체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6개월이 되기 전까지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자연과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켜 아이들의 시각이 열림과 동시에 뇌의 자극을 키워주려고 한다. 대신 야외로 다닐 때는 아이들의 몸이 차갑지 않도록 최대한 따뜻하게 옷을 입혀서 나갔다. 

 부모의 따뜻한 손길과 보살핌, 그리고 부드러운 입맞춤에 기반해 변화무쌍한 주변 환경에 다양한 세상과 존재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아이들도 인지함이 분명하다. 100일이 지나면서 흐려졌던 시력이 점점 또렷하게 자리잡고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단계도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기가 되면 한 번 수유할 때 120~140mm까지 먹는다. 이 시기쯤 되니 자신의 손가락이나 주먹, 일명 '주먹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기도 더 자주 운다. 쌍둥이의 운명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애정결핍증이 아닐까 싶다. 하나를 신경써서 안아주면 또 다른 녀석이 왜 자기는 안 안아주느냐는 식으로 쳐다보다가 곧바로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것이다. 수유를 하거나, 몸을 씻기거나, 놀아줄때나 옷을 입힐 때나 항상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항상 두 아이가 동시에 울때면 누구를 먼저 안아 줘야하나하고 고민에 빠지고 만다. 




쪽쪽이가 필요하다구 D+140


 140일이 되자 밤에 자는 시간이 조금 더 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을 충분히 잔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 시기가 되니 아기는 자연스럽게 잠이 오면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이때 손가락을 빨거나 쪽쪽이를 찾게 되는 시기가 오는데 이것도 역시 후둥이 녀석이 빠르다.

   

 문제는 이 때 시작된 '손가락 빨기'나 쪽쪽이 습관이 유아기까지 이어져 큰 딸 애처럼 43개월이 다 되도록 잠이 올때면 여지없이 손가락이 입으로 간다는 것인데, 둥이들이 큰 딸처럼 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시기에 손가락 빨기를 금지시킬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결혼 전, 나는 자유를 사랑하고, 바람처럼 세상을 유랑하던 영혼이었다. 비록 지금 내게 그러한 자유는 없지만 대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얻었다. 그 자유와 이 사랑을 비교해 본다면 무엇이 내 인생에 더 크게 다가 올 것인가?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이 사랑을 얻기위해 젊은날의 그 자유가 필요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게는 이 사랑이면 되었다. 




이유식을 시작할 시기 D+150


 150일이 되면 신생아들이 이유식을 할 시기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하면 내가 밥을 먹고 있거나 입으로 뭔가를 가져갈 때 아이들은 나의 입술과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입으로 자꾸만 뭔가를 가져간다. 이는 이제 새로운 음식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지금은 잇몸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유치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처음 이유식은 아무간도 되어 있지 않은 쌀을 잘 갈은 미음으로 시작한다. 

시중에 파는 이유식도 좋은 것들이 많지만 애 엄마는 언제나 정성으로 유기농 쌀을 직접 사서 쌀을 불리고 끓이고 갈아 미음을 만들어 내었다.

  

  

 처음에는 흰쌀 미음으로 20~30mm부터 시작한다. 부드러운 이유식 숟가락으로 먹이는 개념이 아니라 숟가락을 씹는 느낌으로 한 숟갈씩 천천히 입으로 물고 놀게 해준다. 

 이게 말이 쉽지 첨에는 참으로 어려웠다. 신생아는 계속 액체로 된 음식물을 삼키다가 이렇게 조금 더 고형식에 가까운 음식물을 입으로 넣고 삼킨다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삼키는 것을 처음으로 배우는 단계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허리에 힘은 없지만 범버 의자에 앉혀서 가제 수건을 턱에 받치고 조심스럽게 먹였는데 거의 절반 이상을 흘리고 만다.  그러다 조금씩 양을 늘려가면서 하루에 한 번 정도로만 이유식을 했다. 

일주일 정도지나고 나서 이제는 푸른 채소나 강하지 않은 향으로 된 재료를 사용해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는데, 처음보다 분명 양도 늘고 또 삼키는 것도 잘 하게 되었다.


 그리고 150일이 지나서는 본격적으로 바깥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의 오감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시선에 보이는 다양한 환경과 조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신체접촉의 감각을 발달시키고자 잔디나 모래사장을 밟게 했다. 


 큰 녀석은 벌써부터 허벅지에 힘이 어찌나 좋은지 내가 조금만 잡아주면 혼자서 곧잘 일어서서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마도 다른 또래에 비해서는 더 빨리 걸을 것 같다.  풀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맨발로 비에 축축히 젖은 풀밭도 걸어보았다. 


 아침에 1시간 낮에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꾸준히 잠을 잔다. 

그리고 저녁7시쯤 씻기고나서  9시 전후로 마지막 수유를 끝내고 나면 이내 둘 중 하나를 골아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12시에서 1시쯤 깨서 한번 더 먹고 잠이 든다.

 어떤 날은 다음날 새벽 5~6시까지 한 번도 안 깰때도 있는데 큰 녀석은 아직까지 새벽에 꼭  두 세번씩 일어나 수유를 하거나 울면서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든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서로 돌아가며 밤에 보초를 서며 쌍둥이를 돌봤다. 이 고통의 시간이 과연 언제쯤 끝이 날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생각에 힘을 내어 육아를 해 본다.  

 

 나는 더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이 아이들과 더 뜨겁게 살아가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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