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때문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 밤에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작년 여름 6월의 어느 주말의 일이었다. 큰 딸아이는 6살의 중반, 쌍둥이는 18개월에 딱 접어들었을 시기였다.
아침부터 한 번도 쉬지 못한 채 쌍둥이를 늦은 오후에야 겨우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거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갑자기 이유 없이 터져버린 오열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소리 없이 흐느껴 울면서 그릇을 씻는 소리가 나의 울음소리라 여기며 한참을 그렇게 세면대의 물을 틀어 놓은 채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목놓아 흐느껴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갑자기 모든 것이 후회가 되고 또 서럽고 답답한 심정과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고, 질타와 타박과 욕을 들으며 자라왔을 아내의 내면 속 어린아이의 괴로워 울고 있는 영혼의 아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 또 육아 때문에 아내와의 꽉 꼬여버린 관계와 대화의 실타래 속에서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었지만 거실에서 심심함을 견디다 못해 유튜브 속 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사랑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실한 자신의 이면을 발견해 나가는 치료제이자 독이다.'
쌍둥이가 태어난 시점부터 시작된 육아휴직과 퇴직으로 나는 지금까지 거의 2년의 시간 동안 온전히 아내와 함께 세 아이를 키웠다. 체력적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더 강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가 세 아이의 육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 부부 중 부모님이 도울 수 없음을 알기에 오롯이 우리 부부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3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출장으로 인해 1년 중 거의 반 정도를 해외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큰 아이를 아내 혼자서 키우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육아휴직을 한 만큼 쌍둥이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키워보자는 마음이 합쳐져 지금의 시간까지 오게 된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고 처음 1년 동안은 밤에 연속으로 자본적이 거의 없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번아웃 상태가 되었고, 두 사람 모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육체적인 고갈 상태에 다다르면 사람은 정신이 따라서 피폐해진다. 정신이 피폐해지면 이런 괴로운 상황의 원인과 이유를 찾아서 그것에 온갖 욕설과 이유를 갖다 붙이며 화풀이 대상으로 삼게 된다. 그게 부부 관계 안에서 상대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나도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갑자기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져 절망감과 괴로움 속에 빠져 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갑자기 아이들이 한없이 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나 세 아이가 오손도손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행복해지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원래부터 철학과 수리적 사고를 가진 이성적인 남성이었지만 육아를 하는 남자가 되어보니 그런 나의 이성적인 모습이 긴 시간 동안 잘 이어지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쌍둥이가 거실을 뛰어다니면서 TV 서랍장을 열어 그 안에 잘 정리해 두었던 공과금 서류, 집 계약서, 각종 전자제품 설명서, 보험 증서 같은 것들을 전부 다 끄집어내서 둘이서 참으로 오손도손 한 모습으로 그것들을 어지럽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불 같이 화를 내는 내 모습에 갑자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실상은 어쩌면 내가 화를 낼 상황을 안 만들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할 때 아내가 사들인 귀한 영국 브랜드 덴비 그릇 세트가 있었는데, 한참 다른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있는데 쌍둥이가 의자를 밟고 식탁을 거쳐 싱크대로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해 처음에는 작은 접시부터 하나씩 깨더니 이제는 밥공기, 국그릇, 큰 그릇을 가리지 않고 바닥으로 내던지는 바람에 집안에 식기들이 남아나질 않게 되었다. (유럽에서 내가 사들인 멋진 폴란드 찻잔 세트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는 쌍둥이가 식탁에 올라가는 순간마다 불같이 화를 낼 수밖에 없었고, 궁극에는 의자가 없는 식탁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감정선에 나 역시도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성의 줄을 잡고 살았다고 자부한 나 조차도 분명 육아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고통과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먹고 아이의 아빠나 엄마는 조금씩 부모가 되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