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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5. 2022

양화진에서의 생각

루소의 에밀, 그리고 선교사들의 무덤

자신의 언어에 힘을 가지려면,
 그 언어를 떠받치는 삶과 행동이 올바르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과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서로 너무 가까이 겹쳐 있을 때에는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모든 혐오감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죽음.'이라고 루소가 말했다. 여기 서울의 한 복판 양화진의 무덤 속 외국인 선교사들의 죽음은 이토록 평화롭고도 고귀롭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결국 이곳에서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짧은 한 문장으로 축약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몇 년 전, 해가 지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과 시원과 바람이 고요한 양화진 묘역의 적막을 일깨우며 잠들어 있던 나의 영혼의 무덤을 일으켰다.


 죽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삶을 살았던 자들을 보고 왜 그리도 가슴이 뛰고 부끄러웠는지 몰랐다.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에도 이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희미한 미래를 그리면서도 돌아가도 따뜻함이 없었던 독방이 싫어서였을까 해가 지고 시간이 늦도록 나는 계속 걷고만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물론 희미했던 미래는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졌고, 따뜻한 온기로 나를 품어주는 가정도 생겼지만 여전히 끝이 나지 않은 여행처럼 나는 계속 걷고만 싶었다.


 잠시 빈 벤치에 앉아서 루소의 <에밀>을 읽으며 딸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상상해 보았다.


 그러므로 머리의 외형은 산파들이 만들고, 내부는 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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