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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May 28. 2024

고요 속 외침, 만리장성 대첩

만리장성 인파 속 일방통행

중국 베이징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과, 10월의 국경절에는 유명 관광지를 피해야 하는 것쯤을 알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관광을 오기 때문에 티켓 판매를 제한하기도 하고, 목적된 관광이 아니라 사람 관광만 하다가 지쳐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첫 중국 국경절 때 천안문 근처에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 사람들한테 깔릴뻔한 경험을 했어서, 그 뒤로는 그런 긴 연휴에는 베이징 밖 여행을 떠나거나 차라리 집에 있는 걸 선택하곤 했다. 물론 우리에게는 긴 코로나로 꿈같은 여행에는 많은 제한이 있었다.


중국에서 터진 코로나로 몇 년 전에 중국 비자 발급 비용을 고스란히 공중으로 날려버린 동생네 가족은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만나러 베이징에 방문했다. 중국의 위드 코로나 선언과 동시에, 동생네 가족에게는 언니네와 베이징에서 여행하는 꿈같은 기회였기에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유니버셜 스튜디오 베이징과 사람이 없을 만한 소소한 관광지만을 가기로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단 2시간 만의 비행길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서 하늘길이 막혀 만날 수 없었던 이산가족이 되어 마음 졸였던 기간들을 회복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동생네 가족을 위해서 우리가 가봤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 맛있었던 곳 등을 찾아서 동생네와 여행을 시작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여행 다니는 우리와 달리, 동생네는 식당과 장소 등 메뉴까지 정해놓고 놀러 다니는 부지런한 계획파라는 걸 알기에 열심히 준비했고, 최대한 동생네 가족한테 맞추며 놀고 온 저녁에는 다음 날 계획을 짜며 수정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베이징 여행이 재미있다며, 먹거리도 다행히 입에 잘 맞았던 동생네 가족은 며칠 여행 다녀보더니 이 정도 사람 붐비는 건 참을만하다며, 1곳이라도 중국의 대표 유명 관광지를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너희 자신 있어? 너희가 상상하는 그 인파가 아닐 수도 있어." 아무 소리 않고 가보겠다는 다짐을 받고, 우리는 일정에 만리장성을 끼워 넣었다. 우리가 등산 삼아 주로 가던 거용관 장성이나 수장성이 아닌, 베이징으로 여행을 오면 주로 가는 만리장성인 팔달령(빠다링창청)과 모전욕장성(무티엔위장청) 중에 고민하다가, 모전욕장성을 가기로 했다.



주차부터 티켓팅까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지만, 긴 휴가 때 이 정도쯤이야 오랜만에 만난 자매들끼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고, 아들도 조카들과의 장난이 애틋했던지라 줄을 오래 서서 기다리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 현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좋아했기에 준비를 한 입장에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두 가족은 곳곳에 보이는 만리장성의 사진을 찍으며 하차했고, 사람들을 피해서 단체 사진도 찍어가며, 진정한 만리장성을 밟아가며 중국 여행에 흠뻑 취해있었다.


저 멀리 군데군데 보이는 인파의 행렬은 애써 보지 않으며, 조금만 걷고 사진만 찍다가 내려가기로 했지만, 걷다 보니 걸을만하고,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중국을 오겠냐며 아이들과 함께 만리장성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 때, 내려갈 시간과 차가 밀릴 것도 예상해야 했고, 다음 날 일정이 있으니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껏 걸어온 만리장성의 길을 내려가는 길은 꽤 험난해 보였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올라올 때는 그래도 사람들 간의 간격이 꽤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 멀리 여행 단체객의 깃발들이 계속 몰려왔고, 만리장성을 향해서 올라오는 여행객들이 꽤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우리처럼 일찍 올라와서 되돌아가는 사람의 수도 많아지며 갑자기 시장통이 되었다.

Photo by Mollie

그래도 중간중간 성문마다 보안들이 질서를 잡아주었고,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높은 만리장성이었기에 중국인들도 나름 줄을 서서, 왼쪽 길은 만리장성으로 올라가는 사람, 또 오른쪽길은 반대로 내려가는 사람 이렇게 두 방향으로 줄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 급한 중국인들과 용무가 급한 사람들은 줄을 무시하고 그 좁은 성문을 비집고 가거나, 기다리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앞질러 가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이를 보다 못한 사람들은 한두 번씩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아예 그 무리의 군기반장 노릇을 하며 통제를 자처한 일반 여행객도 있었다.


우리도 저 뒤에서 움직이지 않는 줄 틈에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언젠가는 내려가겠지라며 기다리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조카는 만리장성을 오를 때부터 아들을 졸졸 쫓아다녔고, 키 큰 중국 사람들한테 둘러싸이자 조카는 아들한테 많이 의지를 했다. 중간에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자, 갑자기 무섭다며 울기도 했고, 온통 들리지 않는 외계어에 마음이 좀 약해져 있었다. 줄에서 잘 기다리던 조카가 갑자기 한 마디를 했다.


"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 아까부터 참았는데 급해." 아뿔싸! 화장실을 지금 가려면 까마득하다. 처음에 우리가 왔던 길까지 가야 했고,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한참을 올라온 상태였다. 생리적인 신호까지 찾아와서 잔뜩 긴장한 조카를 위해 아들이 자처해서 조카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들은 저 위에 문까지만 가면 보안이 있을 테고, 그 사람한테 "아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라며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청소년과 어린이는 손을 잡고 우리의 그룹에서 떠나 저 멀리 점점 작아져가는 등을 보이며 잘 가나 싶었다. 줄에서 지친 우리도 아들만 믿고, 둘의 존재를 잠시 잊은 채, 점심으로 뭘 먹을지 검색하고, 차가 밀리는지 지도 어플을 보며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귀에 쩌렁쩌렁한 화가 잔뜩 나보이는 중국인의 목소리가 감지되기 전까지 말이다. 

Photo by Mollie

"뭐야, 무슨 일이야?" 우리는 아래쪽에 있었기에 오르막길을 보는데, 한참 앞에 어떤 중국 남자 어른이 끊이지 않는 호통을 치고 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5미터 정도 떨어진 쪽에 두 아이가 혼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그 자리에 얼음처럼 얼어버린 두 아이가 있었다. 혼난다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지속적인 분노 표출을 온몸에 맞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보니, 보안을 만나러 간다고 했던 우리 아이들이었다. 그 남자 어른의 목소리에 당황해서 그 앞에서 순간 얼음이 되어서 움직이지 못한 채, 이 상황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우리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상식 밖으로 계속되는 소란과 삿대질과 호통 소리에 갑자기 내 피가 거꾸로 쏟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그 현장을 향해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너희들 뭐 해! 그냥 돌아와! 왜 거기서 계속 저 소리를 듣고 있어! 그냥 오라고!" 아이들은 더 큰 호통소리를 면전에서 맞고 있었기에 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더 있는 힘껏 아저씨를 향해서 소리쳤다. 부끄럽지만 한국말로 말이다. "당신!! 그만 소리 질러요!!! 당신이 뭔데 계속 소리를 질러! 당신 뒤에 계속 새치기해서 지나가는 어른들한테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말 못 하는 애들한테 왜 계속 뭐라고 하는 거야!!! 너만 소리 지를 줄 아냐!!!!??" 


만리장성에서 울려 퍼지는 그들에게는 외계어인 나의 한국말 샤우팅에 일제히 조용해졌고, 그 아저씨는 저 아래쪽에서 피라미 같은 외국인의 고함 소리가 들리자, 그때서야 발악을 멈추기 시작했다. "내려오라고! 그냥 돌아와!" 아이들도 그때 나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 파악을 하고 서둘러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했던 그 아저씨는 자기보다 더 강한 듯한 무식하지만 용감한 한국 아줌마의 눈치를 보며 "줄 서세요.(파이뚜에이)" 소리의 데시벨이 현저히 작아졌다. 돌아온 조카는 화장실을 가기는커녕 2차 울음이 터지며, 내려와서 화장실을 가기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 아저씨의 눈에는 모든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이미 눈엣가시였을 거다. 그 어떤 중국 사람들조차 그 사람의 "줄을 서세요.(파이뚜에이)"라는 외침에 고분고분히 눈치를 보며, 뒤로 나가는 대신에 다들 좁은 틈을 비집고 앞으로 가며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며 나름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넘어서서 새치기를 한 거도 아니고, 뒤로 가라고 하는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갈 길을 간 상황도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외로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꼬맹이들이 맹랑해 보였을 테고, 딱 봐도 말 한마디 못하는 외국인이니 더 아마 뭐라고 소리를 지른 것 같다.


그 아저씨 역시 아이들의 입장을 모르고, 그 아저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들과 조카는 석고상처럼 굳어있었지만, 계속되는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겁을 준 것은 20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멀리 있는 우리가 볼 때는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중국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중국인을 향해서 소리를 지른 적도 없었는데,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아들과 조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또 잘못하면 조카카 바지에 실수나 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고 다급한 마음에,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나도 어찌 보면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했지만, 그 뒤로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데시벨이 상당히 작아진 부드러운 그의 말투에 속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목소리가 크다고 무조건 이긴다고 누가 그랬을까. 한국 아줌마의 매운맛을 아직 못 봤나 보다. 우리 줄의 앞의 중국인 커플도 나의 큰 목소리 뒤에, 살짝 눈치를 보는 듯 최대한 앞 뒤 간격에 신경 쓰는 듯한 눈치가 보였고, 나는 다시 순한 양으로 돌아와서, 그들에게 괜찮다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 있던 줄에서 대기를 하며 그 험한 만리장성을 성공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중국이 여자가 센 나라였기에 중국 아저씨가 일찍 꼬리를 내린 것 같기도 하고, 그 뒤로 우리는 만리장성을 떠올릴 때마다, "만리장성 대첩"이라고 우리끼리 부른다.


사람 많을 때는 피하는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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