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1세대, 남편은 백수 그리고 나는 무경력자
우리는 미국 이민자 1세대다.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비장의 무기처럼 여겨졌던, Green Card라 불리는 영주권을 손에 쥐고 미국에 들어왔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힘을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 6개월 안에는 어디든 취업이 될 거라 믿었던 남편의 예상과 달리,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는 번번이 거절되고, 인터뷰도 연이어 낙방했다.
메일함에 쌓여가는 거절 메일의 수가 늘어날수록, 마음 한편에 쌓이는 무거움과 초조함도 함께 커져만 갔다. 하루에도 몇 통씩 “We regret to inform you…”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탈락 메일들을 읽으면서, 점점 나 자신에게도, 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따라왔다.
외식은커녕, 종류별로 사야 할 품목이 다른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집에서 밥만 해 먹고 살 뿐이었지만, 렌트비와 높은 생활비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온 돈은 점점 바닥을 보였고, 통장은 그야말로 텅 비어갔다.
집안일이라도 도울 줄 알았던 남편은 하루 종일 취업 준비를 한다며 방구석에 처박혀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아이 라이딩과 나를 위한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전부였다. 결혼 후 신혼 때도 경험하지 못한, 하루 종일 이 좁은 집에서 붙어 있는 시간이 몇 달째 지속될수록 우리 둘 다 점점 숨 막히고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아, 그리고 매일같이 남편은 나를 다급하게 부르며 통장 잔고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읊어댔다.
"이거 봐, 우리 돈이 지금 이만큼인데 이제 버틸 날이 얼마 안 남았어."
“이건 왜 샀지?”
“이거 없어도 요리할 수 있잖아.”
“이거 없어도 살 수 있잖아.”
“이제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달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지출이 늘어날수록 남편은 점점 불안과 초조가 쌓여갔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같이 장을 보러 가면 내가 마늘 하나, 야채 하나 사는 것까지 따라다니며 제지하고 잔소리를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지만, 가정에 수입이 끊기자 생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고, 이러다간 내가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그 역시 백수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직서를 내고 온 뒤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이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초기에 정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
이민자가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라도 찾아서 해보는 게 어때?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용돈도 벌고, 좋잖아.”
수없이 말했지만, 결국 소 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다.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 온 그는 그 삶을 내려놓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남편과 성격이 다른, 은근한 대장부 스타일인 나는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집을 뛰쳐나오기로 결심했다.
원래 이민을 생각하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해보자”는 마음을 품고 한국을 떠났다.
전업주부 거의 20년 차, 무경력자인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말이다.
몸은 비록 여기저기 삐걱거렸지만, 눈치와 싹싹함으로 무장한 40대 아줌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남편과 볼일을 보러 나올 때마다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카페, 베이커리, 식당, 마트, 푸드코트, 피자 가게, 패스트푸드점, 청소, 아이케어까지…
이민자로서 큰 영어 없이도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골라 사전답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가게 앞 “Hiring” 표시를 보고, 이런 식으로도 구인 광고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를 타고 주변을 돌며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괜히 들어가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인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가 과연 저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Drive Through가 있는 곳은 말을 잘 못 알아들을까 걱정됐고, 너무 작은 규모도 부담스러웠다. 주문 전화를 받아야 하는 곳은 도로이름과 상대의 이름 같은 걸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일찌감치 생각을 접었다. 당시 차가 한 대뿐이어서,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일할 만한 곳은 어디일까.
자주 가는 곳이면 더 좋겠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바로, 집 근처 마트 주차장 근처의 Hiring 광고였다.
시급과 Hiring 표지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남편을 주차장에 두고,
“나 잠깐 들어가서 물어보고 올게.” 하며 냅다 마트 안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나는 40대 무경력 전업주부지만, 눈치와 성실함을 무기로 아메리칸 슈퍼마켓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시작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영어는 서툴지만, 삶의 경험과 끈기로 버티며 살아가는 나의 아메리카 슈퍼우먼 생활, 나의 여정을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이제 막 시작이다.
대문사진 출처 : Unsplash, Jon Champaig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