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요.
주차장 한편에 세워져 있던 시급이 쓰여있는 Hiring 구인 광고를 보고 무작정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내가 이곳에서 일해야 할 이유는 단 하나.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는 출퇴근을 부탁하고, 차후 걸어가야 한다면 왕복 1시간이 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제든 걸어서라도 출퇴근이 가능한 곳이었다.
주변의 핫도그집, 피자가게, 음식점, 잡화점과 달리 영업도 필요 없고, 고객으로부터의 전화나 주문 오류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어 보였다. 또, 내가 식료품을 사러 자주 가는 곳이니 뭔가 친근했다. 물건을 사는 고객으로 갈 때의 편한 마음과 다르게, 나는 계산대 근처에서 말걸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가해 보이는 셀프체크아웃 직원에게 다가가서 "주차장에 구인 광고를 보고 왔는데,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요?"라고 하자, 그녀 역시 물어물어 매니저를 호출했다.
저 멀리 말끔한 미국 남자가 걸어오며, 누군가를 찾으며 뻘쭘하게 서있는 내게 다가왔다. 순간 내 심장이 요동치고 너무 떨려서 여기서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 잊고 있었다. 여긴 미국이지? 미국 슈퍼마켓이었다.
"무슨 일이죠?"
"저 밖에 Hiring 광고를 보고 왔는데요.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우리는 밤에 야간 근무를 할 사람과 주말 근무자만 찾고 있어요."
아, 야간,,, 주말,,, 그랬다. 남들이 일하기 싫은 시간과 요일에만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무리 집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으로 돈을 벌고자 나오긴 했지만, 야간과 주말 이야기에 좀 망설여졌다. 눈빛은 반짝였지만 다소 싱거운 이민자를 본 그 남자는 다른 공고들을 기다려보라는 식으로 둘려대고 인사 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한 번 부딪쳐보고 나니 "내 영어가 통하네? 내 말에 대답을 해주네?" 신기하다는 생각과 자신감도 생겨났다. 당시에 내가 스트레스로 돌발성 난청이 온터라 한쪽 귀가 약간 물에 잠긴 것처럼 먹먹해서 공포에 질려있을 때이기도 했다. 마트에 들어가는 순간과 주변에서 울리는 소리가 평상시와 다르게 들려서 손가락을 귀에 넣었다 뺐다 하며 "그래, 이 스트레스를 견디려면 내가 빨리 나와서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채용에 도움을 주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뭘 적다가 개인 정보가 유출이 되었는지 한동안 엄청난 스캠 전화와 문자에 시달렸다. 더 마음을 다잡고, 마트를 중심으로 채용공고를 검색하며 혹시 차가 필요하면 Uber를 타고라도 어느 정도 갈 만한 거리까지는 검색을 해보았다.
하지만, 어려웠던 점은 누구나 무경력자여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슈퍼마켓이었지만, 나는 채용공고에 나오는 Job Description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복리후생인 Benefits에 나오는 Paid Time Off(유급 휴가), Paid sick time(유급 병가), General Merchandise(매장 상품 진열 및 관리) 그리고 시급에 관한 용어 Srarting hourly rate 등 한 페이지의 공고를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분명 아는 단어인데 조합이 안 되거나, 내가 생각하던 단어와는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당찬 행동력 뒤에는 소심함이 늘 존재했고, 혹시나 연락 오면 진짜 가서 할 수 있는 곳에만 지원하고 싶어 아무 데나 지원하지 않았다. 집 앞 마트 외에 다른 곳에 또 온라인으로 지원을 해보았다. 20년 만에 써보는 내 이력서에는 이력이란 게 있지 않았다. 전업주부였던 내가 할 줄 아는 건 엄마와 아내로서 해왔던 집밥 요리와 집안일들, 결혼 전에 잠깐 했던 일과 아르바이트들을 나열했다. 그나마 중국 해외 생활 동안의 해외 생활을 통해 어디서든 잘 어울리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며 밝고 적응을 잘한다는 것을 어필했다. 실제로 집순이였지만, 내놓을 경력조차 없는 이제 갓 온 이민온 이방인인 나는 없는 사회성을 만들고, 책임감과 성실함을 강조했다.
얼마 후, 눈여겨보던 집 앞 슈퍼마켓을 또 드나들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은 입구에 파티 테이블처럼 캔디, 그리고 종이와 펜이 있길래, 지나치지 않고 잠깐 걸음을 멈추어 살펴보았다.
오! Hiring 광고였다. 직접 인터뷰 사인업도 하네?
Sign up for an Interview!(인터뷰를 신청하세요.)
Departments Hiring: Front End / Deli / Produce / Bakery 등.
기쁨도 잠시 Front End는 뭐지. 앞 뒤?
Produce는 또 뭐야, 생산?
1번에 누군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고, 이에 질세라 떨리는 손을 잡고 2번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왔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은 이미 나의 정보를 적고야 말았다.
혹시 모를 출근 준비를 위해 더 이상은 운전을 피할 수 없어, 옆에 남편을 앉혀놓고 내가 찍어 놓은 슈퍼마켓들로 운전 연습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 중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스캠인 줄 알고 안 받으려다가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게 생각이 났다.
"여보세요. 여기 xx 슈퍼마켓인데요. 당신이 Mollie인가요?"
"네, 맞는데요."
"여기 xx 마트인데요. 지금 Cashier(계산원)를 뽑고 있는데 혹시 인터뷰 보러 올래요?"
"어머, 정말요? 네, 당연하죠. 볼 수 있어요."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봐요."
세상에나!! 직접 인터뷰 연락을 주다니!! 그렇게 한국에서도 경험 없던 슈퍼마켓의 면접을 미국에서 보게 되었다. 드디어 나 내일 면접 간다!! 근데 뭘 준비해야 하지? 너무 떨리기 시작했다.
캐쉬어 경험도 없고, 나 돈도 잘 못 세는데. 어떡하지?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대문사진 : Clem Onojeghuo,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