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중국에서 산타가 찾아왔다.

선한 그녀, 한국인 이웃

by Mollie 몰리
크리스마스가 뭐였지?

중국은 크리스마스가 없다. 심지어 출근하는 삭막한 할러데이다. 지금쯤 전 세계에서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고, 한국에서조차 캐럴과 흰 눈과 각자의 모습대로 즐거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고 있을 것 같다. 놀이동산, 스키장, 쇼핑몰, 휴양지, 아니 그냥 동네만 나가도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일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오랜 시간을 이런 환경에 있다 보니, 12월 25일, 성탄절이 주는 의미를 까맣게 잊어가고 있다. 심지어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마음 급해지니 남편은 아들한테, "어제 아빠가 주문해 준 패딩바지 있지? 그거 선물이었어." 건조하고 추운 날씨에 튼 내 손을 보고, 웬일로 주문해 준 나의 장갑을 이야기하며, "그 장갑,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뭐야, 다 갖다 붙이는 거야?" 어디 보자, 나 뭐 주문한 거 없나? 없다. 그냥 아무것도 못 챙긴 사람이 되었다.


이런 크리스마스는 올해가 마지막일 거야. 이번에는 그냥 이렇게 보내자며, 방에서 뒹굴거리며 영화 보고, 넷플릭스보고, 책을 보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집콕놀이를 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끝나가던 저녁, 갑자기 나의 위챗이 울렸다. 단지에 사는 한국 이웃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인이 별로 없는 곳이라서, 한국 이웃들을 많이 모르지만, 몇 달 전부터 알게 된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달라던 천사 같은 이웃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내게 늘 존댓말을 해주며, 행동도, 인상도 말투도 어쩜 그리 선한지 모르겠다.


"혹시 좀 있다가 집에 있어요? 내가 크리스마스 맞이해서 쪼끄만 선물 하나 주고 싶어서요. 집 근처에서 전달만 하고 갈게요. 잠시 나올 수 있어요?^^"


"어머 언니!! 왜 이리 낭만적이에요. 네 당연히 집에 있어요."


"크리스마스 사슴 한 마리 보내줄게요. 베이징에서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인데^^"


"너무 좋아요!! 언니 덕에 베이징에서 따뜻한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요."


"그럼 10분 후에 집 근처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미리 나오지 마요. 추워요."


"네, 연락 줘요. 파자마 차림으로 나갈게요.^^"


"도착했어요. 천천히 나와요."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잠시 한국에 다녀온 그녀는 베이징에 오자마자, 얼굴 보자고 나에게 연락했었다. 지난주에 얼굴 보기로 했다가 딸아이가 몸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약속을 미룬 상태인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나를 또 찾아왔다.

40대에 만난 산타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Photo by Mollie

"이거 내가 직접 만든 석고 방향제인데, 뒤에는 금으로 칠해서, 혹시라도 앞이 지겨워지면 뒤쪽으로 해놔요."


아,,, 그녀는 늘 이랬다. 늘 내게 감동을 주고, 뭘 자꾸 주고, 늘 밝은 인사와 선한 얼굴로 사교성 없는 나를 치켜세워준다. 늘 칭찬해 주고, 없던 자존감까지 끌어올려주는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이다. 끝이 있는 만남인걸 알기에, 만나면서 늘 아쉽고 짠하고, 이런 좋은 사람과는 또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 언니, 나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요. 우리 집에서 나만 유일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네요."


"아이고, 그런 부담 갖지 마요. 좋아해 주니 내가 더 기뻐요. 우리 조만간 또 만나요!"


잠시나마 서로 추워서 덜덜 떨며, 안부 인사와 짧은 수다의 시간을 뒤로한 채, 차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아이에게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뭉클해졌다. 같은 단지에 오래 살았어도 서로 한국인인지 몰라서 몰랐던, 그녀와의 첫 만남과, 적극적으로 다가와준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가 뭐라고, 늘 또 다른 큰 이벤트로 감동을 주는 그녀는, 내가 갚는다고 갚아지지가 않았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없는 중국에서 나는 낭만 산타를 만났다.



사람과의 관계를 즐겨하지 않는 내게 반짝이는 별처럼 다가와준 중국에서의 여러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초기 중국살이에 사람에 치이고, 억지로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해서 힘들었던 나한테, 몇 년 뒤의 소중한 인연들은 모두 치유제 역할을 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라고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 자책도 했던 시절을 모두 잊게 해 준 소중한 인연들.


상대를 오래 알았다고 해서 그 관계가 늘 좋은 관계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살다 보면 때로는 짧지만 강한 만남이 인생에서 더 좋은 기억으로 추억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내가 40대에 중국에서 만난 나만의 산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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