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입학준비 그 첫 시작
이사 후 핑크빛 미래를 꿈꾸며 산지 6개월째 되었나? 남편은 내게 조용히 한 마디를 던졌다.
"우리 중국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중국? 언제? 갑자기? 왜 또,,,"
"시기는 모르고, 기다려봐야 해."
남편은 당시 중국 프로젝트로 인해서 잦은 중국 출장을 다니던 때였고, 아이도 한 학년을 온전히 다니지 못한 채 중국으로 오게 되었다.
중국에 와서 들어보니, 여러 주재원 남편들이 주재원에 지원하기 위해서 HSK 급수도 따고, 지원을 하고, 마치 대학 입시처럼 합격과 불합격의 희비를 맛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본 적으로 남편들은 중국어도 마스터 수준으로 준비를 해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육아에만 빠져서 살았던 내게 주재원이 주는 의미를 잘 몰랐다. 갑작스러운 나라 이동이었고, 별생각 없이, 큰 포부 없이 자립적인 준비에 고군분투하며 나오게 되었다. 또, 중국으로 갈지도 소문만 무성하고, 정확한 시기 통보를 받기까지 또 몇 개월을 결정 없이 마음 졸여야 했다. 국내 이사도 아니고, 해외 이사라서 아이의 학업 문제가 가장 걱정이었다.
회사 선배라고 하는 분한테 남편이 들은 이야기도 회사 업무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었고, 남편이 받은 회사 측 워크숍 책자에서도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고, 남편이 가져온 A4 종이에 직접 쓴 글씨인 이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섬뜩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 가고 뼈 있는 말이다.
회사 업무의 강도로 인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다.
회사 측에서 제공해 주는 서비스는 해외 이사업체와 중국 비자 관련 처리, 그리고 현지 부동산 연결이었다. 아이 학교는 결국 일일이 알아보며, 내가 직접 국제학교들을 찾아보고, 입학 지원서를 내고, 서류 준비 및 인터뷰까지 모두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홀로서기의 시작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의 주재원 와이프는 검색창에 "중국 유학"을 검색해서 다짜고짜 유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과거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다.
"아이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요, 중국 유학 알아보려고요."
"어떻게 가시는대요? 아이만 혼자 가나요?"
"회사 주재원이에요."
"아... 저희는 그런 케이스는 진행 안 하고요. 회사 선배분께 물어보셔야 할 거예요."
"네? 그래요?"
결국, 수 주일에 걸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학교를 추리고, 관심 있는 학교 측의 Adimission 담당자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TO를 먼저 확인했다. TO가 있는 경우라고 해도 입학 지원 시기가 너무 아슬아슬했다. 우리가 중국 주재원 발령에 대한 최종 통보를 받은 건 3월 말이고, 국제학교는 6월 중순에서 말 안에 보통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또, 중국은 4월 초에 청명절이라고 해서 Spring break 연휴로 학교가 1주일 쉬기도 해서 학교와 연락이 또 안 되기도 하고, 처음 해보는 해외 국제학교 지원 준비에 매일같이 영어와의 싸움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체적으로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비슷했다.
-온라인 입학지원서
-한국학교 담임 선생님의 추천서
-최근 학교 성적표(한국어 서류는 영어로 공증을 받아야 함)
-아이와 가족의 여권 사진
-여권 사본 스캔
-베이징에서 발급된 남편의 취업 비자 사본
-예방접종기록표
-입학전형료 (약 2,000 rmb, 한화 370,000원)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한국 초등학교의 담임 선생님한테 추천서 받고, 인터뷰보고, 최종 합격 통보까지 2개월 반 안에 모든 걸 끝내야 했다. 학교의 종류도 미국계, 영국계, 캐나다계, 한국 국제학교, 로컬 등 종류는 너무 다양해서 일일이 어떤 학교인지 파악하는데도 너무 오래 걸렸다. 또 아이가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을 들어야 할지에 따라서 TO가 달라지기도 했다.
입학 전형료가 꽤 비싼 편이어서 3개의 학교만 지원해도 이미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어디 학교든 한국 아이들은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남편이 중국 출장을 오고 가며 간간히 베이징의 집 내부 사진을 보내주고, 집을 고르라고 했는데, 보내오는 사진 가지고 우리가 살 집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집에는 주인들의 가구들이 가득 차 있어서, 우리 짐을 많이 정리해야 했고, 기회가 되면 직접 보고 집을 구하고 싶었다. 아이의 학교 입학시험 및 인터뷰도 줌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옆 나라이기도하고, 처음 가보는 중국을 직접 눈으로 보고, 학교 투어도 하면서 인터뷰도 직접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입학시험과 인터뷰는 평일만 가능해서, 급하게 월요일 하루를 체험학습을 내고, 학교 투어 및 집 구경을 목적으로 단기 비자를 발급받아서 일요일-월요일의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가게 되었다.
6월 중순이 학교 방학인데, 6월 초에 학교 인터뷰를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 수도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에 출국장을 가는데 걸어 나가는 게 아니라, 트램 같은 짧은 지하철을 타는 등 대륙의 규모에 한 번 더 놀라게 되었다.
중국 주재원은 나라는 중국을 가는데, 학교를 국제학교를 선택할 경우에는 영어를 또 해야 하니, 언어적으로 중국어와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부담감이 있기도 했다. 국제학교 지원 준비를 하면서 느낀 건, 혼자 독립적이지 않으면 그곳에서 아이 엄마로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알아볼 곳 없어 당연하게 혼자 준비를 해온 이러한 나의 생활 패턴들이 나중에 맞이할 당시의 중국 생활에서는 주재원 와이프들의 단체 생활에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Andrew N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