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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Jan 06. 2024

국제학교 겨울방학 어린 시아버님과의 3주

짧으니까 다행이야

시아버님은 바로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1주는 갑작스러운 3끼 식사 준비와 나의 루틴을 깨는 일들로 힘들었고 2주 째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시간, 그리고 이번 3주는 드디어 다음 주면 개학이라는 기대감에 둘 다 서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국제학교 겨울방학은 보통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 약 3주 정도로 아주 짧다. 대신에 여름 방학은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2달이 좀 넘는다. 우리의 첫 방학은 우리 의도로 베이징에 있었고, 그다음부터 3년은 코로나로 베이징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남편이 이번에는 나랑 아들이랑 둘이 여행 다녀오라고 했는데, 남편도 아팠고, 더운 지역으로 갈 거 아니면 병원에 질려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아들의 동네 친구 1, 2, 3은 모두 중국 밖 여행 중이다. 따뜻한 기후를 찾아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과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캐나다로 간 친구 등 대부분의 외국 친구들은 이 황금 같은 연휴에 중국을 떠난다. 최소한 중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휴양지인 싼야(Sanya, 海南, 하이난)라도 간다. 그래서 놀 친구도 없이, 정말 방구석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며, 나 역시 작은 집안일을 시켜가며 지내다 보니 마치, 아들이 "어린 시아버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은 일단 9시까지 숙면을 취하신다. 아침잠이 없어진 엄마는 아버님의 미동도 않는 숙면이 부러울 뿐이다. 평소에 늦어도 8시에 아침을 먹는 편인데, 아버님 때문에 늦게 먹으니 위가 쓰리다. 너무 푹 자서 안 깨웠다가, 왜 안 깨웠냐고, 내가 깨우기를 기다렸다고 호통을 치신다. 그리고 아침을 드시는데, 나는 귀찮아서 토스트 아니면 매번 주먹밥을 해주었다. 매일 아침 메뉴가 주먹밥이냐고 또 불호령이시다. 아버님의 화도 가라앉히고, 손가락 운동도 시킬 겸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드시게 했다. 멸치, 연근, 김, 햄, 당근 등 재료를 바꾸어도 아버님 눈에는 그냥 '주먹밥'이다.

아버님이 투덜대며 만드신 아침 주먹밥, Photo by Mollie

주로 딸기와 유자차와 주먹밥 또는 토스트, 계란 볶음밥 등 간편하게 먹고, 나는 무의식 중으로 핸드폰을 하면서 입을 볼품없게 크게 벌렸나 보다. 갑자기 아버님이, "예쁘게 좀 먹어라!"라고 말씀하셔서 화들짝 놀래서 입을 가지런히 모으고 조신하게 먹어도 보았다. 참 피곤하신 아버님이다.


불과 2-3년 전의 아버님은 베이킹에 관심이 많으셔서 방학 때 주로 같이 빵과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게을러지고 나이가 든 아버님은 이제 관심이 없으시다. 주문을 하고 먹으려고만 하신다.

내가 조금 도와주고 아들이 만들어 먹은 빵들, Photo by Mollie

좋아하는 초코 머핀과 크라상을 주문해 주다가, 직접 한 번 만들어드리니, 앞으로는 집에서 만들어 먹자고 또 해달라고 하신다. 내가 실수한 것 같다. 그래도 맛있다고 잘 드시니, 다음에는 레시피와 재료들을 안겨드릴 생각이다.

남은 반죽은 오븐 그릇에 모두 부어 대형 머핀이 되었다. Photo by Mollie

계속 밥, 국, 반찬까지 하기가 귀찮아서 1주 때는 반찬을 좀 많이 시켰다. 기쁜 마음으로 반찬을 받아서 우리 집 반찬통에 덜 때, 아버님의 도움이 좀 필요했다. 물건 들고 와서 같이 옆에서 통을 뜯어주면, 나는 반찬을 옮겨 담았다. 절약 정신 투철하신 아버님이 또 한 마디 하신다. "여기 멸치 붙어있잖아. 더 긁어!" 네. 할 말이 없다.


나는 글도 써야 하고, 컴퓨터로 작업할 게 이거 저거 많은데, 아버님은 자기 방에 안 들어오고, 자기 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자기 얼굴이나 보냐고 불평을 하신다. 그래서 또 살펴드리고, 방에 들어가서 관심도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식사 1시간 전이면 와서 내 눈을 쳐다보며, "오늘 메뉴는 뭐야?" 아, 가장 무서운 말이다. 왜냐하면, 메뉴에 따라서 반응이 극명하다. 눈치가 너무 보인다. 그래서 참다가 가끔은, 반항도 해본다. "주는 거 아무거나 먹어라! 아니면 직접 해 먹던가, 시켜 먹던가!" 그럼 그새 꼬리를 내리고, 아무거나 드신다.


아버님 모시고 매일 산책도 나가드리고, 집에 있으면 내가 집안일을 시키니 아버님도 쉬운 생활은 아니시다.


드디어, 마지막 3주가 되고, 친구 한 명이 캐나다에서 돌아왔다고 연락이 왔고, 다음 날 놀자고 아버님한테 연락을 했다. 드디어 아버님은 친구랑 테니스를 치러 마실을 가시고 나도 자유를 얻어서 혼자 동네를 돌았다. 얼마만의 자유인가! 다음 날은 친구네 집에서 놀기로 해서 또 오후에 나가신다. 참고로 아침에 10시까지 자다가 1시 10분 전에 나가셨다. 다음 주에 학교나 제시간에 가실지 걱정이다.

아버님이 친구분과 동네 마실 약속을 잡으셨다.

어제도 친구랑 테니스를 치다가 코트 예약자들한테 쫓겨나셨다며, 친구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점심도 안 드신 아버님과 친구에게 햄버거를 시켜 주었다. 음식만 시켜 주면 알아서 노니 참 편하다. 중국으로 돌아온 친구 덕에 3일 내내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드디어 다음 주면 우리 둘은 서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꼭 이 시간이 다 끝나려니까 아쉬운 생각도 든다. 몇 년 뒤면 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시아버지는 내 곁을 떠날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참 금방 큰다.

https://brunch.co.kr/@leiastory/47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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