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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Jan 21. 2024

중국살이 n년차, 점점 0개 국어를 한다.

한국말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을 살다 보니, 한국 사람을 접할 기회가 적다. 마트를 가도, 거리를 나가도, 중국 사람들의 대화 소리만 들릴 뿐, 한국어를 들을 기회는 가끔 지인들 만날 때 혹은 가족들과의 대화나 전화할 때 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국어 듣기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레 한국어를 들을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어를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를 못하니, 중국 사람들의 대화는 그냥 자연스러운 백색 소음처럼 들린다. 들리는 말이 없으니, 외계 세상 같은 이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몇 배로 커져서 '언어의 자유'를 제대로 느끼며, 어디서든 한국어를 눈치 볼 필요 없이 남발하고 있다.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갑자기 주변에서 한국어가 실시간으로 들렸을 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외국에서 해외살이를 오래 했으면, 최소한 그 나라의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살았으면 일상생활에서 문제없을 정도로, 조금 더듬더듬할지언정,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는 할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중국어 수업을 꾸준히 했었으면, 또 제대로 된 열정과 끈기를 갖고 했으면 어느 정도 목표까지는 도달했을 수도 있다. 단, 상대방이 나의 성조를 이해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중국어를 초기에 몇 개월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생존가능한 최소한을 배웠다고 생각하자, 점점 중국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중, 고등학교 때 성적을 위한 암기에 의한 한자는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방대하고 난해한 한자라는 그림글자를 외우는 게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는 정말 생존할 수 있을 정도만 한다.


그래도 다급한 상황에서는 번역기와 얼굴 표정과 제스처를 통한 외국인 특유의 어눌함으로 위기 상황을 곧잘 모면하기도 한다. 중국어의 벽은 너무 높고, 10년 이상을 산다 해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영어는 또 어떤가. 아이는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영어를 사용할 일이 꽤 많다. 학교에서 오는 이메일도 읽어야 하고, 가끔 궁금한 사항이나 요구 사항이 있으면 영어로 이메일도 보내야 하지만, 번역기가 있다. 번역기를 이용해서 어감이 이상하거나, 단어만 조금 수정해서 보내니, 영어도 늘지가 않는다.


학교에 상담하러 가기 위해서는 영어 스피킹과 리스닝이 또 필요하다. 상담 전에 아이를 통해서 과목과 배우는 내용을 조금씩 체크하고 달달 외울 정도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 포인트만 알아들을 정도로만 예습을 해가니, 리스닝은 할 만하다. 스피킹은 아이에 대해 질문할 내용만 준비해서 종이에 써가니, 말도 크게 할 일이 없다. 주로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호응과, Right, Yes, Really와 같은 추임새들로 상담이 시시하게 끝난다.


학교에 상담을 다녀오면 늘 굳게 마음을 먹고, 오늘부터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다시 해보리라고 다짐한 게 매번 작심삼일로 돌아가면서, 한국에서 사 온 영어책과 패드에 쌓인 ebook은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종이책은 빳빳하고, ebook은 터치하면 표지와 목차가 나온다. 그래도 가끔 넷플릭스라도 보고, 내가 너무 머리가 안 돌아간다 싶을 때 짬짬이 공부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이다. 나이가 드니까 또 예전처럼 기억도 나질 않고, 아이는 눈으로 잘만 외우는데, 나는 옛날 방식으로 종이에 빽빽이 하듯 같은 단어랑 문장만 써서 깜지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요새 더 가관이다. 요새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그거 좀 갖고 와 봐. 저거 있나? 거기 있는 저거." 다 이것, 저것, 그것 대명사로 지칭한 지가 오래됐다. 마치 중국어의 이것, This(这个, Zhege), 한 개, One(一个, yige)와 흡사해 보이지만, 나는 한국어를 하는 중이다. 단어가 잘 생각이 안 난다. 아무래도 한국 TV 프로그램도 잘 보지 않고, 길거리에서 보이는 간판, 광고판, 마트에서 보이는 한글 상품, 버스 정류장 등 한글을 많이 접할 곳이 없으니, 무의식 중으로 단어들이 자꾸 사라지는 느낌이다.


한국 뉴스도 챙겨서 보지 않는 이상, 검색 사이트를 매번 들어가지도 않고, 유튜브도 예전만큼은 잘 안 봐서, 점점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으면 한글이라는 글자를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가끔 한국에 은행이나, 보험사, 공공기관에 문의전화를 할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해질 때가 많다. 별거 아닌 계좌, 이체, 송금, 보안카드 이런 말이 생각이 안 나서, "그 비밀번호 카드 있잖아요." 이러질 않나, 쉽게 풀어서 "돈을 보내는 것"으로 행동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가족끼리 이야기할 때도 점점 눈에 무언가 사물이 보여도, 이것, 저것, 그것으로 대체하다 보니, 아이가 맨날 나한테 "이거가 뭐야, 저거는 또 뭐야?"라며 되묻는다. 가족끼리의 최소한의 생존 한국어만 쓰고 있다.


어느 한 언어라도 잘해야 하는데, 특히 모국어인 한국어 말고는 특출 난 언어도 없는데, 이러다가 내 모국어가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보다 수준 낮은 언어 구사력을 보이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마치 0개 국어를 하는 느낌이다.


사진 : Unsplash의 Hannah 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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