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목의 효과가 드디어 나타나다.

수포자, 자기주도학습을 하다

by Mollie 몰리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


40대가 넘어가면서 기력이 한 번 빠지고 나니, 아이의 공부에 대해서 내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한 몸 가누기도 힘든 날들이 많아서, 기본적인 의, 식만 챙겨주고, 의도치 않게 자연스러운 방목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씻고, 간식을 먹거나 자기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열고 뭔가를 사부작거리면서 하긴 했지만, 공부를 딱히 하진 않았었다. 숙제량이 많지는 않았어서, 후다닥 끝내고 주로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교육을 하지 않으니 학교에서 주는 숙제 외에 공부를 할 것도 없었고, 다른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친구들처럼 한국 공부도 하지 않았으니 문제집을 풀 일도 없고, 자기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문제집은 초등학교 때 어떻게든 풀려보려는 엄마의 노력이 있었으나, 잦은 싸움이 되어버려서 결국 내가 포기해 버렸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국 친구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다. 심지어 학교 끝나고 스쿨버스에서 엄마가 도시락을 전달해 주고, 학원행을 하는 친구도 있다.


우리는 해외살이에서의 학원은 더더욱 반대 입장이라, 그런 아이를 위해서 원서로 된 학교 공부에 필요한 과목책을 사준게 전부였고, 아이는 그중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만 보고, 과목 편차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이었고, 아빠는 아이한테 맨날 농담 삼아서 "너 오늘 시험 빵점 받았지?"라며 놀리기 일쑤였다. 나도 내가 정보가 많지 않다 보니 어떤 수학책을 사줘야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그냥 놀 거면 키나 크게 잠이나 자라고 10시 이전에 불을 끈 게 전부였다.



한국 시점으로 돌아가서, 아이는 수학 학원을 다닌 적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방학 특강으로 1달 동안 선행 수업을 한 번 들어봤는데, 웬걸, 왜 그 아까운 시간에 꾸역꾸역 선행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막상 학교에서 그 단원을 배울 때는 새로 배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뒤로는 수학 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학을 정말 싫어하는 친구들한테 도움이 되는 곳이 있는데, 같이 한 번 보내보자고. 그렇게 새로운 수학 학원을 1달 조금 넘게 다닌 적이 있다.


그 학원은 개념을 말로 외우고, 몇 개 안 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때까지 풀리는 학원이었는데, 아이는 그곳을 정말 싫어라 했다. 선생님이 아이가 그 개념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알 때까지 시간은 늘어지고 집에 보내주지를 않으니 아이한테는 곤욕스러운 시간이었다. 학원을 다녀오면, 어느 날부터 앞머리가 꼬불거리고, 마치 파마라도 하고 온듯한 모습에 너무 놀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수업을 하는 내내 너무 하기 싫은 나머지 앞머리를 꼬아대는 통에 머리가 자동 곱슬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 장 안 되지만, 서술형으로 써야 하는 수학 숙제를 하면서 책상과 바닥 주변에 작은 머리카락들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청소하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우리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하면서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는 억지로 하기 싫은 걸 시키니, 또 머리를 꼬듯이 베베 꼬다가 더 이상 꼬일 곳이 없으니 머리가 빠진 거였다. 앞머리를 바짝 잘라주면서, '내가 미쳤구나. 애한테 뭐 하는 짓이야!'라면서 정신을 딱 차린 순간이다!


수학 학원을 다닌 지, 2달도 안 되어서 친구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고 아이는 빠지기로 했다. 그 뒤로 아이는 그런 행동이 사라지고, 또 유쾌한 나날들을 보내며 수학은 계속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고, 국제학교에 와서도 그냥저냥 학교 수업을 따라갔다.


국제학교 수학은 다행히 한국 수학처럼 양이 방대하지 않고, 계단식으로 계속 새로운 개념을 배우는 게 아니라, 나선형처럼 어떠한 개념을 낮은 학년부터 점점 포괄적으로 배웠기에 큰 무리는 없었고, 초등학교 때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어도 레벨별 수업을 하지 않으니 본인의 상태를 잘 몰랐다.



레벨별로 반을 나누면서 가장 높은 반에서, 중간반으로 오게 되고, 나중에는 아랫반으로 옮겼다는 걸 상담 중에 알게 되었다. 학기 초에 들은 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이 아닌데? 결국 여자 선생님 반에서 남자 선생님 반으로 바뀌었다는 걸, 상담 때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들은 학기 중간에 우리 반으로 내려왔어요.” 어머나, 아이는 나한테 얘기도 하지 않았던 거다. 그때까지도 선생님 탓을 하며, 자기는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이 몰라준다고 원망을 하며, 본인이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맨날 “수학 싫어, 어려워.”라고 아이가 이야기하면, 나 역시 도와줄 방법을 몰라서 "네가 잘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필요한 자료 좀 달라 그래."라고 이야기했고, 아이도 이제 슬슬 대학교도 생각해야 하는 철든 아이가 되어가고, 바닥을 찍어보니, 자신도 어느 순간에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쉬는 시간이나 비는 시간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년 말에 국제학교에서 보는 Map Test(읽기, 언어, 수학의 성취도 평가)로 다음 학년의 수학 레벨을 나누는데, 수학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 이메일이 왔다.


선생님은 아이의 Map Test 결과가 다음 레벨을 가기에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한 해 동안 아이의 수학 실력은 초반보다 많이 향상되었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다고 우리한테 레벨을 올려서 반을 옮기는 시도를 할지, 아니면 현재반 그대로 갈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셨다.


대신 방학 동안에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아이는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엄마! 나 반 올라가 볼래!” 우리는 방학 기간 동안 한국에서 1달 반을 머물 일정을 앞두고 있었고, "엄마, 빨리 수학 학원 좀 알아봐 줘. 아니면 선생님 좀 알아봐 줘."라고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한국 수학 학원에 전화도 해보고, 없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수학 과외 선생님을 구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일주일에 2회 3시간씩 인터수학을 1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할 수 있는 분량만큼 예습을 하고 왔다. 물론 우리가 교재가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부족했다. 또, 현재 돌아와서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한국에서 수업을 하고 숙제를 하는 동안에는 정말 매번 가기 싫다를 연발하면서도 본인이 해야 할걸 아는 나이가 돼서 그런지 열심히 하긴 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엄마! 한국 학원 너무 좋은데? 선행이 좋네! 수학은 예전에 학원 좀 다닐 걸 그랬어. 그건 좀 후회되네."라며 스스로 그런 기특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더 이상 머리를 꼬기는커녕 수학을 정말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미래를 위한 동반자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친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작년에 학년이 바뀌고 수학 상담에 가보니 선생님이 아이의 흉내를 내신다. 저기가 자기 책상인데, 늘 아이는 자기 책상 근처로 와서 물어보기 바쁘다고. 아이한테 물어보니, 반을 올라갔더니 어려워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작년 새 학기부터 성적에 엄청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첫 시험에서 점수가 안 나온 것 같자, 집에 와서 한숨을 쉬면서, 시험을 못 본 것 같다고, 선생님한테 메일로 혹시 아랫반으로 내려가야 하냐고 물어본다며 메일을 보냈고, 선생님은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고 답장이 왔다. "이미 본거 뭘 신경 써. 이야기해 주겠지."라고 얘기해 줬는데, 다음 날, "엄마! 내 예상보다는 점수가 잘 나와서 나 아랫반으로 안 내려간대!"라며, 어제 풀이 죽어서 의기소침해져 있던 아이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살아났다.


점심 먹을 때도, 수학 레벨이 높은 반에 있는 친구한테 모르는 걸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확실히 수학은 도움을 받지 않으니 많이 어려워하긴 해서 좀 더 스스로 해보고 그때도 안 되면 방법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머리를 꼬고, 쥐어뜯던 아이가 바닥을 한 번 찍고, 어느 순간에 공부할 목표가 생기고 타이밍이 맞으니,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방법을 찾아달라고 나한테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어렸을 때 이토록 싫어하는 걸 길게 시켰을 때 보다, 좀 더 커서 자기가 스스로 원할 때 시키면 효과는 배로 늘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또, 아이는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나라가 있다. 작년에 아이의 친한 친구가 그곳으로 가는 게 현실이 되자, 갑자기 자기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방과 후 스포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어차피 수업료 포함인데 아까우니 집에 오지 말고 하라고 해도, 좋아하는 팀스포츠 위주로만 하더니, 달리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한테, "남자는 운동도 좀 하고, 체력도 좋아하 해, 많이 먹고 운동하고 살도 쪄야 해."라고 자주 했던 말이 이제야 귓가에 들리는지, 스스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정말 믿기지 않을 일이다. 애들도 다 자기 생각이 있긴 한가보다.


사춘기도, 공부도 안정된 틀 안에서의 방목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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