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칭찬에 당당해지기
떼려야 뗄 수 없고,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전화 통화로 생긴 일이었다. 아이가 어리고 동네 엄마들과 친하던 시절에, 우리들의 수다는 날새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만나서 아이 보내놓고, 길가에 서서 잠시 수다를 떨다가, 시간 되면 집에서 커피 한 잔 하다가, 저녁거리를 고민하며 마트를 같이 간다. 또 집에 와서는 아까 못 한 말이 생각났다며 전화로 또 수다를 떨고,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궁금한 일, 또는 속상한 일 등에 대해서 또 전화를 한다.
아이가 오면 전화를 끊을 법도 한데, 수다가 수다를 낳고, 우리 집 아이 이야기, 그 집 아이 이야기, 남의 아이들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아이는 방치한 채, 수다를 위해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었다.
“엄마, 그런데 왜 엄마는 내 욕만 해?”
“내가 언제?”
“맨날 난 이것도 못한다, 저것도 못한다, 내가 못하는 것만 친구 엄마들한테 이야기하잖아.”
“아, 그냥 이야기한 거야. 잘하는 거 이야기하면 잘난 척 같잖아. ”
그랬다. 나는 상대가 아이를 칭찬해 주면, 겸손을 떨면서, "아이고, 아니야. 우리 애는 나가서만 그러지 집에서는 엉망진창이야. 너희 애가 더 낫지. 너희 애는 이런 점이 훌륭하잖아." 라며 내 아이는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상대방의 아이를 치켜세워주기 바빴다. 나는 그게 엄마들 대화 사이에서의 예의이자,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아이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그걸 받아들이는 방법에서 늘 저런 방법을 택했었다. 한 번도, "맞아. 우리 아이는 그거 잘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늘 겸손하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내 성향적인 부분도 있었고, 그렇게 쭉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국제학교에서 또 한 번 나의 잘못됨을 깨닫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친구들 중에서 유독, 자신의 환경에 비해서 검소하게 자라고,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유순한 아이들을 보면 관심이 갔다. 내 아이가 닮았으면, 또 배웠으면 하는 점들이 있으면 그걸 콕 집어서 아이한테도 이야기할 때도 있고, 그 엄마들을 만나게 되면, 그 부분이 참 보기 좋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국제학교에 오는 외국 친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서보다 더 좋은 대우를 많이 받고 온다. 집, 차, 그들의 여행 이력과 삶의 여정들을 보면, 화려한 경력들이 많다. 그런데 참 아이들이 순수하고 겸손하게 큰 친구들을 보면, 칭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해서 비행기를 타본 적이 아직 없다. 전에 어떤 한국 친구가 아이랑 대화를 하다가 그 말을 듣고, "넌 아직도 비즈니스 안 타봤냐? 난 자주 타는데."라며 이야기를 했고, 아이는 별생각 없는 스타일이라, "그래?"하고 지나갔고, 나중에 나한테 "엄마, 나도 비즈니스 타고 싶어."라며 부러워했다. 나는 속으로만, "애가 벌써 그런 걸 따지기도 하는구나."라며 흘려 들었다.
아이의 한 외국 친구는 거의 모든 대륙에 다 발도장을 찍고, 중국에 온 게 첫 번째 해외살이가 아닐 정도로 환경이 좋은 글로벌한 친구였다. 아이들끼리 방학 때 어디 놀러 가냐고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너 비행기 탈 때 영화 뭐 봐?"라고 물어봤다. 우리 아이가 탔던 비행기들은 이코노미였지만, 대부분 앞 좌석에 자신의 스크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비행기 좌석 앞에 스크린이 있는 건 아니야. 항상 그런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오는데, 나는 혼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내면이 단단하다 보니, 자신이 늘 스크린이 앞에 있는 좌석을 타는 게 아니더라도, 또는 상대의 환경보다 못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이 부끄럽거나 질투가 아니라 그냥 의연했다. 어떻게 아이의 입에서 저런 생각이 나오지? 이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면, 엄마들은 나처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어머 걔가 그런 말도 해요?"라며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맞장구를 치며,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실수를 해서 아이들이 다 같이 까르르 웃는 일이 발생했었다. 난 무안해서, Sorry라며 어쩔 줄 모르는데, 한 아이가 바로 나를 향해서 "Don't worry, it's okay."라며 2번을 나를 향해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한 마디가 나는 굉장히 고마웠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들한테 웃음거리를 선사했던 그 순간에, 다 웃느라 배꼽 빠지는 사이에서, 그 아이는 무안한 나를 보며,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나중에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하며, 너의 아들이 나를 위로해 줘서, 그 순간에 힘이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했는데, 그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겸손한 게 아니라, 인정을 하며 답을 했다.
"제 아이가 위로가 되어서 다행이에요. 저도 격려해 준답니다." 라며, 자신의 아이의 장점을 인정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중국어도 꽤 잘하는 편이라, 아들이 외국인 중에서 중국어 발음도 그렇고 이렇게 잘하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들어서, 우연히 학교에서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전하면, 나처럼, "아니에요. 못해요. 그쪽 아들이 더 낫죠."가 아니라, "어머, 내 아이의 모르는 모습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이가 제 앞에서 중국어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래 살다 보니 중국어가 많이 늘었나 봐요. 이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네요."라며 아이에 대한 그 어떤 부정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를 많이 돌아보았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게 아이의 칭찬 앞에서는 아님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내 아이를 나도 모르게 스스로 낮추는 모습을 내가 보여왔던 거라는 걸 중국살이에서 깨닫고, 이제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남을 칭찬하기 위해서 아이의 단점을 일부러 드러내지도 않고, 누가 아이의 칭찬을 할 경우에, 굳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빼지 않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모습과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아이들은 안 듣는 것 같고, 모르는 것 같아도 엄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나 보다. 말 조심 해야지.
나는 순간적으로 엄마들과 대화를 할 때, 나의 아이는 낮추고, 남의 아이는 높이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나라 문화 자체가 겸손이 미덕이라, 나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스스로 깎게 된다. 아이 앞에서 우리 아이의 장점을 인정해 줄 때 아이도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스스로 ‘나’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높이며,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아이의 칭찬 앞에서 당당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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