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내향성과 평생의 숙제
나는 선천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긴장한 나머지 구토를 할 정도였다. 지금은 처음 보는 사람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내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특히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나 발표에서는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져 거의 패닉 상태에 이르곤 한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타고난 기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결국 포기했다. 이후 점점 남 앞에 나서는 일을 피하게 되었고, 내성적인 성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자연스럽게 발표나 협상 같은 역할에서도 점점 멀어지면서 관련된 역량도 퇴보하게 되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에 집중하고 있으며, 지인들과의 교류도 최소화하고 있다. 경조사 참석을 피하고 각종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가족, 친한 이웃, 그리고 몇몇 가까운 친구들과만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직장에서도 사우디에서 귀국한 후 8년 동안 거의 6년을 혼자 식사했고, 될 수 있으면 발표나 협상을 피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더욱 내향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남은 삶을 성격과 취향에 맞춰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짧게는 7년, 길게는 20년 정도 더 경제활동(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리더십과 의사결정 역량을 요구하는데, 과연 스트레스 없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고액 연봉과 높은 직책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하면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자율권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결국 자존감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명확하다. 지금 가진 자산으로 앞으로 남은 50여 년을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부족하다면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얼마를 더 축적해야 할까?
내 앞에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지만, 어느것 하나 안정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일정 수준의 연봉을 유지하면서도 스트레스가 낮고 어느 정도 자율권이 보장된 일이 나에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 때다. 지금까지 해왔던 익숙한 일과 결별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